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 팔선녀, 악마, 사교, 요설, 교주, 심령 대화, 세월호 인신공양…. 사이비 종교나 무속에서나 접했을 듯한 요사스런 말들이 대한민국을 뒤덮고 있다. 출처불상 확인불가 주술에 씌여 질펀한 저주의 굿판이 벌어지고 있다. 꼬리에 꼬리는 무는 괴담 쓰나미는 금방이라도 대한민국을 삼킬 듯한 기세다.
쓰나미를 막아야 할 정치인의 입을 통해, 감시해야 할 언론 지면을 통해, 진실을 알려야 할 방송을 통해 걸러지기는 커녕 확대재생산 되고 있다. 사교라고 외치고 악마라고 손가락질 하더니 급기야는 팔선녀까지 불러들였다. 그야말로 요설이 판을 치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과 관련 연일 쏟아지는 말들이다. '비선' 의혹을 받던 최순실씨는 사교의 교주로 둔갑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요설에 속아 넘어간 사이비 신도가 됐다. 박 대통령이 최순실 아바타라는 주장에 심지어 지적인 능력이 부족해서 대면보고를 회피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성을 잃은 비이성이 판치는 미친 사회로 질주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주술에 걸려들었다. 악마에 씌었다. 요설에 속아 넘었다. 정치인은 퇴마사를 자처하고 언론은 악마나 귀신을 쫓듯 온갖 저주의 말들을 쏟아내는 저주의 굿판을 벌이고 있다. 그들 눈에 뭣이 보였길래 이토록 광기서린 주문을 외치고 있을까. 무엇이 그들을 칼날 위에서 춤추게 하고 있을까.
팔선녀를 불려 들었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선녀가 아니라고 했다. 선녀는커녕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허위에 음모라며 법적 대응까지 하겠다며 펄쩍 뛴다. 악마와 손잡았다는 억울한 누명을 쓴 검찰은 악마가 아닌 강남 아줌마를 조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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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갖가지 버전의 '최순실 괴담'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괴담은 음모론과도 맞닿아 있다. 괴담과 음모는 불신을 자양분으로 사회 구성원들의 불안을 자극한다. 그들의 응집된 불만은 국가를, 정부를, 국가 지도자를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서로의 가슴을 겨냥한 보이지 않는 방아쇠다. /사진=연합뉴스 |
사이비 교주에 요설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을 죄를 지었다며 얼굴 가리고 나왔다가 지금은 구치소에 수감된 채 우리말로 조사에 응하고 있다. 심령 대화는 애초 가당치도 않는 말이다. 연설문 손 좀 봤다고 했다. 그 연설문은 타이핑 된 문서로 돼 있다. 심령 대화를 하면 될 것을 왜 굳이 수고스럽게 자판을 두드리고 문서로 작성했을까?
이들의 댓거리에 오방낭도 등장했다. 오방낭에 주술적 의미가 담겼다며 사교의 대단한 증거물을 확보한 듯 의기양양하다. 오방낭은 전통 복주머니다. 오방낭은 무속도 부적도 아니다. 국가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등장했다. 서양의 색채에 반해 우리의 색채가 없음을 안타깝게 여긴 정시화 국민대 교수가 1983년에 한국인 특유의 색채를 연구해 오방색을 포함한 한국인의 색채의식을 발표했다.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도 정시화 교수의 '한국인의 색채'가 출판됨으로서 우리의 전통색과 음양오행적 색채체계가 정립됐다. 한국인의 색을 찾아낸 지 겨우 30년도 안됐다. 한국인의 색을 찾아 우리의 정체성을 가꾸어 나가도 모자랄 판에 무식도 유분수다.
이걸로 부족했던지 대통령의 옷차림을 가지고 트집을 잡는다. 벌거숭이가 아닌 이상 누구나 옷차림은 신경 쓴다. 깔맞춤도 한다. 하물며 대통령이 외교 행보에서, 정상회담에서 옷차림을 신경 안 쓴다며 그게 문제라며 문제다. 세비 받아먹는 국회의원의 지적 치고는 천둥벌거숭이에 낮도깨비 같은 그야말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다.
갖가지 버전의 '최순실 괴담'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의 신천지 방문설, 세월호 7시간 의혹, 최 씨의 혐연감정이 담뱃값 인상을 이끌었다는 황당한 내용까지 떠돈다. 담뱃값 인상은 청와대가 주도했다는 사실 외엔 최 씨의 개입 정황은 밝혀진 바가 없다.
'최순실 괴담'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지며 누리꾼들을 경악하게 한 것은 '세월호 인신공양설'과 박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의혹'이다. 해당 음모론은 박 대통령의 행방이 불분명했던 7시간 동안 최 목사 사망 20주기 천도재를 지냈으며, 천도재를 지내기 위해 세월호 참사의 피해자들이 희생됐다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종교 관련 괴담의 진원지는 JTBC다. 손석희 앵커는 "최태민이 박근혜 대통령을 지렛대 삼아 한국 교회를 이용했다는 보도 등을 통해 개신교의 흑역사가 드러나고 있다"며 "불똥은 개신교로도 튀었다"고 전했다.
JTBC는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의 발언과 이재명 성남시장 발언을 전하기도 했다. 김용옥 교수는 지난달 28일 "대통령이 최순실의 아바타로 무당춤을 췄다"는 발언을, 이재명 성남시장은 지난달 25일 "대한민국은 원시 샤머니즘 무당통치국으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근거도 없고 의혹이 밝혀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JTBC는 전파의 힘을 빌어 술자리 안줏감도 안 되는 잡스런 말을 쏟아내고 배설구 역할을 하고 있다.
혼란스런 정국을 악용해 3류 소설을 쓰고 있다. 괴담은 괴담으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턱도 없는 광우병, 천안함, 메르스, 세월호, 사드, 경주지진 괴담으로 엄청난 사회적 비용과 갈등과 분열의 아픔을 경험했다. 또 다시 최순실 괴담으로 잘못된 과거의 황당한 일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괴담은 음모론과도 맞닿아 있다. 괴담과 음모는 불신을 자양분으로 사회 구성원들의 불안을 자극한다. 괴담은 사실과 진실보다 중독성과 전염성이 강하다. 웬만해서는 사그라 들지 않는 생명력도 무섭도록 질기다. 인터넷이나 소셜미디어에 오르는 순간 전 국민에게 거의 동시에 전달되는 핵분열 같은 전파력을 갖는다. 이보다 더 강력한 무기는 없다.
괴담은 보이지 않는 적이다. 거짓의 옷을 입고 진실의 가면을 쓴 채 유령처럼 다가온다. 괴담은 공포와 분노를 안긴다. 공포는 사람을 모으고 분노는 광장으로 내몬다. 거대한 실체 없는 소문과의 전쟁이 일어난다. 한바탕 굿판이 벌어진다. 정면승부가 아니다. 진실은 뒤늦게 찾아오고 자각은 더 늦다. 결국 이겨도 온통 상처에 피투성이가 된다.
괴담이 특정 세력의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되면 그 파괴력은 더 커진다. 작금의 최순실 괴담이 딱 그 모양새다. 딱히 관련이 없어도 모든 분노와 울분과 공포를 매개 삼아 동조 세력으로 쓸어 담는다. 그들의 응집된 불만은 국가를, 정부를, 국가 지도자를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서로의 가슴을 겨냥한 보이지 않는 방아쇠다.
온 나라가 들썩이지만 아직 최순실 사건은 의혹 수준이다. 지금 흐름대로라면 대통령은 단순히 최순실에게 속은 것이고, 비리의 몸통은 최순실일 가능성이 높다. 이게 진실이라면 대통령에 대한 마녀사냥을 했던 자들은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운 입 어떻게 감당할까. 결국 진실은 별거 아닌 태산명동서일필이 되지 않는다고 누가 감히 장담할 수 있을까.
[미디어펜=문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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