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사 드물고 교섭단체 구성 불투명…이념·지역·유력자 차별성도 부족
[미디어펜=한기호 기자]새누리당 비박계 비상시국위원회 일원이었던 김용태 의원과 남경필 경기지사가 22일 탈당을 선언하면서 비박계의 '줄탈당' 현실화 여부가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좌장격인 김무성 전 대표최고위원을 비롯한 상당수 비박 인사들은 탈당에 유보적이거나 부정적 입장을 나타내고 있어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는 관측이다. 친박계가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이라는 정치적 치명타를 입었는데도 섣불리 행동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에 관심이 쏠린다.

총선 등을 앞둔 선거공학적인 이합집산 사례를 제외하고도 분당과 합당을 자주 겪었던 야권에 비하면 여권의 경험은 '초라한' 편이다. 현재 더불어민주당만 해도 올해 초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안철수 의원을 비롯한 20여명의 의원이 이탈해 국민의당을 창당한 뒤 남은 의원들이 재창당한 사례다.

새정치민주연합부터도 과거 열린우리당 탈당파와 중도통합민주당이 창당한 대통합민주신당-통합민주당(민주당으로 개정)을 전신으로 한 민주통합당과, 안 의원이 창당했던 새정치연합(창당준비위)이 2014년 합당해 탄생한 정당이었다.

하지만 여권의 경우 자유선진당이나 친박연대처럼 18대 총선에서 10석 이상씩 확보하는 '선거 돌풍'을 일으킨 뒤 새누리당과 합당한 사례 등을 제외하면, 1997년 당시 이인제 의원이 이회창 후보에게 신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패한 뒤 국민신당을 만들어 나갈 때 8명이 탈당한 게 전부다.

여당에게 분당이나 탈당 DNA가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금의 새누리당 비박계가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 이정현 대표에게 전면 반기를 들면서도 당내 투쟁에 그치고 있는 것도 그에 대한 방증이다.

   
▲ 김용태 의원과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22일 오전 국회에서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새누리당 탈당을 선언했다./사진=미디어펜


22일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김용태 의원이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탈당을 선언했지만 비박계의 후속 탈당 소식은 한동안 들려오지 않을 전망이다. 두 사람 모두 친박 지도부 불신임 투쟁을 전개해온 비박 주도 비상시국위원회의 일원이었다.

그러나 회의체의 좌장격인 김무성 전 대표는 이날 연쇄 탈당 가능성에 대해 "그건 지금 얘기하지 않겠다"고 말을 아꼈다. 정치권 일각에선 김 전 대표 측근으로 분류되는 일부 중진이 남 지사와 김 의원의 탈당을 부추겨놓고 정작 합류하지 않았다는 설도 돌고 있다.

비상시국위 대변인 격인 황영철 의원은 전날(2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당을 우리가 지켜내기 위해 더 힘들고 고단하고 긴 싸움이 남아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당내 투쟁에 무게를 싣고 있음을 시사했다.

실제로 탈당에 동참하는 의원은 많지 않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금까지 명확하게 탈당 의사를 밝히거나 여지를 남긴 의원들을 다 합쳐도 10명도 채 되지 않는다.  원내교섭단체 구성요건이 의원 20명인 점을 감안하면 소수의 비박계가 탈당하면 국회 내 활동 폭에 제한이 생길 수밖에 없다.

실제 2007년 2월 김한길 전 의원은 22명과 함께 열린우리당을 집단 탈당하고 중도개혁통합신당을 창당, 원내교섭단체로서 영향력을 지니면서 민주당과 합당해 의석을 34석으로 늘리는 등 보폭을 넓힐 수 있었다. 뚜렷한 구심점이나 단체행동력이 없다는 평가가 나오는 비박계와는 상황이 다른 셈이다.

지역기반 차별화의 가능성이 낮다는 점도 한몫 한다. 더민주로부터 분화한 국민의당은 분당 초기 원내교섭단체 구성 가능성을 놓고 애를 태우기도 했으나, 지난 4·13 총선에서 더민주와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호남 민심이반에 힘입어 호남 28개 지역구 중 23석을 휩쓸었고, 정당지지율 2위를 달려 10석을 넘는 비례대표를 확보하는 등 제3당 자리매김에 성공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경우 텃밭이 친박이 강세인 영남 지역이다. 비박계가 이 지역을 등질 경우 추후 재선 가능성과 정치생명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같은 비상시국위 내 강경파로 꼽혔지만 김용태 의원(3선·서울 양천을)은 탈당하고, 하태경(재선·부산 해운대갑) 의원은 탈당 대신 박 대통령 즉각 탄핵과 조기 대선을 주장하는 등 당내 움직임에 주력하는 것도 그 이유 아니냐는 평이 나왔다.

비박계 내 유력한 대권주자가 없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거론된다. 국민의당의 경우 안철수 의원이라는 유력자가 뚜렷한 구심점으로 작용했지만 비박계엔 그런 주자가 마땅치 않다.

오히려 김무성·유승민·오세훈·남경필·원희룡·김문수 등 잠룡으로 분류되는 인사가 너무 많아 집권을 도모하긴 커녕 궁극적으로 결집조차 어렵다는 평이 나온다.

더 이상 박 대통령과 친박계와 각을 세우는 것만으로 '어필'하기도 어려워진 가운데, 뚜렷하고 차별화된 정치이념이나 정책 비전을 표방한 인사가 없어 매력도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사실상 여권 유일의 유력 대선주자로 꼽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같은 인사가 합류한다면 비박계가 분당 이후 주도권을 가져갈 수 있겠으나, 같은 충청출신으로서 반 사무총장과 가까운 정진석 원내대표는 탈당 의사는 커녕 '보수 결사'를 외치며 당내 갈등 중재에 부심하는 중으로 실현 가능성은 낮다.

한 여권 관계자는 "분당을 하고 또 다른 당으로서 성공하려면 이념적 결속이 되거나, 아니면 유력 대선주자라도 있어야 하는데 비박계는 아무것도 없지 않느냐"며 "게다가 텃밭도 애매한 상황이고, 이런 상황에서 집단 탈당은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 탈당한 남 지사와 달리, 현역 의원들은 추후 복당 혹은 공천 문제 등을 겪을 가능성 때문에 탈당·분당 결단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에 따라 비박계는 당분간 이 대표 사퇴 압박과 박 대통령 자진 탈당요구 등으로 친박계 영향력 상실을 유도하는 당내 투쟁을 지속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미디어펜=한기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