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23일 연평도에서 포탄 소리가 들렸다. 북한이 선전포고 없이 연평도 민간 거주 구역에 170여 발의 포탄을 퍼부은 것이다. 장병 2명이 전사하고 16명이 부상을 당했다. 민간인 피해도 있었다. 2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당했다. 북한은 국군과 주한미군의 육·해·공군 연합 호국 훈련을 빌미로 삼았다. 포격 위협은 계속되었다. 500여 명이 피난을 가고 마을은 폐허가 되었다.
혼란 속에서 활약한 용사들이 있다. 정연하 일병은 포격으로 우왕좌왕 하는 신병 10여 명을 인근 교통호로 대피시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병교육대에 포탄이 떨어졌다. 침착한 대처로 대규모 인명 피해를 막은 것이다. 배병규 중사는 무차별 포격을 뚫고 부상당한 해병을 구출해냈다. 부상병은 중상을 입었으나 배 중사가 그를 의무대로 신속하게 후송한 결과 살아날 수 있었다. 남정일 소령과 정찬호 상사는 대피하지 못하고 유치원에 남아있던 20여 명의 어린이와 교사를 방공호로 대피시킴으로써 민간인 피해를 줄였다. 이들의 신속한 대처가 없었다면 정말로 전쟁이 발발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정체절명의 순간에 장병들은 가족, 동료, 친구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포격 속으로 뛰어들어 부상병을 구하고 민간인을 대피시켰다. 연평도를 지키는 것이 나, 가족, 나아가 국가 공동체를 수호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공화정신이 내재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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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연평도 포격 사건이 6주기를 맞이했다. 동료들과 민간인, 나아가 나를 지키고 가족과 국가를 보호하기 위해 포격 속을 달렸던 용사들의 공화정신을 기억한다./사진=연합뉴스 |
모두가 화합하는 길, 공화(共和)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공화국이다. 이는 헌법이 규정한 사실이다. 헌법 전문에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고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라는 구절이 있다. 헌법 제 1장 제 1조에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이 명시되어있다.
공화국은 공화정을 도입한 국가를 의미한다. 공화국은 다수의 주권자가 국가를 통치하는 정치 체제다. 주권을 가진 국민이 국가 지도자를 선출하고, 그 지도자가 국민의 대표로서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다. 이는 국민이 스스로를 다스리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은 주권 행사에 따른 책임을 진다.
대다수가 공화(共和)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혼란을 겪는다. 공화는 두 사람 이상이 공동으로 화합하여 정무를 시행하는 일을 뜻한다. 여기에는 공동의 평화, 즉 국가 전체의 평화를 도모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공화국 앞에 어떤 수식어가 붙느냐에 따라 국가의 성격은 달라진다.
대한민국은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한 민주정을 도입한 자유민주주의공화국이다. 반면, 북한은 조선의 전근대적 세습 통치제도를 유지하는 동시에 사회민주주의를 도입한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다. 실상은 김 씨 가문의 세습 독재만이 남아있는 헬(hell)이지만 말이다. 이처럼 공화정은 자유민주주의와 결합했을 때만 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공화정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덕목이 ‘공화정신’이다. 공화정신은 개인을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취급하는 사회주의와 다르다. 공화정신은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한다. 공동체가 잘 살기 위해 개인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자발적으로 사회 구성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권리를 누리는 것이다.
피부는 있지만 뼈와 살이 없는 나라
피부는 살을 보호하고, 살은 뼈를 보호한다. 피부 없는 살이 감염에 취약하듯 살과 뼈가 없는 피부는 허물에 불과하다. 허물은 적은 충격에도 쉽게 훼손된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그러하다. 뼈와 살은 소멸하고 민주(民主)의 허물만이 남아있다.
애초에 이 땅에 공화가 실현된 적이 있는지가 의심된다. 공화정의 시작은 자유주의다. 서구 유럽에서 자유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사람들은 군주의 착취에서 벗어나 사유재산권을 보장받고자 했다. 이는 계급사회 해체로 이어져 세습 군주제를 타파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영국의 권리장전, 프랑스 혁명이 대표적이다. 나아가 미국은 건국과 동시에 자유민주주의공화국임을 선포했다. 오랜 시간 자유를 위해 투쟁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를 재정립한 결과, 서구 선진국 시민의 인식 속에는 공화가치가 내재되어 있다.
이 땅에서 공화주의가 자리 잡을 기회는 없었다. 일제의 식민 통치로 세습 군주제는 폐지되었으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할 여력이 되지 않았다. 해방 후에는 사회주의 세력이 득세했다. 1947년 7월에 실시된 미군정청 여론조사에 의하면 8,453명의 한국인 중 6,611(77%)명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지향했다. 개인과 사익 대신 공동체와 공익만을 배우며 자라왔기 때문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이 땅에 자유와 공화, 민주를 심어놓았으나 그것이 국민 정서에 녹아드는 과정이 평탄할 리 없었다. 대한민국은 적화위협에 시달렸고 국민정서도 불안정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국민들의 공화의식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경제발전에 성공했으나 그 다음이 문제였다. 경제 발전의 다음 단계는 자유화다. 이 과정에서 공화의식이 함양된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민주화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자유와 공화 없는 민주는 민중민주주의와 떼법으로 변질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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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에서 포탄 소리가 들렸다. 북한이 선전포고 없이 연평도 민간 거주 구역에 170여 발의 포탄을 퍼부은 것이다. 장병 2명이 전사하고 16명이 부상을 당했다. 민간인 피해도 있었다. 2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당했다./사진=연합뉴스 |
책임지는 사회를 기대하며
공화정신은 나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시작된다. 내가 잘 살기 위해서는 가족이 잘 살아야 하고, 가족이 잘 살기 위해서는 나라가 잘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각종 사회 문제로 고질병을 앓고 있다. 강성 노조의 만성적 파업, 정치인들의 포퓰리즘 정책, 전문 시위꾼들의 선전선동은 국가 발전을 저해한다. 시민의식과 공화정신이 부족한 탓이다. 시민사회에 대한 개인의 책임의식 없이 공화주의는 실현될 수 없다. 개인은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나와 국가 공동체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올해 연평도 포격 사건이 6주기를 맞이했다. 동료들과 민간인, 나아가 나를 지키고 가족과 국가를 보호하기 위해 포격 속을 달렸던 용사들의 공화정신을 기억하며 토론문을 마친다. /황단비 경제진화연구회 운영위원
(이 글은 21일 자유경제원이 마포 리버티홀에서 개최한 ‘연평도 용사의 전우애로부터 배우다: 대한민국 누가 지켰나…개인의 숭고함을 찾아서’ 토론회에서 황단비 경제진화연구회 운영위원이 발표한 토론문 전문입니다.)
[황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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