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 '정세균 사퇴' 집중포화…다수야당 "국감 복귀" 종용
[미디어펜=한기호 기자]20대 국회 첫 국정감사 첫날인 26일부터 여야는 정세균 국회의장이 '황제 대출' 등 의혹 대부분이 해소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사실상 '정치적 거래 대상'으로 삼아 야권 단독 표결을 강행한 걸 두고 치킨게임에 돌입했다.

국회는 이날 법제사법위원회를 비롯한 12개 상임위원회에서 국감을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새누리당이 정세균 의장의 사퇴와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며 의사일정 전면 거부에 나서 국감 대부분이 아예 열리지 않거나 '반쪽' 운영을 했다.

새누리당 소속 위원장이 사회권을 쥔 법사·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국방·안전행정·정무위는 국감을 위한 전체회의를 아예 시작하지도 못했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소속 위원장 외교통일·교육문화체육관광·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산업통상자원·보건복지·환경노동·국토교통위는 야당 의원만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새누리당은 정 의장이 지난 23일 본회의에서 밤 11시57분쯤 각당 교섭단체 대표와의 접촉·협의 없이 본회의 차수 변경을 선언하고 김 장관 해임건의안을 야권 단독 표결에 부친 점, 특히 표결이 진행 중이던 24일 0시35분쯤 '맨입으로 안 돼' 등 발언을 한 녹취 영상을 이날 공개하는 등 '초강수'를 두고 있다.

영상에 따르면 정 의장은 "안 돼.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연장)든 뭐든 바꾸려고 하는데 그게 안돼. (여당이 합의를) 절대 안해. 그냥…어버이(연합 청문회)나 둘중에 하나 내놓으라 했는데 안 내놔…그래서 그게 그냥 맨입으로…안 되는 거야…" 등의 발언을 한 것이 의장석 마이크에 녹음됐다.

   
▲ 새누리당은 26일 의원총회에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표결 강행 당시 이른바 '맨입으로 안돼' 발언을 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을 빚은 정세균 국회의장의 해당 발언이 녹취된 영상을 공개했다. 이정현 대표는 정 의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무기한 단식투쟁에 돌입하기로 했다./사진=미디어펜


이에 따라 새누리당은 정 의장이 사퇴할 때까지 ▲의사일정을 전면 보이콧하고 일 2회 의원총회에서 대책을 논의키로 한 한편 ▲이정현 대표가 단식 투쟁에 돌입, ▲1인 릴레이 피켓시위를 진행하면서 ▲당 최고위를 일명 '정세균 사퇴 관철 비상대책위'로 전환 운영하는 등 전례없는 강경 투쟁에 돌입했다. 정 의장을 국회 윤리위 제소하고, 직권남용 등 혐의로 형사고발하는 것도 병행할 방침이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의총에서 정 의장을 겨냥 "명분도 없이 야당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장관 해임건의안을 처리한 것을 스스로 고백했다"면서 "입법부 수장이 될 자격이 없는 분으로 민주당의 하수인에 불과하다"며 사퇴를 촉구했다.

아울러 지난 23일 본회의 차수 변경을 정 의장이 여야 교섭단체 대표와 협의조차 거치지 않고 결정했고, 야권은 이에 함구하는 데 대한 비판도 거세다. 이에 따라 새누리당은 더민주와 국민의당을 각각 '의회 민주주의 파괴자'와 '더민주 이중대'로 규정하고 대야 공세의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반면 정 의장은 '맨입' 발언 관련 "여야 간 협상을 통해 해결하길 바랐던 것 뿐"이라고 강변하며 버티고 있고, 야권은 새누리당의 국감 참여를 종용하면서 '소는 누가 키우나' '푸하하 코메디 개그' 등 말장난에 가까운 비난을 쏟아내고 있어 당분간 국감 파행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 의장은 국감 파행과 관련, 국감 일정을 2~3일 늦추자고 출신당인 더민주와 국민의당에 '시간끌기' 전략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1야당인 더민주가 연기에 난색을 표했고 제3당인 국민의당만 '일단 검토해 보겠다'는 원론적 입장으로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러나 야당과 정 의장도 현재까지 기류로는 이번 '해임안 정국'에서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으로 여야 간 대립 수위는 좀처럼 내려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당 최고위에서 새누리당을 향해 "국감에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입장을 정해 반쪽짜리 국감으로 시작하게 됐다. 대단히 유감스럽다"면서 "국정감사를 보이콧하는 건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며 의사일정 복귀를 요구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 겸 원내대표도 비대위 회의에서 "정치는 박근혜 대통령처럼, 새누리당처럼 자꾸 갈등을 유발해선 안 된다"며 박 대통령의 해임건의안 수용과 새누리당의 국회 복귀를 촉구했다.

   
▲ 새누리당은 26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지난 '개회사 파문'에 이어 '맨입으로 안 돼 녹취록'으로 논란이 된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결의를 다졌다./사진=미디어펜


그러나 박 대통령도 해임건의안 수용 거부 의사를 분명히 하면서 야당을 향해 사실상 선전포고를 한 가운데 '해임안 정국'은 한동안 이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이 때문에 야권 일각에선 김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 강행을 '소탐대실', 이적행위' 등으로 평가하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관련 의혹 등 국감을 통해 부상시켜 청와대를 향해 파상공세를 펼 수 있는 의제들이 묻히고 김 장관 해임건의안이란 '블랙홀'에 묻히는 결과를 자초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내년 말 정권교체에 명운을 건 야당도 책임 있는 수권정당 이미지를 부각해야 하는 만큼 여권과 극한 대치를 지속하는 건 적지 않은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반면 새누리당 역시 국정 책임이 있는 집권여당이 국감 파행을 직접적으로 야기하고 있어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정국을 오래 끌고가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이번 해임안 정국은 단순한 여야 간 대립이 아니라 행정부와 입법부 간 갈등까지 뒤섞이면서 그 싸움의 결말이 여야 어느 쪽의 승리로 귀결될지도 점치기 어렵게 됐다.

한쪽이 우위를 점하면서 정기국회 초반전 기선을 잡을 수도 있겠지만, 일방적인 승리보다는 '양쪽 모두 피를 볼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이같은 여야 간 '사생결단 대치'는 대통령선거 정국에 불을 지피는 전초전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일각에선 이같은 여야 각 당의 외형적인 극한 대립에 의한 정치 혐오가 화개되면서 '제3 지대'에 힘이 쏠려, 중도 진영에서 정계개편 움직임이 가속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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