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개혁은 박대통령 호통만으론 한계, 행정개혁, 의원발의 제한 등 동시다발로 진행돼야
|
|
|
▲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실장 |
언제나 정권초기엔 개혁의 진동이 오래 갈 듯 보인다. 그러나 어떤 개혁도 의지와 동력이 떨어지면 잔잔한 강물에 ‘작은 돌 하나 던진 격’ 밖에 안 된다. 한국경제의 퇴보를 우려하던 시기부터 경제살리기의 현장과제는 ‘규제개혁’이었다. 하지만 규제개혁도 처음에만 요란했지 길게 가질 못했다. 경제대통령 슬로건을 내걸고 당선된 이명박 정부조차 전봇대 발언만 기억에 남을 뿐이다.
박근혜 정부의 규제개혁은 다행히 장기전을 준비하는 듯하다. 당선인 시절의 ‘손톱 밑 가시’ 발언이 취임 1주년엔 구체적인 실천로드맵으로까지 발전했다. 규제비용효과 분석이나 규제총량제 법제화 움직임은 적어도 ‘규제의 질주’를 멈칫거리게는 할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발언이나 몇 가지 제도만으로 결코 성과를 장담하기 힘들다. 노무현 정부도 부처별 규제 총량을 정해, 규제를 늘리면 다른 규제를 줄이는 방식을 도입했으나 용두사미로 끝났다. 정작 나서야할 부처들은 협조하지 않고 또 규제량의 측정기준을 마련하는데서부터 헤맸다.
사실 관료조직에서 스스로 규제를 내려놓는 행위는 거의 ‘자폭’ ‘자멸’이나 마찬가지다. 이익창출이 목적이 아닌 조직에선 티 안나는 밋밋한 존재보다 칼자루를 휘두르는 자가 장수한다. 힘센 부처의 사무관 한 사람만 바뀌어도 공공기관장은 업무보고로 포장된 ‘권한 길들이기’를 당해야 한다. ‘권한’을 부풀려주는 것이 ‘규제’이니 어느 누가 규제를 스스로 접으려 하겠는가. 더군다나 막강한 권한을 가진 조직일수록 산하기관에서는 그 퇴임자들을 서로 모셔가려 하니, 조직 차원에서도 규제권한의 끈을 놓기 힘들다.
그런 규제들이 산하기관으로, 또 산하기관의 산하기관으로 줄줄이 여파를 미친다. 중앙부처가 규제 하나만 만들어도 지자체 아래 층층이 ‘규제 도미노’ ‘규제 피라미드’를 낳는다. 그러니 행정시스템이 변하지 않고서 규제철폐를 외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정권마다 규제개혁이 화두였음에도 연도별 등록된 규제건수가 2007년 5000여 건에서 현재 3배나 늘어난 것만 봐도 이를 증명한다.
드러난 규제만 있는 것도 아니다. 법이나 행정규제엔 없지만 ‘알아서들 움직이라’는 경고가 때론 더 무섭다. 동반성장위원회의 대형 프랜차이즈 진입 규제,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은 민간합의라는 모양새를 띠고 있다. 겉으론 타이르는 정도의 ‘권고’로 보이나, 실상은 경제민주화 법안만큼이나 무서운 칼날을 기업에 들이대는 것이다.
또한 대통령의 규제개혁 의지를 ‘따르는 척’하면서 부처가 규제를 끼워넣어 통과시키려는 경우도 있다. 연초 규제일몰제 방안이 발표되자 미래창조과학부는 휴대폰 단말기 유통법에 3년 한시운용 조항을 둬 ‘착한규제’인양 옷을 입혔다.
|
|
|
▲ 박근혜대통령이 취임1주년을 맞아 규제개혁에 역점을 두고 있다. 경제민주화와 규제혁파는 같이 갈 수 없다는 점에서 박대통령이 정책스탠스를 잘 잡았다고 볼 수 있다. 규제개혁은 박대통령의 호통이나 의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관료와 정치권의 특권내려놓기와 행정시스템의 개혁, 의원발의법안의 규제영향 심사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박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진돗개처럼 끈질긴 자세를 갖고 규제개혁에 나설 것을 강조하고 있다. |
여기에 국회의원들의 규제 남발이 가세하고 있다. 입법포퓰리즘이 만연하고, 법률안의 질보다 ‘양’을 업적으로 내세우는 풍조에다가 국회가 각종 이익집단의 청탁에 휘둘리고 있다. 특히 의원발의는 까다로운 규제심사를 거치지 않아 국회가 정부의 ‘대리규제자’로 나서는 상황이다. 정부의 규제 속성에 국회마저 규제포퓰리즘으로 맞장구치니 그야말로 초록이 한통속이다.
그렇다면 규제의 산실, 국회는 ‘규제의 칼’을 제대로 쓰고 있을지 의문이다. 얼마전 통과된 선행교육금지법이나 논의 중인 단말기 유통법, 대형마트 영업규제법만 봐도 국회가 규제의 단맛에 흠뻑 젖어있음이 쉽게 드러난다. 이뿐 아니라 19대 국회가 발의한 규제입법 중에는, 헛웃음을 자아낼 엉뚱황당한 규제부터 소비자의 선택권을 가로막는 법안, 시장경제의 근본을 흔드는 규제, 기업의 경영인사권을 침해하는 법안 등 불량-저질 규제들이 넘쳐난다.
정치권은 황당한 법안들이 어차피 거름망을 통과하진 못할 거라며 대수롭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정치권-정부가 국민과 기업의 방향을 정해주려는 시도야말로 ‘보호-염려’의 탈을 쓴 ‘지배’다. 시장경제와 사회를 지배하려는 의도는 바로 규제에서 출발한다. 법률안이 발의되는 순간부터 규제대상자의 의사결정과 행동은 위축되기 마련이다.
국회에 저급하고 불량한 법률안이 무수히 쏟아지는데엔, 실적주의 평가도 한 몫 한다. 시민단체들이 법률발의 건수를 잣대로 국회의원에게 ‘의정활동 우수의원’ 감투를 씌워줬다. 이제는 규제를 걷어내고 줄이는 의원을 칭찬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시민단체가 규제 확대-감소 법안 모니터링을 해서 규제의 칼을 함부로 휘두르지 못하게끔 국회를 긴장시켜야 한다.
규제법안은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고공행진 했다. 19대 국회 발의 법안의 15%가 경제민주화와 연계됐다고 한다. 그러니 박근혜 정부의 두 축인 ‘규제개혁’과 ‘경제민주화’는 도저히 함께 갈 수 없는 사이다. 대통령의 취임1주년 연설을 보니 규제개혁에 보다 힘을 싣는 듯하다. 기업을 옥죄는 ‘경제민주화’에서 경제를 살리는 ‘규제개혁’으로 물꼬의 방향을 튼 것이다.
규제개혁은 대통령의 의지와 호통만으로 성공할 수 없다. 규제 걷어내기를 위한 행정시스템 개혁과 의원발의법안의 규제영향심사제 도입, 이익단체의 청부입법 단절, 정치권의 규제특권 내려놓기가 동시다발로 이뤄져야 한다. 한 부분이라도 손을 놓으면 규제개혁의 성과는 희미해질 것이다.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