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응 경총 전무
촛불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다행히 큰 사고 없이 집회가 이루어졌다. 여기에는 법과 질서를 잘 유지하겠다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노동단체의 집회는 그렇지 못한 측면이 많았다.  

십여년전 제네바에서 경험한 이야기다. 한국의 진보노동운동가들이 국제노동기구가 있는 제네바에 가서 시위를 벌였다. Palais de Nations  광장에서 시위를 하는데 폴리스라인이 설치되었다. 투쟁조끼를 입은 한 시위자가 화장실을 가려고 폴리스라인을 나왔을 때 경찰이 그를 불러세웠다. 폴리스라인을 벗어날 때는 투쟁조끼를 벗어두고 가라는 말이었다. 그는 순순히 그 요청에 따라 조끼를 벗고 다녀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집회·시위의 자유와 한계

정국의 뜨거운 화두가 되고 있는 백남기씨 사망사건은 1년전 민주노총 등 일부 노동계가 주도한 2015년 11월 14일의 소위 '민중총궐기대회'에서 발생했다. 소중한 생명이 사망하는 결과에 이른 것은 지극히 안타까운 일이며, 그러한 일은 절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경위와 책임 소재에 대한 논란을 떠나서, 당일의 집회와 시위가 절차상 집시법 규정을 위반한 채 진행됐고, 상호간의 폭력성이 상당히 높았으며, 인근 상가와 건물들에 미친 피해와 교통마비 등으로 집회에 참가하지 않은 일반 시민들이 겪은 불편이 매우 컸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참사가 발생하는 데에 격화된 시위 상황이 중요한 원인이 되었고 그 집회와 시위의 모습이 현재 우리 집회와 시위 문화의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깊은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집회·시위의 자유는 여론형성과 의사표현에 관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으로 민주주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미쳐왔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의 집회·시위 행태를 살펴보면 집회·시위는 집시법이 정하고 있는 내용을 무시하거나 의도적으로 위반하는 폭력적인 양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인명피해, 재산손실 등의 직접적 피해와 교통체증, 국가이미지 훼손, 경제 불안정성 증대 등의 간접적인 피해를 끼침으로서 막대한 사회적·경제적 비용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하지만 불법· 폭력 집회·시위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와 정치권의 노력은 미흡하다. 지난 19대 국회만 보아도 '허위 집회신고'를 제한하는 내용의「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개정만이 있었을 뿐, 불법·폭력 집회·시위로부터 일반 시민을 보호해 줄 실효적인 방안들은 번번이 입법단계에서 좌절되고 말았다.

   
▲ 주말마다 광화문 등 전국 곳곳에서 촛불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집회·시위의 자유는 여론형성과 의사표현에 관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으로 민주주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미쳐왔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의 집회·시위 행태를 살펴보면 집회·시위는 집시법이 정하고 있는 내용을 무시하거나 의도적으로 위반하는 폭력적인 양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사진=연합뉴스

집회·시위가 가지는 순기능은 인정하되, 불법 폭력 집회·시위로부터 집회에 참가하지 않은 일반시민의 자유권과 재산권을 보호할 수 있도록, 집회와 시위가 의도치 않게 과열되어 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망을 추가하고 기준을 제시하는 입법이 필요하다.

합법적이고 절차를 준수하는 집회·시위는 보호되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불법 행태는 하루속히 근절되어야 한다. 몇가지 사례를 보자.

지난 2016년 4월, A기업 본사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는 복면과 마스크를 착용한 100여명의 시위대가 경찰관들을 폭행해 전치 2주, 4주 상해를 입힌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폭행 가담자 15명을 특정했으나, 마스크 등으로 신원을 확인하기 어려운 탓에 3개월이 지나서야 신원이 확인된 10명에 대해서만 입건하고, 나머지 5명은 계속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현행 집시법에 복면 착용 금지 조항이 없어 초래된 문제로 향후 언제든지 유사 사례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

또한 서울의 B호텔은 노동조합의 집회·시위가 호텔정문과 불과 몇 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서 계속되어 막대한 피해를 입기도 했다. 집회 참가자들이 각종 스피커를 동원하여 음악을 틀어놓아 투숙객들의 취침 및 휴식을 어렵게 했고, 집회 장소에서 야간에 무단 취식행위를 하여 악취와 소음을 발생시켰지만 호텔 측에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즉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은 없었다.

집시법 제10조 중 야간옥외집회 금지 부분은 지난 2009년 9월 헌법재판소로부터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았다.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르면 집시법은 2010년 6월까지 개정됐어야 하지만, 국회가 법을 개정하지 못해 유예기간이 이미 지나버렸다. 개정시한 경과로 야간집회가 전면적으로 허용된 이후 야간집회의 불법·폭력성 문제, 심야의 집회소음으로 인한 국민의 휴식권·수면권·영업권 침해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민생 치안현장에 투입되어야 할 경찰력이 야간집회 관리에 동원됨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치안현장 인력 부족 현상도 우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집회·시위 과정에서 발생하는 과도한 소음도 문제다. 집시법 시행령은 소음 한도를 ① 주거지역, 학교, 종합병원, 공공도서관 : 주간 65dB/야간 60dB, ② 그 밖의 지역 : 주간 75dB/야간 65dB (2014년 이전 80dB/야간 70dB)로 규정하고 있다. 75dB 정도의 소음도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건강의 위협을 초래할 수 있는 과도한 소음이라고 평가된다. 집회·시위 현장에는 예외 없이 고성능 확성기가 등장한다. 과도한 소음으로 인근 주민의 정상적인 생활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주변 학원과 기업의 업무 수행을 방해하기도 한다.

경찰은 소음관리팀을 구성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시민들의 피해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집회·시위 규모가 작아 확성기 사용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도 확성기, 징, 꽹과리 등을 사용해 과도한 소음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 지역만 보더라도 집회·시위로 인한 소음이 기준치를 초과한 경우가 2015년 479건을 기록해 작년 한 해 동안 하루 최소 1건 이상의 소음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된다.

1인 시위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집시법 제2조 제1호는 ‘시위’를 여러 사람이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도로, 광장, 공원 등 일반인이 자유로이 통행할 수 있는 장소를 행진하거나 위력 또는 기세를 보여, 불특정한 여러 사람의 의견에 영향을 주거나 제압을 가하는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현행법상 1인 시위는 집회나 시위의 개념에 해당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허점을 이용해 1인 시위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다. 민주노총의 유성기업 자살 근로자 추모 1인 시위, 전교조의 누리예산 관련 청와대 앞 1인 시위, 임팔라 국내생산 관철을 위한 한국 GM 노동조합의 1인 시위 등이 대표적이다.

전형적인 방식의 1인 시위 외에 릴레이시위나 인간 띠잇기식 1인 시위 등 변형된 방식의 1인 시위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서로 다른 내용의 주장을 펼치는 각각의 1인 시위자들이 동일한 장소에 모여 있거나 동일한 주장을 담은 표현물을 내건 여러 명의 시위자들이 각각 서로 다른 장소에서 1인 시위를 행하는 방식도 있다. 이와 같은 변형된 1인 시위는 1인 시위의 범주를 넘어선 것으로 보아야 하고, 집시법에 따른 신고가 필요한 집회로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선진국의 경우 집회와 시위는 의사표현의 수단이자 하나의 문화양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런던, 뉴욕 등 세계 주요 도시들에서도 집회·시위가 빈번히 발생하지만, 평화적인 방식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집회·시위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요인은 합법적 집회·시위는 최대한 보장하되, 불법 집회·시위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하는 법제도 및 정부 방침, '불법·폭력 시위는 절대 용납될 수 없다'는 성숙한 시민의식에서 찾을 수 있다.

자신의 권리 보호를 위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정착되어 있기에 평화적 집회·시위가 가능하다. 언론도 불법·폭력 집회·시위에 대해서는 객관적 보도 기조를 유지하고, 법질서 확립을 위한 경찰의 대응에 대해서는 적극 지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나라도 주요 선진국의 집회·시위 관련 법규 및 사례를 참고하여 집회·시위 문화 선진화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 방안들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보아야 한다.

(1) 야간옥외집회·시위 금지 시간 명확화

헌법불합치 결정과 한정위헌 결정을 받은 현행 집시법 제10조 본문 중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를 대체할 입법이 속히 마무리되어야 한다. 야간이 언제부터 언제까지인지 시간을 집시법에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외국을 보아도 사생활의 평온, 질서 유지 등을 위해서는 야간 집회·시위에 대한 규제가 불가피하다는 인식 아래 야간 집회·시위를 직접 금지하는 국가가 다수 있다. 야간 집회·시위를 금지하지 않는 국가도 관할관청이 엄격한 조건을 부가하는 방법을 통해 사실상 야간 집회·시위를 제한하고 있다.

(2) 집시법상 시위 개념에 변형된 1인 시위 포함

선진국에서는 1인 시위가 빈번히 발생하고 별도 규제나 절차상 제한 없이 다양한 주제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분위기이지만, 대개의 경우 관할 경찰서에 자신의 1인 시위계획을 통보하는 것이 관행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내용도 특정 개인에 대한 욕설이나 인격모독이 아닌, 주로 자신의 요구사항과 이념을 표현하는 것이 보통이다.

집시법상 시위 개념에 '변형된 1인 시위'를 포함시켜 현행 집시법 제2조 제2호의 "여러 사람"의 개념 속에 "한 사람씩 순차 또는 교대로 진행 하는 경우"도 포함되도록 현행 집시법 제2조 제2호 단서를 개정할 필요가 있다.

(3) 확성기 등 소음 발생 장치 사용 제한 및 금지통고 신설

옥외 집회 및 시위 신고서에 "확성기, 북, 징, 꽹과리 등 소음 발생 장치(이하 '확성기 등'이라 한다)사용 여부"를 기재하도록 하여 옥외 집회 및 시위의 신고가 있을 때에 관할 경찰관서장이 확성기 등의 사용 여부를 미리 파악할 수 있도록 개선할 필요가 있다. 신고서를 접수 받은 관할 경찰관서장은 "확성기 등의 사용이 불필요하거나 타인에게 심각한 피해를 줄 우려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확성기 등의 사용 금지를 통고"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신설하여 과도한 소음 발생에 대한 사전 통제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미국 다수 州의 경우, 확성기 사용을 위해서는 행정당국의 허가 또는 등록이 필요한데 특히 뉴욕州에서는 행정당국의 허가 없이는 음향증폭기나 고출력 스피커의 사용을 금지한다. 영국의 경우는 확성기 사용 허가·등록에 대한 규정은 없으나, 야간 확성기 사용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또한 우리 집시법은 옥외 집회 및 시위에서 허용되는 소음의 기준을 시행령에 전부 위임하고 있으나, 상위법이 아무런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시행령에 위임하는 것은 위임입법의 한계 및 형식에 위배될 수 있다. 기준 소음 범위를 60dB이상 80dB 이내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되 가장 높은 소음을 측정하여 판단하도록 하면 소음 규제의 불명확성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된다. 일본 동경도 소음조례 시행규칙 제2조는 측정하는 음량의 수치를 소음계의 최대치로 하도록 하여 순간 최고소음을 기준으로 하고 있는데, 이 규정을 참고할 수 있겠다.

(4)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도 학습권 및 휴식권 보호 필요

현행 집시법은 「초·중등교육법」상 학교 주변지역에서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개최하려는 경우 학생의 학습권 보호를 위하여 그 거주자나 관리자가 요청하면 해당 집회 또는 시위에 대해 금지 또는 제한을 통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각급 학교 외에도 영유아들이 학습하고 생활하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도 학습권 및 휴식권 보호가 필요하다. 이들 시설 주변에서도 집회 또는 시위의 개최를 금지하거나 제한할 필요성이 있다.

(5) 학문, 예술, 관혼상제 등의 행사를 빙자한 집회에 대한 제한

일부 단체는 현행법상 옥외 집회에 관한 각종 제한규정이 적용되지 않는 관혼상제나 문화, 예술 행사를 빙자하여 사실상 집회를 여는 경우가 다수 있으며, 이러한 집회에 대한 통제가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학문, 예술, 체육, 종교, 의식, 친목, 오락, 관혼상제(冠婚喪祭) 및 국경행사(國慶行事)에 관한 집회를 표방하는 경우에도 주된 목적이 그와 다른 경우에는 집회와 시위에 대한 일반적 제한규정을 모두 적용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6)복면 착용 금지

복면 착용은 폭력시위 참가자에 대한 카메라 촬영 등 증거 수집을 곤란하게 함으로써 폭력시위에 대한 처벌, 나아가서는 폭력시위의 근절을 어렵게 만든다. 의도적으로 가면, 마스크 등 복면도구를 착용하는 행위를 금지하여, 익명성에 기대어 각종 위법행위를 자행하는 행위를 방지할 필요가 있다.

복면 착용을 금지하는 입법례는 쉽게 확인할 수 있다. ① 독일 집회법은 복면을 착용하고 집회에 참가하거나 집회 장소로 향하는 경우 형사처벌하고, 신원 확인을 저해하는 물품을 소지하는 경우 질서 위반으로 과태료를 부과한다. ② 오스트리아 집회법은 복면을 하고 집회·시위에 참석하는 자에 대해 행정청이 구금이나 금전적 제재 처분을 부과하고, 그 참석자가 무장을 한 경우에는 형사 처벌한다. ③ 스위스에서는 수도가 속해 있는 베른을 포함한 6개의 칸톤에서 복면 집회·시위에 대하여 벌금형을 부과하고 있다.

19대 국회에서 집시법이 일부 개정되었으나, 불법·폭력 집회·시위로부터 일반 시민의 주거의 평온, 영업권, 재산권 등을 보호할 실효적인 개정안은 여야 간의 입장 차이로 인해 통과되지 못했다. 20대 국회에서는 현재까지 네 건의 개정안이 발의되어 계류 중이다.

제도가 문화를 선도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하지만 제도 미비로 인해 상황이 악화되고 피해가 줄지 않고 있다면 법제도를 정비하여 비정상적인 상황을 바로잡아야 한다. 이는 입법부와 정책당국의 의무이다. 20대 국회에서는 집시법 개정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어 여러 해 동안 주장에만 그쳐온 집시법 보완과 집회시위 문화 개선 논의가 결실을 맺기를 기대한다. 촛불집회와 같은 평화적 집회시위가 이루어지도록 법적인 장치를 보강해야 한다. /이동응 경총 전무
[이동응]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