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치료 받고도 사망했다면 달라졌을것…미확인 언사에 좌절감"
가톨릭농민회 간부 '외인사' 소견서 요구사실도 언급…"이유 모르겠다"
[미디어펜=한기호 기자]지난해 '민중총궐기' 시위에서 경찰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뒤 의식불명에 빠진 끝에 숨진 고(故) 백남기씨 주치의였던 백선하 서울대학교병원 교수는 11일 자신이 백씨 사인을 '병사'로 적시한 사망진단서에 대해 "317일 동안 치료를 맡아온 주치의로서 제 스스로의 의학적 판단"이라며 야권 등의 진단서 수정 요구에 굴하지 않았다.

백선하 교수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국립대와 국립대병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장에 출석하기 전 미리 준비한 원고문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백씨의 사인을 병사로 기술한 근거를 설명했다.

백 교수는 "환자분은 외부 충격으로 인한 급성경막하 출혈로 응급실에 왔고 저는 환자분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응급 수술을 시행했으며 사망하시기 직전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해 치료했다"고 강조했다.

또한 "환자분은 급성신부전증의 합병증인 고칼륨혈증에 대해 꼭 받아야 하는 치료를 받지 못해 심폐정지가 왔으므로 직접적 사인으로 심폐정지, 선행(先行)사인 신부전, 원(源)사인을 급성경막하 출혈로 기술했고 사망 종류는 병사로 기술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만약 환자분이 받아야 할 적절한 치료를 받고도 사망에 이르렀다면 사망진단서 내용은 달라졌을 것"이라면서도 "고칼륨혈증의 적절한 치료인 체외투석 치료를 원치 않았던 유가족들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한다. 마음의 고통을 겪고 계신 유가족을 비난하거나 탓하려는 게 아님을 말씀드린다"고 밝혀뒀다.

그러면서 "하지만 사망진단서 작성은 환자분의 진료를 맡아온 주치의한테 맡겨진 신성한 책임과 의무이자 권리"라며 의학계 일각의 이의제기를 겨냥 "317일 동안의 진료 중 일부만에, 사망 후 2주도 되지 않는 기간에 (참여했거나), 전혀 참여한 적 없는 의료인은 환자의 입원부터 사망까지 전 과정을 주치의만큼 알고 있지 못한다"고 반박했다.

   
▲ 백선하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외과 교수가 11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 일반증인으로 출석해 위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백 교수는 "수술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고인의 사망진단서에 소신껏 담아 작성했다"며 의학계 외부로부터의 비난에 대해서도 "확인되지 않은 수많은 말들, 하지도 않았는데 했다고 버젓이 활자화돼 나오는 말들 앞에서 개인적으로 커다란 무력감을 느낀다"고 에둘러 비판했다.

그는 백씨의 회복과 치료에 최선의 노력을 해왔음을 재차 강조한 뒤 "환자분을 끝까지 지켜드리지 못했다. 이 자리를 빌어 고인께서 평안히 영면하시길 기원드리며 유족분들께도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해드린다"고 덧붙였다.

이날 백 교수는 국감이 개시된 뒤에도 '사인을 변경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없다"고 잘라 말하며 "대한의사협회의 지침을 숙지하고 있으며, 전공의가 진단서를 작성했더라도 그 책임과 권한은 저에게 있다"면서 "어떤 외부 압력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세연 새누리당 의원이 사인 진단과 관련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판단을 하겠느냐고 물었을 때에도 "같은 진단서를 작성했을 것"이라고 의학적 소견에 따른 결정임을 거듭 강조했다.

같은당 나경원 의원이 "만일 외인사라고 한다면, 이를 경찰 물대포에 의한 외인사라고 판단할 수 있느냐"는 질문엔 "제가 판단할 일은 아니고, 법의학자나 사법당국이 판단할 문제"라고 답했다.

백씨가 신장투석을 받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보호자들은 고인이 '회복이 가능하지 않은 상태가 되면 적극적으로 치료받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다'고 하더라"라고 설명했다.

백 교수는 백씨의 사망 이틀 전 백씨가 활동했던 가톨릭농민회의 간부가 찾아와 '외상으로 인한 사망이 확실하다'는 내요의 소견서를 요구했다는 증언도 했다.

백 교수는 "9월23일 (백씨의 딸) 백도라지씨가 아닌 가톨릭 농민회 사무총장이 소견서를 부탁했었다"며 "'환자가 사망할 경우 부검을 원치 않는다'는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하겠다고 하더라. 그를 위해 소견서가 필요하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농민회 사무총장이) 외상으로 사망한 것이 확실하다는 내용의 소견서를 요구했다"면서 "당시 그 부검은 제 영역을 넘어가는 일이기 때문에 제가 발급하는 건 적절하지 않아 발급 못한다고 말했다"라고 전했다.

가족이 아닌 농민회 간부가 소견서를 요구한 이유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고 했다.

한편 백 교수와 함께 일반증인으로 채택돼 국감장에 출석한 서울대병원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은 "사망진단서와 진료가 적법하고 적정하게 처리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백씨의 사인과 보험급여 청구 당시 질병코드가 다른 것에 대해선 "사인과 급여청구 때 병명이 다른 경우가 흔히 있다. 초기에 입력된 병명으로 계속 보험금을 청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디어펜=한기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