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지호 기자] 지난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을 두고 삼성그룹과 대립각을 세웠다가 돌연 삼성전자의 인적분할을 요구하고 나선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삼성전자 경영권을 노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달 29일 이사회를 열고 지주회사 전환을 포함한 지배구조 개편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달 5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삼성전자 이사회에 인적분할 등을 통한 지주회사 전환을 요구한 것을 사실상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삼성 입장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서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졌던 만큼 엘리엇의 제안은 ‘울고 싶은데 뺨 때린 격’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인적분할 과정에서 엘리엇을 비롯한 외국계 헤지펀드가 다시 감췄던 발톱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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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지난해 7월 구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반대하면서 폴 싱어 엘리엇 회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전이 치뤄진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한국팀을 응원한 사진을 공개했다. |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가 ‘삼성전자의 인적분할→자사주 의결권 부활→삼성전자 지주회사(홀딩스)와 사업회사 간 주식 스와프(교환)→삼성전자 홀딩스와 통합 삼성물산의 합병’의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금은 삼성전자 홀딩스와 삼성물산의 합병을 부인하고 있지만 결국은 합병까지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양형모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당장은 삼성전자 홀딩스가 삼성물산 아래에 위치하는 ‘옥상옥’ 구조로 어느 정도 갈 것”이라며 “이후 SK C&C 와 SK의 합병처럼 삼성전자 지주회사와 삼성물산이 합병되면서 이 부회장의 지배력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제는 삼성전자의 인적분할 과정에서 경영권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삼성 측은 삼성전자는 인적분할 후 의결권이 없는 삼성전자의 자사주(12.78%) 의결권이 되살린 뒤 지주회사와 사업회사 간 주식 교환(스와프) 등을 통해 이 부회장의 지분율을 끌어올리겠다는 복안이다. 지주회사는 자회사의 지분 20%(상장회사의 경우·비상장회사는 40%)를 보유해야 해 자사주 의결권 부활은 삼성에 큰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삼성전자 외국인 지분율이 이달 1일 기준 50.91%에 달해 자칫 이 과정에서 경영권 공격을 당할 수 있다. 일반 주주들에게는 삼성전자 지주회사보다는 삼성전자 사업회사 주식 매력이 더 크지만 경영권을 노리고 ‘알박기’식으로 지주회사 지분 교환이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외국계 헤지펀드 등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야당이 지주회사 전환 때 자사주의 사용을 금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과 공정거래법 개정안(이하 경제민주화 법안)을 발의한 상태여서 이 법안의 국회 통과 여부에 따라 삼성전자의 인적분할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삼성전자 홀딩스는 사업회사 지분 20%를 고스란히 사들여야 해 삼성 측 부담이 커진다. 이를 감수하고 이 부회장의 지분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삼성전자 인적분할을 시도한다면 외국계 헤지펀드가 경영권 공격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 구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 반대 과정에서 폴 싱어 회장이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붉은악마 티셔츠를 입고 한국팀을 응원한 사진까지 공개하는 등 국내 정세에 밝은 엘리엇 측이 경제민주화 법안 통과를 예상하고 경영권 공격을 위해 삼성전자의 인적분할을 제안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실제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인적분할시 자사주에 분할 신주를 배정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은 지난 7월이다. 엘리엇이 삼성 측에 삼성전자 인적분할 주주제안을 한 것은 3달가량 뒤인 10월 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제민주화 법안 통과 후에도 삼성전자가 위험을 감수하고 인적분할을 시도한다면 외국계 헤지펀드가 경영권을 흔들 가능성이 크다”며 “최근 외국인 매수세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코스콤에 따르면 외국인은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1일까지 삼성전자를 4일 연속 5500억원 규모를 사들였다. 지분을 꾸준히 늘려 삼성전자가 인적분할에 나설 경우 삼성 측에 맞설려는 의도라는 설명이다.
김동양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반적으로 지주회사와 사업회사의 분할비율이 2대 8정도로 홀딩스 몸집이 작기 때문에 인적분할이 이뤄진다면 삼성전자가 경영권 공격을 받을 개연성이 더욱 크다”며 “삼성 측이 경제민주화 법안 통과 이후에 자사주 활용을 포기하고 주식 교환만을 통해 이 부회장만의 지분율을 높이려고 한다면 그 효과가 적어 인적분할이나 지주회사 전환을 주저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측은 아직 결정된 게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경제민주화 법안이 통과된다면 자사주 활용이 어려워지는 만큼 인적분할을 추진하기는 어려워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지주사 전환 여부도 검토 중인 단계인데, 인적분할이나 외국계의 경영권 공격을 논하는 것은 너무 이르다”고 말했다.
[미디어펜=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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