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마다 제각각 현대사…종합적 분석 없고 역사인식 빈곤 야기
지난 11월 17일 한국사가 사회탐구 필수과목으로 지정된 수능시험이 처음 진행되었다. 국정교과서 논쟁이 벌어지면서 많은 이들이 수능 현대사 문제가 어떻게 나올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였다. 

국정교과서의 가장 큰 이슈가 되는 부분이 현대사의 사건들을 어떻게 기술할지, 그리고 이러한 사건이 있던 시기의 정권에 대한 분석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면서 한국사 국정화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던 터라 수능 현대사 문제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온 한국사 수학능력 시험의 문제 중 하나를 살펴보도록 하자. 

Q. 밑줄 친 ‘이 성명’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남북 적십자 회담을 계기로 남북한은 1972년에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남북 공동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 성명은 분단 이후 남북한이 최초로 통일과 관련된 사항을 합의하여 발표한 것이다. 

① 실력 양성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② 좌우 합작 운동의 계기가 되었다.
③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채택되었다.
④ 미·소 공동 위원회의 개최가 결정되었다. 
⑤ 자주, 평화, 민족적 대단결의 통일 3대 원칙이 제시되었다. 

다음문제를 보면서 독자들은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답은 무엇일까? 그렇다. 답은 ‘⑤ 자주, 평화, 민족적 대단결의 통일 3대 원칙이 제시되었다’이다. 조금이라도 역사적 지식이 있다면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많은 전문가들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이런 문제를 내려고 3주 동안 출제를 했단 말인가?” “도대체 이 문제가 왜 3점이며, 선택지를 이렇게 제시하는 게 과연 좋은 문제인가?” 

   
▲ 올해 수능 한국사 20번 문제가 실망스러운 이유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의도적 배제, 7·4 남북공동 성명에 대한 배제된 해설만이 남아버렸기 때문이다./사진=연합뉴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이 문제에 제시된 ‘이 성명’은 ‘7·4 남북공동 성명’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일성 북한 주석이 각각의 측근인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과 김영주 북한 조직지도부장을 대리인으로 삼아 서울과 평양에서 비밀, 긴급 회담을 통해 서로 통일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최초의 남북 공동 성명서다. 

그렇다면 시험문제에서는 이 성명서의 중요성, 혹은 이 성명서의 배경 또는 이 성명서가 만들어질 당시의 상황을 묻는 문제를 내는 것이 일반적인 시험 출제의 형식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번 수능에서 출제된 시험문제는 성명이 나온 시기의 상황을 묻는 것도 아니고, 성명에 대한 정확한 가치를 논하는 것도 아니다. 전문가들이나 학원가에서 보기에는 이상한 형태의 문제가 제시된 것이다. 
 
이에 대해 교육과정 평가원에서는 다음과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시중에 나와 있는 다양한 교과서의 지엽적 서술이 아닌 각 교과서의 공통된 서술을 담다 보니 문제의 내용이 평이해질 수밖에 없다.”1) 교과서마다 제각기 다른 서술을 하다 보니 학생들의 능력을 테스트하는 시험문제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다. 
   
결국, 어떤 역사적 사건에 대해 그 사건의 대상이 되는 인물에 대한 설명이 교과서마다 제각각 다르기 때문에 인물을 배제하고 역사적 사건을 현상 그 자체로만 제시하는 상황인데, 이러한 문제는 학생들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분석이나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이해수준을 파악할 수가 없다. 제시된 문제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선택지로 주어진 내용들이 제시문과 전혀 관련이 없으며, 단순한 암기를 강요하는 형태의 문제가 3점짜리 문제로 나와 버린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학생들이 역사를 이해하는데 별 효과가 없다. 수능에서 한국사를 필수로 만든 이유가 무엇인가? 역사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가지고 우리의 역사를 이해하자는 의도에서 시행한 것이 아닌가? 이러한 문제를 가지고 과연 바른 인식과 역사 이해가 가능할까?
  
많은 사람들이 현재 정부가 이야기하는 한국사 국정 교과서 단일화에 대해 역사를 권력자의 입맛에 맞게 바꾸는 과정이라 비판한다. 그러면서 현재의 검·인정 교과서를 통해 다양한 역사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올해 수능 문제들을 보라, 이게 다양한 시각을 가진 교과서를 가지고 만든 문제다. 과연 이러한 종합적 분석이 없는 문제를 가지고 학생들의 역사적 인식을 어떻게 신장시킬 것이며, 역사인식의 빈곤을 어떻게 극복할지 의문이다. 

   
▲ 지난 11월 17일 한국사가 사회탐구 필수과목으로 지정된 수능시험이 처음 진행되었다. 국정교과서 논쟁이 벌어지면서 많은 이들이 수능 현대사 문제가 어떻게 나올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였다./사진=연합뉴스

  
“역사는 단순히 과거에 관한 것이 아니다. 아니 과거와는 거의 상관이 없다. 사실 역사가 강력한 힘을 갖는 까닭은 우리 안에 역사가 있기 때문이고,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를 지배하기 때문이며, 그리하여 말 그대로 우리가 하는 모든 일 안에 '현존하기' 때문이다.” 라는 제임스 볼드윈의 말대로, 역사는 우리의 인식 내부에서 항상 존재해야 한다. 

한국사가 수능 필수 과목이 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자칭 진보적 언론인이라 자부하는 정운현 《진실의 길》 편집장은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평가함에 있어 선입견을 가지거나,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행위는 역사에 대한 바른 인식이 아니다.”라는 말로 역사에 대한 선입견을 배제할 것을 이야기한다. 

이번 수능 20번 문제가 실망스러운 이유는 여기에 있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의도적 배제, 그리고 7·4 남북공동 성명에 대한 배제된 해설이 남아버렸다. 우리가 역사교육에 명확한 시각과 이론을 가져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역사에 대한 정론직필(正論直筆)을 기대해 본다. /김동현 경제진화연구회 청년위원

1)김수진, <2017 수능 분석(이투스)-한국사> 2016. 11. 17 , 서울, 에듀동아 


(이 글은 자유경제원 자유북소리 '교육고발'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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