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지호 기자] “맥킨지의 보고서는 국가 기간산업인 조선업과 대우조선해양의 매각이나 청산에 따른 파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작성된 겁니다. 외국계 회사라 국내 정서에 대한 이해가 없이 작성된 보고서라서 신뢰할 수 없어요. 우리가 대우조선해양의 신용등급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는 점은 일부 인정하지만 신용평가사에 ‘뒷북 평가’라는 지적은 정말 뼈아프네요.”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의 ‘독자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맥킨지 보고서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맥킨지 보고서에 대한 파장과 반발이 조선 빅3와 금융당국에 이어 신용평가업계까지 확산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신평업계가 반발하기에는 그간 제대로 된 진단을 내리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부정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맥킨지 대우조선 보고서, 대우조선에 ‘사형 선고’조선해양플랜트협회 지난 6월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에 한국 조선업 구조조정 컨설팅 보고서를 의뢰했다. 이 결과보고서를 바탕으로 정부는 오는 10월 말에 조선해양플랜트협회가 조선업 구조조정의 밑바탕을 그리겠다는 방침을 세워두고 있다. 맥킨지는 3사를 모두 안고가려는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보고서 초안에서 대우조선해양의 독자 생존이 불가능하다며 사실상 ‘사형 선고’를 내렸다.
맥킨지는 대우조선의 영업이익률이 오는 2020년 최근 5년(2011년~2015년, -5%)의 두 배인 -10%까지 떨어져 현금유동성이 바닥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대우조선해양이 2020년 3조3000억원의 자금이 부족한데다 그룹사도 없고 재무구조도 가장 취약해 3사 중 가장 살아남기 힘들다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우조선해양은 물론, 그간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었던 정부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종합국감에서 “내용에 이견이 많다”며 수습에 나섰지만 하루 앞서 “추가 자금지원이 없다”며 강하게 대우조선해양을 압박하던 태도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금융당국 역시 정부의 입장이 정해지면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대응을 결정할 것이라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나타냈다.
이동훈 금융위원회 기업구조개선과장은 “맥킨지의 보고서대로 정부나 금융당국이 해야하는 것은 아닌 참고 사항에 불과하다”며 “대우조선해양의 자구노력을 강화한다는 기본원칙 외에는 정해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신평사, 맥킨지 보고서에 “기분 나쁘다”이런 와중에 신평사들 역시 강하게 맥킨지의 보고서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여기에는 자신들이 그동안 대우조선해양의 신용등급을 뒤늦게 하향 조정했다는 비판에 시달리던 것에 대한 반발감도 일부 작용했다. 신평사는 아니지만 정부가 외국계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를 통해 조선업 구조조정 기틀을 잡으려는 것이 마치 국내 신평사들에 대한 불신을 나타내는 걸로 비춰진다는 것이다.
유건 한국신용평가 기업평가본부 실장은 “맥킨지 보고서야 정부가 구조조정을 위해 컨설팅을 맡긴 것이지만, 신평사는 기업이 제출한 재무정보에 따라 신용등급을 평가하는 것일 뿐인데 급작스럽게 재무정보가 바뀌면서 피해를 입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신평사들은 지난해 대우조선의 신용등급을 A로 유지하다가 대규모 손실을 발표하자 BBB로 강등된 데 이어 그해 말에는 BB+로 다시 조정하는 등 ‘뒷북’ 신용평가로 빈축을 샀다. 이러자 금융당국은 지난달 모회사나 계열사를 배제한 개별기업의 ‘자체신용도 제도’ 등을 내용으로 한 ‘신용평가시장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는 등 파장이 일었다.
NICE신용평가, 한국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 등 3개사 중심으로 형성된 과점 체제를 깨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제4 신용평가사의 허용은 보류됐다.
특히 대우조선해양 사태를 두고 채권 발행사가 신평사를 선정하는 구조에서 신평사가 소신 있는 평가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그러나 맥킨지 역시 의뢰는 조선해양플랜트협회로부터 받았지만 비용은 조선 3사가 부담해 사실상 기업으로부터 직접 돈을 받는다는 점에서 국내 신평사들은 할 말이 없게 됐다. 다만, 이번 맥킨지 보고서 역시 대우조선해양 등 비용을 지불한 기업이 반발하고 나서면서 8월말로 예정됐던 최종보고서 지출이 지연되는 등 국내 신평사와 같은 구조적 한계는 보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내 신평사들은 시장에서의 평판보다는 당장의 수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1년에 830억원 정도에 불과한 국내 신용평가시장에 비해 외국은 규모가 크다보니 컨설팅 업체나 신평사들이 소신 있게 의견을 내는 걸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국내 증권사가 외국계 증권사에 비해 매도 보고서를 내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이유”라며 “제4 신평사가 생긴다고 해도 큰 변화를 일으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디어펜=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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