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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 객원교수 |
한진해운 사태가 심각하다. 국내 1위, 세계 7위의 글로벌해운사의 법정관리 결정으로 전세계 곳곳에서 물류대란이 벌어진 채 한 달이 지나도록 사태 수습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해상 운송이 마비되면 정부가 어쩔 수 없이 도와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이 국내 수출입기업들에게 큰 손실을 끼쳤다"며 "한 기업의 무책임과 도덕적 해이가 얼마나 큰 피해를 가져오는지를 모두가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관계부처에도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한진해운과 비슷한 사례가 반복되지 않게 철저히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대통령의 이런 지적들은 한진해운 문제를 결자해지(結者解之)의 논리로 뒷짐지고 지켜보고 있는 정부 당국이나 금융권에 힘을 실어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결자(結者)'가 한진해운 뿐일까?
'대우조선해양'의 아이러니
작년 6월말 대우조선해양은 세계최대의 해운사인 덴마크 Maersk Line사의 18,000 TEU(Twenty-foot Equivalent Unit, 즉 20피트 컨테이너 18,000개를 적재할 수 있는)의 'Triple E Class' 선박 20척 건조를 마무리하는 선박명명식을 가졌다. 'Triple E(Economy of scale, Energy efficiency, Environment friendly)'의 의미처럼 규모의 경제를 효율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극초대형 최신 선박들이다. 그러나 금융권은 말할 것도 없고 정부가 대우조선의 경사이자 자랑인 이들 선박들이 우리 해운업계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예상하고 있었을까?
대우조선해양의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은 살려내면서 대주주가 사재까지 출연한 상황에서 글로벌 해운대란과 국가신뢰도 추락이 눈앞에 보이는데도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문제를 간단히 처리했다. 더욱이, 위의 선박명명식 불과 몇 달 후인 작년 10월 정부가 경제부총리와 경제수석 그리고 산업은행장이 참석한 소위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부실경영과 분식회계로 백척간두(百尺竿頭)에 몰려있던 대우 조선해양에 4조2천억 원 지원 결정을 했음이 밝혀졌다. 이 때문에 심각한 후폭풍을 몰고 올 수 있는 한진해운의 구조조정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가 무책임한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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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를 맡고 있는 법원은 급기야 지난달 20일 긴급간담회를 열고 한진해운의 파산을 논의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이 공직사회에 팽배한 무사안일과 무책임의 풍조를 더욱 부추기는 결과가 될까 우려되는 대목이다. /사진=한진해운 |
한진해운의 흥망성쇠는 우리 해운업의 역사다
한진해운은 '수송보국(輸送報國)'의 경영철학으로 외길을 걸었던 창업주 고 조중훈 회장이 "한국의 오나시스"가 되겠다는 자신의 인생목표이자 꿈을 실현하기 위해 1967년에 창업한 대진해운을 모태로 1977년에 설립한 한진그룹의 주력회사이다. 1969년 정부의 권유로 대한항공을 인수하여 세계유수의 국제항공사로 키워냈지만, 그는 '해운왕'의 되겠다는 꿈은 접지 않았다. 필자는 이 당시 고 조중훈 회장을 보좌하며 대한항공의 한진해운 경영지원 업무와 한진해운의 대한선주 인수팀 일원으로 참여했던 경험을 토대로 한진해운 사태를 나름대로 되짚어본다.
설립 이후 어려움에 처했던 한진해운은 1년여에 걸쳐 대한항공으로부터 경영지원까지 받아가면서 1987년에 세계15위의 해운사로 성장했다. 그 해 정부는 한진해운에 부도위기에 몰려있던 국내최대 해운사 대한선주를 인수할 것을 종용했다. 한진해운이 인수를 거절하자 당시 재무부장관 주도로 재무부, 외환은행(대한선주 주거래은행), 은행감독원 등이 나서서 인수계약을 성사시켰다. 한국 해운업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당시 정부의 리더십과 "한국의 오나시스"가 되겠다는 기업인의 집념이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승부수를 둔 것이다.
한진해운은 2002년 창업주가 타계하면서 3남이 경영권을 이어받았으나 3남 조수호 회장마저 2006년 타계하면서 부인이 회장으로 취임하였다.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넷째 여동생의 딸로 전업주부였던 최은영 회장 체제에서 해운업 경험이 없는 MBA 수준의 금융기술자들이 전문경영인으로 나서서 해운업의 반짝 호황기에 선박을 대거 사들이고 고가의 용선료를 주고 배를 빌렸다. 그 후 해운업 불황으로 운임은 반토막나고 용선료는 시세의 5배가 넘는 구조가 지속되면서 국내 최대, 세계 7위의 글로벌해운사의 좌초가 시작되었다.
무능과 무지의 합작으로 초래한 한진해운 딜레마
한진해운 사태는 장기적인 세계경기 예측이 필수인 글로벌해운업을 비경영인 기업주와 비전문가 전문경영인들이 좌지우지한 자업자득의 비극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문제가 터지면 책임회피나 채권회수에만 급급한 공직자들과 금융당국이 과연 글로벌 해운회사의 도산이 전세계 물류시스템에 대혼란을 초래하는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예상이나 하고 있었을지 의문이다. 그랬다면 한진해운 문제를 이렇게 안이하게 처리할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업이 노동집약적 제조 산업임에 비해 해운업은 규모의 경제가 요구되는 서비스(운송)산업이다. Maersk Line을 위시한 거대해운사들이 세계시장 독점을 위해 공급증대 및 운임인하로 중소해운사들을 몰아내려는 치킨게임 판에서 한진해운의 몰락은 그들에게 쾌재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사태는 정부나 금융권이 직장을 잃게 될 대우조선해양의 종업원수와 한진해운의 종업원수를 우선 고려한 정치적 판단이거나 민심을 의식한 재벌 길들이기 차원에서 무지한 결정을 내린 것이란 관측도 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한진해운 사태는 기업의 무능보다 정부나 금융권의 무지와 무개념에 더 큰 책임이 있다 할 것이다.
정부가 '팔짱 끼고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가운데, 나라 밖에서는 한진해운 선박들의 입항 거부나 압류 외에 장비임차료나 하역/운반비 등의 체납으로 해외 직원들이 곤혹을 치르고 선박승무원들은 오도가도 못 하는 배 위에서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로 한진해운은 그 동안 자구노력으로 쏟아 넣은 약 2조원 외에 보유 선박, 터미널, 해외영업망 등을 모두 날릴 상황이지만, 더 큰 문제는 발이 묶인 컨테이너 속 화물의 화주(貨主)와 화물운송업체(freighter forward)들의 피해보상 요구가 천문학적 규모로 불어나고 있는 것이다.
한진해운 사태의 출구전략은 없나?
이번 한진해운 사태는 재벌의 '해운왕' 꿈이 대를 넘기지 못하고 사라지는 비극의 문제가 아니다. 수출업체와 해운사 협력업체는 물론 지역경제의 타격으로 이어져 한국의 대외신인도와 수출경쟁력에 심각한 타격을 초래할 수 있는 심각한 위기상황이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무책임하고 안일한 자세로 '기업 자구노력에 의한 정상화'라는 구조조정 원칙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한국 해운업의 공든 탑이 무너지는 국가적 비극을 막는 리더십을 보여야 할 것이다.
현재 해운업계는 세계적인 경기불황 여파로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해운업은 좋은 물건을 만들어 남에게 파는 경쟁을 하는 제조업과는 달리 남의 물건을 남에게 나르기 위해 경쟁하는 서비스산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이 세계경기 상황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출렁이는 물동량과 운임의 등락을 정확히 예측하고 대응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 때문에 덴마크, 프랑스, 독일 등 글로벌 해운업계 강국들도 자국 해운사가 경영위기에 몰리자 정부가 수억 달러에서 수십억 달러를 지원하고 지방자치단체까지도 해운사 지원에 나서기도 했다. 위기에 처한 글로벌해운사가 자력으로 회생하기가 불가능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우리 정부의 문제 인식이나 해법은 어떤가? 최근 경제부총리는 채권단 결론을 핑계로 "밑 빠진 독 물 붓기 식의 부실기업 지원은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부실기업에는 자금을 댈 수 없다는 원칙이라면 부실덩어리인 대우조선에는 왜 수 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는가? 한진해운 사태는 재벌의 도덕성이나 경영능력 등을 탓하며 정부가 뒷짐지고 관망하기엔 앞으로 파급될 여파가 심각하다. 그야말로 전세계적 물류대란과 우리가 부담해야 할 천문학적 손실이 눈앞에 보이는데도 정부나 금융권 모두 "철저히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만 되풀이할 것인가?
이런 상황에서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를 맡고 있는 법원은 급기야 지난달 20일 긴급간담회를 열고 한진해운의 파산을 논의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이 공직사회에 팽배한 무사안일과 무책임의 풍조를 더욱 부추기는 결과가 될까 우려되는 대목이다.
지난달 27일 해수부 국정감사에서 김영석 장관은 "공적자금을 투입해서라도 한진해운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고 답변했다.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장관도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한진해운이 파산할 경우, 현재 글로벌해운산업의 구조 및 경쟁체계에서 다시 한진해운과 같은 국적선사를 성장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국가물류시스템 경쟁력 회복이 요원해진다"며 정부에 대해 '선 구제, 후 수습'을 주장했다. 이것이 정답 아닌가?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 객원교수
[이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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