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박 세몰이에 오히려 일부 무계파·非실세 위주로 내부비판 나와
[미디어펜=한기호 기자]최순실 비선실세 파문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고립무원'에 처한 가운데 새누리당 비박계의 '이정현 몰아내기' 공세가 시작됐음에도 이전 친박계 실세들은 수수방관하거나, 초재선 위주로는 계파를 탈주하는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치 지향보단 계파 세몰이에 좌우된 정치인들의 말로라는 지적이 나온다.

당내에선 이미 '폐족 친박'으로 부르며 이들의 처참한 미래를 점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가운데, 오히려 그동안 무계파로 분류되던 여권 인사들이 비박계의 단체행동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좌장격 김무성 전 대표와 여성 최다선 나경원 의원 등을 위시한 비박계는 전날(31일) 오전 초·재선 의원들을 끌어모아 50여명이 회동하고, 이정현 지도부 사퇴 촉구를 위한 의원총회 소집 요구서에 50명이 서명해 정진석 원내대표에게 전달했다.

당초 계획했던 연판장 돌리기와 지도부에 대한 즉각적 사퇴요구는 잠시 보류한 채, 1일 정 원내대표의 전신마취를 동반한 수술 일정과 회복을 기다린 뒤 이르면 2일 오후쯤 의총을 소집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의 복심으로 꼽히던 이정현 대표는 사퇴 요구에 직면하자 "어려울 때 그만두고 물러나고 도망가는 것은 선택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쉬운 것"이라고 거부 의사를 확고히 했다.

박명재 사무총장도 "지금 누구를 탓하고 비난하고 책임을 돌리기 보단, 다른 접근이 필요하지 않겠나"라고 가세했고, 이보다 앞서 정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 공개발언에서 "당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끝날 때까지 '수미일관'하게, 공명정대한 자세로 임할 것"이라고 사퇴 거부를 시사한 바 있다.

비박 주도 회동에 참석했으나 ▲박 대통령의 수사 협조 ▲조속한 거국중립내각 구성 ▲당 지도부 총사퇴 등 합의사항에 이견을 내면서 서명에 동참하지 않은 의원도 있었다.

비례대표 초선인 전희경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지도부 사퇴가 현재 대한민국 빅이슈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지도부와 비박계가 모두 지지한 거국중립내각 구성론에 대해서도 "이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의 향방에 큰 문제"라며 "문재인의 더불어민주당과 박지원의 국민의당에게 지분을 나눠주겠다는 건 올바르지 못하다"고 '반기'를 들었다.

특히 "그들 역시 대한민국 파탄의 주역들인데 소나기 피하자고 아무 집 처마라도 비집고 들어가자는데 결코 찬동할 수 없다"며 "총리감으로 거론된 인사들의 면면에 억장이 무너진다"고 적은 뒤 비박 주도 회동에서 이같은 의사를 피력하고 나왔음을 밝혔다.

전 의원은 "우리가 지키려는 건 특정 정권의 명운도, 당도 아닌 대한민국과 숭고한 가치"라고 상기시키며 '가치 지향'의 태도를 견지했다. 그러나 비공개 회동 중 전 의원의 반론 제기에 일부 의원은 야유를 보내며 '입막음'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박에도 비박에도 속하지 않았던 새누리당 한 전직 의원은 비박 주도 회동을 겨냥 "불난 집에 휘발유를 붓고 있다"고 촌평하기도 했다.

이같은 움직임에도 비박계의 '이정현 몰아내기'가 공개리에 진행되고 있지만, 원내에서 이 대표를 보호하기 위해 나서는 친박은 아직 한 명도 없는 상황이다. '최순실 정국'에 행여나 유탄을 맞을까 몸을 사리고 있어, 8·9전당대회 이후 기세등등하던 모습과는 180도 반전된 모습이다.

친박 '맏형' 서청원 의원은 전날 오후 여의도 한 일식당에서 열린 여야 3당 중진의원 만찬 회동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비박계의 단체행동에 대해 "자기들이 할 따름이지 나는 거기에 대해 얘기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앞서 지난 27일 "대통령이 인사와 내각 쇄신을 통해 동력을 되찾고 국정을 제대로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우리도 도와줄 의무가 있다"고 중재 노력을 한 바 있지만, 29일 대규모 '대통령 하야' 집회가 발발하는 등 여론 악화에 당혹감을 숨기지 못한 채 개입을 삼가는 모양새다. 

좌장격인 최경환 의원은 지난 29일 비공개 회동 이후 당내 의원들을 물밑에서 접촉하며 사태 수습안을 논의했지만 묘수가 없어 발만 구르는 분위기다.

박 대통령의 또다른 복심으로 꼽혔던 김재원 전 정무수석이 전날 출입기자들에게 보낸 문자에서 "험한 시기에 홀로 청와대를 빠져나오려니 마음이 착잡하다"면서 "외롭고 슬픈 우리 대통령님 도와달라. 꼭 부탁드린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정도에 그쳤다.

실세와는 거리가 멀었던 정우택 의원이 최순실 파문으로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 회고록 파문을 피하는 '호재'를 맞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를 겨냥해 "사실상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고 탄핵을 선동하는 발언을 일삼았다"고 날을 세우고, 강경파 중 일원인 김진태 의원이 '문재인 특검' 요구와 함께 JTBC의 최순실 국정개입 정황 보도 관련 사실관계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사태 수습엔 직접 나서지 못하고 있다.

여타 재선 의원 위주 강경파도 마찬가지로 공개적 활동에는 머뭇거리고 있지만, 비박계의 단체행동은 지나친 '당 흔들기'라는 시각을 공유하고 있다.

한 친박계 재선의원은 이날 한 매체와 통화에서 "청와대가 참모진을 사퇴시켰고, 당에서도 거국내각 구성을 제안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며, "지금과 같이 계속 흔들어대면 결국 당을 깨자는 것"이라고 불쾌감을 토로했다. 

또 다른 친박계 인사 역시 "당 지도부가 인적 쇄신을 요구하고, 거국내각 구성까지 받아들인 것은 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결단한 것 아니냐"며 "비박계의 집단 행동은 또다른 혼란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가운데 살아남기 위해 비박 단체행동에 가담하는 '탈주자'들도 눈에 띄었다. 원내대표 재임 중 '신(新)친박'을 자처했던 원유철(5선·평택갑) 의원의 측근으로 꼽히는 유의동(재선·평택을) 의원, 박근혜 정부의 역점사업인 창조경제혁신센터 사업을 적극 홍보했던 송희경(초선·비례) 의원, 이 대표가 직접 대변인으로 임명했던 김현아(초선·비례) 의원, 이밖에 친박계로 분류되던 경대수·김성찬·김순례 의원 등이 '최순실사태 진상규명과 국정 정상화를 위한 국회의원 모임' 성명에 서명했다.

'뼈박(뼛속까지 친박)'을 자칭했으나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던 이학재(3선·인천 서구갑) 의원도 서명했고, 경제학자 출신으로서 박근혜 정부의 노동·규제개혁과 경제활성화 정책 당위성을 강력히 설파해온 김종석(초선·비례) 의원도 이름을 올렸다. 친박 꼬리표를 떼기 위한 생존 본능이 발동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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