신장섭 "IMF 이후 미국식 '주식시장 위주 성장' 따른 한국도 실패"
김상조 "미국 모델 이식은 오해…엄정 규칙 집행이 핵심" 반론도
[미디어펜=한기호 기자]격차 해소를 목표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주창하고 야권이 경쟁적으로 추진 중인 '경제민주화' 입법이 결국 일부 금융투자자에게만 유리해 경제 양극화를 야기하며, 책임 있고 지속적인 기업경영을 어렵게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새누리당 김종석·유민봉·강효상 의원은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미국 경제민주화 실패의 교훈-트럼프 현상의 뿌리와 한국경제 대안'을 주제로 한 토론회를 공동 주최, 경제 전문가들이 분석한 실증적 자료를 토대로 경제민주화 정책의 영향을 검증하는 자리를 가졌다.

토론회 사회를 맡은 김종석 의원은 인사말에서 "경제민주화는 헌법에 있는 규정임에도 불구하고 그 개념 자체가 정치권이나 여론에서 굉장히 혼란스럽다"며 "과학적·객관적 검증 없이 정치적 구호로 흘러가고 있다. 특히 야당이 주장하는 경제민주화는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소액주주 보호 중심"이라고 지적했다.

유민봉 의원도 경제민주화에 대해 "학계에 있었지만 늘 수사적이고 이념적으로 주장되다보니 정확히 이해하기 힘든 경험을 했다"고 했으며, 강효상 의원은 "해당 공약들이 경제에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지만 '밥'이 될 수는 없다. 성장이라는 밥이 뒷받침되지 않은 소금은 길가에 뿌려지는 아무 의미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고 말했다.

   
▲ 여의도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김종석 새누리당 의원이 6일 '미국 경제민주화 실패의 교훈-트럼프 현상의 뿌리와 한국경제 대안'을 주제로 한 토론회에 공동 주최자로서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주제 발표를 맡은 신장섭 싱가폴 국립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의 소득분배는 어느 지표로 보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나빠졌다"며 "현재 느끼는 양극화의 원죄는 그 전에 만들어진 '대기업 위주' 발전모델보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에서 미국을 모델 삼아 구조조정한 데에서 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

신 교수는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미국식 경제민주화 수단들이 적용된 건 IMF체제 때였다. '은행차입 위주 성장'을 버리고 '주식시장 위주 성장'이라는 영미 모델로의 전환을 추구하면서 (경영자보다도) 소수주주 권한이 대폭 강화됐고 재벌 규제 또한 대폭 강화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결론적으로 "어느 지표를 보더라도 한국의 경제민주화는 미국처럼 실패했다. 분배가 오히려 악화됐고 성장도 정체했기 때문"이라며 "기업이 적극적 투자와 고용을 꺼리게 되는 한편 강력한 금융투자자들의 요구에 따라 배당, 자사주매입 등의 형태로 외부 유출되는 돈이 많아지고 임금상승이 억제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규모 기관투자자들이 '소수주주'로 취급되고 있으며, 지분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전문경영인이 이같은 소수주주들의 요구에 영합해 그들에게만 유리한 방향으로 자금 분배를 왜곡시키는 한편 근로자는 분배 과정에서 소외된다는 지적으로 풀이된다.

   
▲ 신장섭 싱가폴 국립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스크린 앞)가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미국 경제민주화 실패의 교훈-트럼프 현상의 뿌리와 한국경제 대안'을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신 교수는 국회에 제출된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들에 대해서도 "연목구어(緣木求魚) 법안들이다. 분배악화에 대해 잘못된 인과관계에 기반을 두고 수단을 제시했기 때문"이라며 "그렇지 않아도 강해져 있는 금융투자자들의 힘을 더 강화시키는 것들이기 때문에 양극화를  오히려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비판했다.

또한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경직적인 '1주 1의결권'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국내 경제민주화론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정치민주주의에서의 '1인 1의결권' 원칙을 억지로 갖다 붙였다"며 이는 '1주 1표'와 차등의결권 적용, 법인의 주식 보유 등 주식회사 제도의 기본 원칙을 어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지난 20년 가량의 분배 악화 원인이 주식시장 위주 구조조정에 주로 있고, 똑같은 경향이 한국이 구조조정 모델로 삼았던 미국에서 더 크게 나타났는데 같은 방식의 경제민주화를 더 강화하는건 연목구어 대책을 더 강화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경고했다.

신 교수는 "현재 한국의 시스템은 가족경영의 씨를 말리도록 설계돼 있다. 65%의 상속세를 다 내면서 경영권을 승계할 방법이 없다"며 "재벌들에게 재단을 통한 승계를 허용하면서 '투자-고용-분배'의 주체로서의 역할을 맡겨야 한다"면서 "국내외 기관투자자들은 '주주'가 아니라 '주관재인(株管財人)'으로 법적 실상에 맞는 이름을 사용해, 지금처럼 경영자들의 주인 행세를 하도록 방치해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이후 토론 과정에선 경제민주화에 대한 찬반 의견이 나타났다.

경제민주화 찬성론자인 김상조 한성대학교 무역학과 교수는 "신 교수는 '소액주주운동'이 한국의 경제민주화 논의를 대변하는 것으로, 미국식 주주자본주의 모델을 그대로 이식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이 운동의 핵심은 '목표'가 아닌 '수단'이다. 상법상 소수주주권의 행사를 통해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정당한 권리를 정의하고 실현하는 것"이라며 "규칙의 일관된, 예측가능한, 엄정한 집행이 경제민주화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권위주의 정치질서와 추격형 낙수효과 모델이 과거 성공의 원인이었지만 이젠 유효성이 소멸했고 미래의 성장을 제약한다"면서 "'고투자-고성장'은 돌아가야 할 이상향이 아니라 매우 이례적이고 비정상적인 시기"라고 규정한 뒤 "사전적·금지적 행정규제만으로 한계가 있으므로 다양한 규율 수단의 체계적 합리성 제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새누리당 김종석·유민봉·강효상 의원이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미국 경제민주화 실패의 교훈-트럼프 현상의 뿌리와 한국경제 대안'을 주제로 공동 주최한 토론회에는 같은당 강길부·정종섭·추경호·신보라 의원은 물론 김무성 전 대표도 함께 자리해 경제민주화 토론을 청취했다./사진=미디어펜


반대론자인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제민주화를 해도 원칙이 있어야 한다"면서 "특정 집단이나 업역을 차별하는 규제·정책지원은 시장을 정치화하는 온상"이라며 "직역이기주의를 확산시키고 비생산적인 '규제 지대추구(규제를 이용해 독점적 이득을 취하는 행태)'를 성행케 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이나 일명 '단통법', 도서정가제 등이 지대추구 유발적 규제에 해당한다.

황 연구위원은 이밖에 야권에서 주장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다중 대표소송, 납품단가 연동제, 이익공유제 등을 '콜라파고스(코리아 + 갈라파고스)' 규제로 지목하며 한국의 시장 상황을 국제적 추세와 유리시킨다고 비판했다.

함께 토론에 참여한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교수도 반대 입장에 서서 "한국 경제가 당면한 문제가 내적 요인 뿐만 아니라 외적 환경 변화로 발생했는데 경제민주화 논의는 국내에 국한된 이야기"라면서 "선진국 중심의 약육강식 자본주의가 재등장한 상황에서 경제민주화보다 뉴글로벌 전략이 더욱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행사엔 내빈으로 새누리당 강길부·정종섭·추경호·신보라 의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김무성 전 대표도 함께 자리해 경제민주화 토론을 청취했다.
[미디어펜=한기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