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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영 (사)대한민국 순국선열유족회 자문위원·전 경희대 객원교수 |
11월 17일은 '순국선열의 날'이다. 그런데 막상 순국선열들을 기리는 우리나라의 '순국선열 묘역'이 어디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전국 곳곳에 순국선열, 애국선열, 독립유공자 묘소 등으로 산재해 있지만 국가 차원의 '순국선열 묘역'이라 하기 어렵다. 국가보훈처 자료에 따르면 국립서울현충원의 '애국지사 묘역'에 순국선열 69위, 국립대전현충원에 348위가 모셔져 있지만, 국가 최고 예우 대상인 순국선열이 '애국지사 묘역'에 얹혀있는 모양이라 의전상 적절치 않다. '순국선열'과 관련한 얘기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법에 따른 용어의 정리가 필요할 듯하다.
'순국선열(殉國先烈)'과 '애국지사(愛國志士)'
독립유공자는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로 구분된다.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제4조 1항에서 정하는 '순국선열'이란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로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위하여 일제에 항거하다가 그 반대나 항거로 인하여 순국한 자로서, 그 공로로 건국훈장·건국포장 또는 대통령 표창을 받은 자"를 지칭하며,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 유관순 열사 등이 이에 해당된다.
같은 법 제4조 2항에서 정하는 '애국지사'란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로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위하여 일제에 항거한 사실이 있는 자로서, 그 공로로 건국훈장·건국포장 또는 대통령 표창을 받은 자"를 지칭하며, 독립운동을 하였으나 천수를 다한 분들이 이에 해당된다.
그리고 '순국선열' 중 무력적 거사(擧事)를 벌인 분들을 의사(義士)라고 칭하며, 맨몸으로 항거하다 순국하거나 강력한 항의의 뜻으로 자결한 분들을 열사(烈士)라고 칭한다. 지사(志士)는 굳은 의지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몸바쳐 일한 애국인사들을 통칭한다.
'순국선열 현충사'와 '순국선열의 날'
서울 독립문 뒤편에 '서대문독립공원'이 있다. 일제 치하에서 옥고를 치르거나 순국한 선열들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이 '서대문독립공원'에 '순국선열 현충사(顯忠祠)'가 있다. 조선시대 중국사신들을 영접하는 연회장이던 '모화관(慕華館)'을 1897년에 '독립관'으로 복원하여 독립협회 사무실로 사용하다가 일제에 의해 철거된 후 1997년 다시 복원하여 현재 순국선열 위패 2,835위를 봉안하고 있는 곳이다.
복원 이후 '순국선열 현충사'는 운영예산이 없어 17년간 문을 닫고 있다가 2014년부터 '대한민국 순국선열유족회'가 사비를 털어 위탁 운영을 하면서 작년부터 국가보훈처로부터 예산 일부를 지원받고 있다. '대한민국 순국선열유족회'는 상해임시정부 당시 후손들이 모여서 만든 유서 깊은 단체로서 1981년에 사단법인으로 행정자치부에 등록되었다.
1939년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순국선열의 위훈(偉勳)을 기리고 애국심과 희생정신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날인 11월 17일을 '순국선열의 날'로 정했다. 그 후 '순국선열 현충사' 조성과 함께 정부가 1997년 5월 '역사 바로 세우기' 정책의 하나로 이 날을 법정기념일로 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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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국선열이 잠들어 있는 현충원. /사진=연합뉴스 |
'서대문형무소'의 역사
'서대문형무소'의 역사는 일제가 1908년 서대문에 건립한 '경성감옥(京城監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항일투사들이 계속 늘어나면서 '경성감옥'은 1912년 마포에 새로 지은 감옥으로 이전된 후 '서대문감옥'으로 불리다가 1923년 '서대문형무소'로 개칭되었다.
'서대문형무소'는 해방 후 '경성형무소'(1946년), '서울형무소'(1950)로 불리다가 1961년 행형법(行刑法) 개정에 따라 '서울교도소'로 칭하게 되었고, 1967년부터는 '서울구치소'로 불리다 1987년에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되었다.
1988년 서울시는 법무부로부터 '서울구치소' 자리를 매입하여 '서대문독립공원' 조성 사업에 착수하여 '서대문형무소' 시설 복원, 탑골공원의 3·1운동기념탑 이전 설치 등의 공사를 마치고 1992년 8월 15일 제47주년 광복절에 개관하였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의 모순
'서대문독립공원' 내에 위치한 옛 '서대문형무소' 자리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되어 고난을 치렀던 역사의 현장으로 그 가치와 중요성을 인정받아 사형장과 제 10·11·12옥사가 1988년 국가사적(國家史蹟)으로 지정(서대문구 도시관리공단의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홈페이지 기술 자료)"된 후 1998년에 현재의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이 개관되었고, 2007년 10월 '국가현충시설'로 지정되었다(제10-1-23호).
'서대문형무소'라 함은 1908년 '경성감옥'으로 시작하여 광복 후 1946년 '경성형무소'로 개칭되기 이전까지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항일독립운동사의 수난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라는 의의를 가지고 서대문구에서 별도로 관리·운영하고 있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은 일제 치하에서 항일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한 '순국선열'들과 '애국지사'들의 발자취를 보여주는 역사공간으로 구성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1998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개관 당시 설립 취지에 "민주의 현장으로서 대국민 교육의 장으로 만들고자…"라는 내용이 추가되고(서대문형무소 역사관 홈페이지 자료), 2010년이래 전시물들을 보완하면서 '독립유공자'도 아니고 '서대문형무소' 수감자도 아닌 사람들이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즉, 1945년 해방 이후 이곳에 투옥되었던 운동권학생, 재야인사, 노동계인사 등 독립과는 무관한 '서울구치소' 수감 인사들의 기록이 함께 전시되어 있는 것이다.
'독립의 전당' 조성 계획
이런 현실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은 작년 8월 국가보훈처가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2019년 3·1절 기념식에 맞춰 새로운 위패봉안관 준공식을 개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총리실 산하 '광복70주년 기념사업추진기획단' 주도로 이곳에 '독립의 전당'을 조성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시와 국가보훈처는 2015년 6월 2일 '공동업무협약서'를 체결하고 "서대문 독립공원 내 '독립의 전당' 건립사업과 '광화문광장 내 대형 태극기 구현' 사업"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제3조 1항).
그러나 서울시가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 등 산하 위원회들의 반대를 이유로 대형태극기 설치 계획에 대해 '설치 불가' 입장을 밝혔고, 국회가 2016년 예산에 '독립의 전당' 설계예산을 통과시켰음에도 건축부지를 제공하기로 협약한 서울시가 부지 확정을 미루고 있어 올해 예산이 집행되지 못할 위기에 처해 있다.
'독립의 전당'은 옛 '독립공원'의 재탄생이 되어야
학계에서는 순국선열의 수를 약 15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서훈자들도 3300여 명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순국선열 현충사'에 모셔진 순국선열 위패는 2835위에 불과하고 '국립현충원'에 묘지가 있는 분들도 400여명에 불과하다. 이런 현실에 대해 작년 9월 국회국정감사에서 여당 최고위원이 국가보훈처의 '순국선열 현충사' 관리 소홀을 질타한바 있다.
'독립공원'은 앞에 설명했듯이 본래 1897년 독립협회에 의해 조성된 공원이다. 독립협회는 독립협회규칙 제2조에 자주독립의 상징으로 '독립문'과 '독립공원' 건설을 목표로 명기했다. 이런 역사적 의의를 지닌 '독립공원'에 새로 건립될 '독립의 전당'은 순국선열을 추모하고 국민의 애국심을 고취하는 역사적, 상징적 공간이 되어야 한다.
또한 '서대문형무소 역사관'도 '서대문독립공원' 조성 취지에 맞게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의 애국의 발자취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공간으로 재탄생 되어야 할 것이다. 독립운동과는 무관한 '민주화운동' 인사들을 기리는 문제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과는 별개로 검토될 사안이다. /이철영 (사)대한민국 순국선열유족회 자문위원·전 경희대 객원교수
[이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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