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孫 "내·외치 포기" 安·朴 "즉각 하야"…사실상 국정공백 야기
[미디어펜=한기호 기자]야권 대권주자들이 '최순실 국정개입 파문'을 계기로 박근혜 대통령 하야론을 주도하면서 당초 내치 포기만을 시사했던 2선 후퇴론을 외치 포기로까지 확장, 식물대통령 만들기에 주력하는 모양새다.

박 대통령을 향한 "이미 민심은 탄핵",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니다" 등 강경 발언과 '탄핵 절차에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을 공공연히 내놨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으면서, 실질적으로 '국정 마비'만을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야3당 대표가 9일 박 대통령이 전날 수용한 '국회 추천 총리' 관련 논의 거부 공식화 및 12일로 예정된 민중총궐기 집회 참여에 합의한 것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도 이같은 관점에 무게를 싣는다.

'친노 수장'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는 이날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만나 박 대통령 하야론이 확산되는데 대해 "박 대통령이 국민들의 요구를 그렇게 쉽게 받아들일 리는 만무하다"면서도 "하야시키는 것은 아주 길고 긴 어려운 투쟁이 될 것"이라며 "6월항쟁을 보더라도 전두환 대통령의 호헌조치부터 시작해 아주 길고 긴 투쟁 끝에 승리가 있었다"고 말했다.

투쟁을 지속해야한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 그는 국정 혼란과 공권력과 시위대의 충돌, 하야 이후 논란 지속 등을 예상하면서 "하야 민심을 받들면서도 그것을 정치적으로 해결할 해법을 모색하는 게 도리가 아닌가 생각해 거국중립내각을 제안했다"고 주장했다.

당에서 거국중립내각의 조건으로 내세운 '2선후퇴론'에 대해선 "내치와 외치를 구분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지금 내각 통할권이 얘기되고 있는데 내각의 권한을 넘어서는 대통령의 고유권한도 많다"면서 "국정원, 감사원, 군통수권과 계엄권, 사법부의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을 비롯한 많은 인사권"이라고 대통령의 '포기 사항'을 나열했다.

사실상 법률상 대통령직만 남기고 모든 국정을 포기하라는 것으로, 또다른 잠룡인 손학규 전 더민주 대표도 같은날 박 대통령에게 "나라를 책임지겠다는 애국심이 있다면 권한을 내려놓는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같은 주장을 내놨다.

손 전 대표는 이날 충북도청 브리핑룸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박 대통령의 전날 '여야 합의 총리를 추천해달라'는 당부에 대해 "모든 권한을 내려놓고 2선으로 물러나겠다는 의지를 밝히지 않은 점은 안타깝다"며 이같이 밝히고, "내치든 외치든 (새 총리에게) 다 넘겨야 한다"고 요구했다.

문 전 대표는 사실상 야권 1위 대선주자로 꼽히고 있는 가운데 섣불리 탄핵 여론에 몸을 싣지 않겠다는 것으로, '제3지대'로 뛰쳐나온 손 전 대표는 대권경쟁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려는 차원에서 대통령의 즉각적 궐위를 초래할 수 있는 주장을 꺼리는 것으로 보인다.

헌법 제68조 2항에 따르면 대통령이 궐위된 때 또는 대통령 당선자가 사망하거나 판결 기타의 사유로 그 자격을 상실한 때에는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출하게 돼있다. 

국회의 탄핵소추안 발의에 재적의원 과반수, 가결에 재적의원 3분의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해 171석을 점유한 야권의 탄핵소추 가능성이 불확실하다는 점도 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가결로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이 여론의 역풍을 맞은 전례도 있다.

친노계 주자인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이날 대구시청에서 "대통령이 지도력을 상실한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선 대통령 자신이 민심의 바다에 탄핵당한 상태라고 인정하고 내려놔야 한다"면서도 "대통령 하야나 사퇴, 탄핵은 국회 지도자들과 협의해야 할 사항"이라고 선을 그었다.

안 지사는 "국가지도자들이 무겁게 처신해야 하며 국정과 국민을 위기에 빠뜨리면 안 된다"고 '국정'을 강조했지만, 책임총리 업무 범위에 대해선 "대통령께서 자신의 위치와 처신을 분명히 해줘야 국회 논의가 가능하다"고 대통령의 2선 후퇴를 강조하면서 문·손 전 대표와 궤를 같이했다.

대통령 즉각 하야를 촉구하면서 온도차를 보이는 주자들도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공동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날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조찬 회동을 갖고 박 대통령의 즉각 하야를 요구하면서 이달 12일로 예정된 민중총궐기 촛불집회에 참여하겠다고 합의했다.

그동안 거론돼온 거국내각 책임총리제 자체에도 대통령 하야가 전제돼야 한다며 반대했다. 문 전 대표가 내·외치 포기 등 주장으로 우회하며 공세 수위를 조절하고 있는 점을 감안, 비교적 '체급'이 작은 이들이 선명성 경쟁을 위해 공동전선을 펼치는 모양새다.

야권 후발주자로 꼽히는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대통령 사퇴 없는 어떤 수습책도 미봉책"이라며 "탄핵과 사퇴가 유일한 출구"라는 주장을 반복, 박 대통령과 대립각 세우기에 가장 치중하는 모습이다.

이 시장은 "박 대통령의 온존을 전제한 수습책을 받아들이면 불똥이 야당에 튄다"며 "국민 뜻을 따라 탄핵절차에 착수해야 한다"면서 "공화국의 주인인 국민은 대통령의 사퇴를 원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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