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만경영 외과수술 필요…책임성·전문성 검증 국가경제 도탄 막아야
   
▲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공기업 개혁과 낙하산 인사 금지, 이제는 실천해야 한다. 지금껏 모든 대통령들은 공기업 수술, 낙하산 인사 폐지를 공약해 왔지만, 좀체 없어지지 않는다.

2012년 박근혜정부 초기에도 모럴 해저드에 빠진 공기업 대수술에 나섰다. 당시 부총리는 “파티는 끝났다”고 했다. “이제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재정위험 관리에 총력을 쏟아야 할 때”라고도 했다. 그래선지 이 정부 초기 공기업 몇 개가 줄긴 했지만, 현재의 통계를 보면 그 수가 오히려 늘었다.

점점 늘어나는 공기업의 수

기재부는 2008년 ‘공공기관 선진화 계획’에 따라 305개이던 공공기관을 2010년 286개로 줄인 뒤 2012년까지 유지했고, 이번 정부가 ‘공공기관 정상화’라는 목표 아래 꾸준히 통폐합과 기능 조정을 추진했다. 그러나 결과를 보자. 이번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이후 △2013년 295개 △2014년 304개 △2015년 316개 △2016년 323개 등으로 공공기관은 매년 증가했다. 4년 전보다 37개(12.9%)나 증가했다. 국회의원의 무리한 입법으로 공공기관의 수가 오히려 증가하였다(한국경제 2016-05-23. 김주완 기자). 그래서 예산이 들어가는 의원입법은 금지하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 2011년 강승규 전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사회적기업 육성법 개정안’에 따른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 2011년 강석호 새누리당 의원이 국회에 제출한 ‘수산지원관리법’에 따른 수산지원사업단

- 2016년 송영근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국방전직교육원법’에 따른 국방전직교육원

- 정갑윤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국립대학법인 울산과학기술대학교 설립ㆍ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따른 UNIST(울산과학기술원). 이미 KA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광주과학기술원,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등 네 곳의 과학기술원이 공공기관으로 지정돼 있다.

- 2015년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 개관. 직원 58명 중 10명(17.2%)이 환경부 공무원 출신

   
▲ 비극의 원인은 대우조선해양이 너무 오랜 기간 '주인 없는 회사'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인 없는 회사가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건 상식이다./사진=미디어펜


주인 없는 회사는 망한다. 대우해양조선은 공기업은 아니지만 공기업인 산업은행의 자회사가 됨으로써 공기업이나 다름없는 지위를 취득했다. 대우조선은 대우그룹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2000년 산업은행 자회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자산 10조원이 넘는 세계적 조선사가 ‘주인’ 없이 국책은행 관리를 17년째 받고 있다. 2016년 과거 10여년 간 경영진과 대주주 관계자가 모두 부패 혐의자가 되어 수사를 받고 있다. 그동안 민영화의 기회가 두세 번 있었으나, 관여자들이 부실에 눈감고 자리보전에 연연한 결과 오늘날의 대형 참사를 불러왔다고 한다.

비극의 원인은 대우조선이 너무 오랜 기간 ‘주인 없는 회사’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 주인 없는 회사가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건 상식이다. 기업은 주인이 있어야 경영성과가 확실하게 나온다는 것은 수많은 경영학 논문에서 증명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로 가고 있다. 공기업이 민영화되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헐값에 팔면 민형사 책임이 두렵고, 정작 팔리면 낙하산이 着地할 자리만 날아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 표. <공기업 이사장 2015년 고액연봉 예시> (51개 기관장 평균 1억7천4백만 원)./자료=김경수 국회의원실

민영화를 꾸준히 추진하여야 한다

민영화가 중요한 이유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공기업인 서울메트로의 ㎞당 영업비용은 86억 원인데, 민간 회사인 서울시메트로㈜의 9호선은 36억 원이다. 선로 1㎞당 직원은 서울메트로는 75명, 9호선의 서울시메트로㈜는 22명이다. 비슷한 일을 하는데 이렇게 인원과 비용에서 차이가 난다. 9호선은 빅데이터를 이용하여 출퇴근시간에는 주요 역에만 정차하는 급행열차를 집중 배치한다. 반면 지난해 서울시 지하철 공기업들의 적자가 4,100억 원이다.

나아가 서울시는 서울메트로(지하철 1~4호선)·서울도시철도공사(5~8호선)와 단체 협상에서 “노사가 합의하지 않으면 성과연봉제를 도입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서울지하철 공사의 성과연봉제 도입은 어렵게 되었다. 성과연봉제에 대하여 찬반론이 팽팽하지만, 이 제도는 일 열심히 하고 능력 있는 직원은 월급 올려주고 빨리 승진시키자는 것이어서 잘 운용한다면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고 기여도에 따른 공평한 보상으로 정의사회가 실현될 수 있다. 그러므로 공기업 262곳 중 257곳에서는 이미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

성과연봉제는 공기업의 경영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위한 개혁과제로 2010년 상반기부터 시작됐으나 6년이 지나도록 마무리가 되지 못했다. 300인 이상 기업의 80%가 시행할 정도로 민간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제도이지만, 서울시 산하 서울메트로, 서울도시철도공사, SH공사, 서울농수산식품공사, 서울시설공단 등 5개 공기업만 빠져 있게 됐다.

이 제도를 반대해온 노조의 사실상 승리이며 서울시장의 무책임한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있다. 야당은 한술 더 떠 ‘사회적 합의기구 설치’ 운운하며 국회로 이 문제를 끌어들이려고 한다. 지금까지의 국회의 운영을 보면 국회가 어떤 문제를 제대로 해결한 것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영 믿기지 않는다. 오히려 많은 분들이 걱정하듯이 국회는 분열과 갈등의 판을 더 키워 이득을 보려는 전략이 아닌지?

   
▲ 기재부는 2008년 ‘공공기관 선진화 계획’에 따라 305개이던 공공기관을 2010년 286개로 줄인 뒤 2012년까지 유지했고, 이번 정부가 ‘공공기관 정상화’라는 목표 아래 꾸준히 통폐합과 기능 조정을 추진했다./사진=연합뉴스

왜 낙하산이 문제인가

낙하산 인사의 문제는 전문성도 독립성도 없다는 것이다. 업계에 대하여 아는 것이라고는 도장 찍는 것밖에 없는 인사가 하루아침에 CEO(이사장, 대표이사 사장)나 CFO(감사 또는 감사위원)으로 내려온다.

낙하산 인사의 백미(白眉)는 감사(監事)이다. 기업의 부정을 조기에 적발하여 정상화 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가 감사이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크게 표가 나지도 않는 직책이기도 하다. 제일 만만한 자리인지 아무나 한다.

대우조선해양은 공기업은 아니지만 공기업인 산업은행의 자회사가 되면서 공기업이나 다름없이 되었다. 이 회사의 전 CEO는 감사실을 아예 폐지해버렸다. 감사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자리쯤으로 생각한 것이다. 감사위원회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이라고 변명한다. 이는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CEO의 치명적 무지를 보여준다. 

감사위원회가 존재한다고 해서 감사실을 폐지한다는 것은 실로 어이없는 궤변이다. 이러고도 망하지 않는다면 이상한 것이다. 주인 없는 회사에 국민 혈세가 투입되고 성과급 잔치를 벌인 노조에, 수백억 원을 횡령한 직원까지 비리에 분노를 넘어 허탈감만 깊어간다.

며칠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 인사가 이루어졌지만, 내년 상반기까지 신용보증기금, 자산관리공사, IBK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술보증기금, KB금융지주, 예탁결제원 등 금융사와 금융공기업 10여 군데의 CEO 인사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한국거래소 인사는 사전에 낙점설도 파다했는데, 소문대로 실현되었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산은과 수은 모두 관료 출신 또는 정권과 가까운 인사들이 행장의 대를 이어왔다.

전형적인 구조는 노조가 낙하산 반대운동을 벌이다가 임금인상·복지혜택을 얻어내면서 낙하산을 용인하는 순서이다. 이는 방만 경영으로 이어져 기업은 도산 문턱으로 질주하게 된다. 천문학적 액수의 국민 세금으로 겨우 살려 놓으면 다음 정권에 가서 다시 시한폭탄이 된다. 근래 산은 CEO는 거의 예외 없이 퇴임 후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한국거래소의 경우도 노조가 새로 선임된 이사장의 출근저지 투쟁과 업무거부 등 강경대응을 선언했지만 뭐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이후 △2013년 295개 △2014년 304개 △2015년 316개 △2016년 323개 등으로 공공기관은 매년 증가했다. 4년 전보다 37개(12.9%) 증가했다./사진=미디어펜

맺으며

2008년에 시작된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고 도이치뱅크 사태로 다시 국제 금융이 요동치고 있다. 금융기업 인사는 정말 제대로 해야 한다.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고칠 수 없는 낙하산 인사, 변해야 하는 데도 결코 변하지 않는, 참으로 딱한 이 전통은 의지력 강한 박  대통령도 어쩌지 못하는 것 같다. 국민이 이해를 해야 하는 부분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전문성이라도 철저히 검증해 주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어느 누구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는 확고한 독립성과 오랜 경륜으로 금융분야의 맥락을 이해할 줄 아는 전문성은 금융기관 임원의 필수 조건이다. 정피아, 관피아가 문제가 아니다. 공기업 중에는 방만한 경영으로 썩을 대로 썩어 외과적 수술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낙하산이 반드시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또한 정권창출에 기여한 분에게 반드시 보상을 해 주어야 할 필요성을 외면하기도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그 인사가 전문성이라도 있는지 확실하게 검증해야 한다. 최소한 그것만이라도 제대로 하는 것이 국가 경제를 도탄에 빠뜨리는 것을 막는 길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 글은 바른사회시민회의가 11일 주최한 ‘반복되는 낙하산 인사, 해법은 없는가’ 토론회에서 패널로 나선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발표한 토론문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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