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 몰락·소득 양극화·저성장·하향 평준화에 대한 미국민들의 반발
   
▲ 좌승희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
오늘날 전 세계의 보편적 정치경제체제의 이념적 기반은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이념의 결합된 사회민주주의다. 전후 민주주의의 자유의 이념은 약화되고 평등의 이념이 압도하면서 자유민주주의는 약화되고, 평등민주주의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제 자유보다도 경제평등이 모든 인류가 목마르게 추구하는 이상이 되었다.

2차 대전이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립 속에서 자본주의 체제는 “자본주의는 경제불평등을 초래하는 모순된 사회”라는 사회주의 진영의 공격에 대응한다고 재분배를 통해 보다 경제적으로 평등한 사회인 복지국가를 지향해 왔다. 경제학도 ‘복지경제학’이라는 새로운 분야의 개발을 통해 이에 화답하고 이를 선도하였다.

전 세계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평등하고 행복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키워왔다. 사회주의 경제평등 이념의 고향인 서구 유럽은 60-70년대 이후 자연스럽게 사회민주주의체제로 이행하였다. 또한 사회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강했던 영미권도 ‘수정자본주의’라는 이념으로 이에 동참하였다. 2차 대전 이후의 신생 독립국들도 일부 사회주의 독재라는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 ‘사회민주주의 체제’로 안착하고 있다. 

한편 자본주의의 수정을 불가피하게 했던 공산 사회주의 체제는 이제 북한을 제외하고는 모두 몰락하였지만, 이들은 아직도 사회주의 이념에서 온전하게 탈출하지 못하고 사회민주주의를 수용하고 있다. 민주주의 정치체제는 받아들이고 있지만 경제평등의 이념은 버리지 못하고 있다. 아마 예외라면 50여년의 사회민주주의에서 탈피하려 애쓰는 인도와 지난 30여년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내걸고 고도의 자본주의를 실험하고 있는 중국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절반을 지배하던 사회주의체제는 공식적으로는 몰락했지만 사회주의 경제평등 이념은 강력한 ‘경로의존성’을 과시하면서 전 세계 자본주의체제를 쓰나미처럼 덮치고 있다. 여기에 1인 1표의 민주주의 제도가 좋은 토양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인일표 민주주의의 종착역은 자유민주주의라기보다 평등민주주의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럼 이제 인류가 고대하던 정치경제적으로 보다 평등한 사회는 실현되었는가? 불행하게도 오늘날 전 세계는 거의 공통적으로 “장기 저성장과 소득의 양극화”라는 전혀 원치도 기대하지도 않았던 경제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평등을 추구한 사회가 모두 불평등의 심화에 직면하는 역설에 정치학도 경제학도 문제의 원인도 답도 못 찾고 미로 속을 헤매고 있다. 왜 이런 역설이 나타나게 되었는가?

   
▲ 도널드 트럼프의 미 대선 승리? 그 동안 기성정치의 평등이라는 진보이념에 억눌려 경제의 하향평준화속에 무너져 내리던 미국 중산층의 반격이다./사진=도널드 트럼프 공식트위터


필자가 오래 동안 지적해온 바와 같이 “경제평등을 추구하는 사회는 자본주의 시장의 경제적 차별화와 동기부여 기능을 약화시킴으로써 국민들의 경제하려는 의지를 차단하여 경제의 저성장과 하향평준화를 초래하게 된다. 경제의 하향평준화란 중산층의 몰락과 이를 통한 소득의 양극화로 나타나게 된다”.1) 오늘날의 저성장과 양극화는 이미 “평등주의 경제정책” 의 예견된 결과이다. 선진국들이 이 문제의 해결에 나서고는 있으나 “평등”이라는 도그마화 된 이념 속에 갇혀 감히 평등주의의 문제점을 거론조차 못하고 있다.

필자는 도널드 트럼프의 미 대선 승리를 그 동안 기성정치의 평등이라는 진보이념에 억눌려 경제의 하향평준화속에 무너져 내리던 미국 중산층이 드디어 폭발하여 반격에 나선 결과라고 해석한다. 1830년대 프랑스의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저서에서 프랑스와 미국의 민주주의를 비교하면서 미국인들은 자유를 원하는 데 비해 프랑스인들은 자유를 버리고 노예가 되는 한이 있어도 평등을 원한다고 하였다.

지금 왜 평등주의 진보정치의 폐해가 더 심한 유럽보다 미국에서 먼저 평등주의에 대한 반격이 시작됐는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미사여구로 포장되었지만 결국은 저성장과 불평등을 초래하는 평등주의 이념 때문에 자유를 더 이상 희생할 수 없다는 미국 중산층의 선언인 셈이다.

향후 평등지상주의 진보정치로부터의 탈출이 유럽과 일본으로 그리고 한국으로까지 확산될지 지켜볼 일이다. 평등의 미망에 사로잡힌 정치권과 지식인 사회, 그리고 대중의 각성 없이 변화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좌승희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

1) 좌승희, 『경제발전의 철학적 기초』, 서울대 출판문화원, 2012; 『경제발전의 일반이론』, Edward Elgar 근간.


(이 글은 좌승희 영남대 석좌교수가 한국제도·경제학회 2016년 추계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기조연설문 중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매일신문 [이른 아침에] 코너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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