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주의의 피라미드의 정점서 군림…꿈 많은 청년들에게 좌절감 안겨
   
▲ 여명 자유경제원 연구원
당당했어야 했다. 도정일 교수(경희대학교 명예교수)를 둘러싼 가짜 박사 학위 논란에 대해 도 교수는 <뉴데일리와>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공부하러 갈 때 나의 목적은, 학위 그 자체에 있지 않고 공부를 해보고 온다는 목적이었거든요. 논문을 통과시켰으니까, 끝난 것을 의미한다고. 형식적 욕구를 갖추는 일 자체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괜찮다고 스스로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하며 '불행하게도', '고의는 아니었습니다.' 등의 표현으로 일관했다.

둘 중 하나여야 했다. 모 교수는 한 일간지의 '실력 대신 학력을 묻는 사회'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도 교수의 가짜 박사 학위 관련 논란을 비호함과 동시에 '학벌주의에 찌든' 한국사회를 나무랐다. 도 교수가 석․박사 학위를 수료한 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본교의 학위 시스템을 친절하게 설명하며 "이러이러 하므로 도 교수는 박사 학위를 취득한 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그러고는 한국의 학벌주의 사회를 비난했다. 요지는 '도 교수의 저술 활동과 강연 내용으로 판단컨대 그에게 박사 학위가 없었다손 치더라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충분한 학문적 권위를 누렸을 것이다.'이다. 그래서 둘 중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도 교수가 진짜 박사라는 것인가 아니면 학벌주의 사회인 한국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인가.

"우리나라는 미국에서 박사를 따 와야 교수 임용이 돼"라는 말은 학문의 길을 걷고자 하는 학부생들이라면 선배들로부터, 스승으로부터 한 번쯤은 들어봄 직 했을 말이다. 그리고 이 말을 듣는 학생들의 대부분이 미국 유학이란 하나의 이상향으로만 듣고 넘긴다.

   
▲ 가짜 박사학위 논란을 불러 일으킨 도정일 교수. 도 교수는 세월호 참사,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등 최근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이슈들 마다 정의를 부르짖으며 '시국'에 앞장 서 오던 인문학자였다. /사진=연합뉴스

미국에서 유학할 만한 물리적 여유도 정신적 여유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도들이 학문에 대한 열정 하나로 국내 박사를 어렵게 어렵게 취득한 후 시간 강사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러니까 하와이대학교 석․박사 학위를 수료하고 온 직후 바로 경희대학교 교수로 임용된 도 교수는 그가 늘 외쳐오던 정의라는 용어와는 참으로 모순되게도 우리 사회의 학벌주의 피라미드의 정점에서 군림해 온 셈이다.

도 교수가 (1만8000원을 웃도는) 여러 저서와 강의를 통해 설파한 바 있는 '정의', 그리고 '자본주의가 더럽히는 인간의 가치' 등을 진심으로 체화(體化)했다면 그는 당당했어야 했다. 도 교수를 비호한다며 칼럼을 기고한 모 교수 역시 도 교수를 위한다면 그런 논리는 펼치지 말았어야 했다.

그의 칼럼으로 인해 도정일 교수는 학벌주의 대한민국에서 미국 대학교 박사학위 취득을 위조하고 강의와 저술활동을 해 오면서 정의와 인권 그리고 사람의 가치를 설파해 온 몹시 모순적인 위인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진짜 피해자는 대학이라는 학문의 상아탑에서 교편을 잡으며 우리나라 지성사에 이바지하고 후학을 양성하는 길을 꿈꿨다가, 현실과 형편의 벽에 부딫혀 아스라이 져버린 필자 또래의 학도들이다.

세월호 참사라든지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이라든지 하는 최근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이슈들 마다 정의를 부르짖으며 '시국'에 앞장 서 오던 인문학자 도정일 교수. 늘 살뜰한 모습으로 매스컴에 비춰지는 그조차 '학벌주의에 찌든' 이 대학 사회를 바꾸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수료 상태에 머문 본인의 이력을 거짓 명시하는 식으로 편승해 왔다면 도대체 이런 사회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말이다.

당연히 한국의 지식인 사회는 학벌보다 실력으로 인정받는 능력 중심의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역대 대통령들이 대단한 학자여서 대통령이 됐던 것도 아니고 우리 사회의 존경받는 리더들이 모두 박사 학위를 기본 아이템으로 장착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학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것이 정의로운 사회이다. 내 역량과 노력이 만들어 낸 실력이 정당한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

학계의 정의는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미국 박사냐 한국박사냐 유럽 박시냐를 차별하지 않는 것이 다. 낮에는 학업을 수행하고 밤에는 호프집에서 아재들의 시시껄렁한 농담을 받아가며 학위를 따내야 하는 여느 대학원생들의 노력이, 대중 앞에서 말 '좀' 하고 글 '좀' 쓰는 알량함과 같은 보상을 받을 수는 없는 일이다. /여명 자유경제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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