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타결서 원내협상력 증명…당내 중용과 대야 투쟁력 보여
[미디어펜=한기호 기자]한달 전 '12월 2일 새해 예산안 통과 및 거국중립내각 구성 후에 원내대표직을 내려놓겠다'고 공약했던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전날(6일) 의원총회에서 사퇴 의사를 재차 공식화했으나 반려됐다. 사실상 재신임으로 보인다.

지난 9월24일 정세균 국회의장과 출신당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이 공조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본회의 표결 강행을 막지 못한 책임을 지고 사임하겠다고 밝힌 직후 박수로 재추인받은 이래 두 번째 사례다.

일단 오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있고, 박 대통령의 복심인 이정현 대표는 '최순실 파문' 이래 당내외 리더십을 상실한 상황이다.

또한 이 대표는 21일로 사퇴시한을 못박고 있어 뚜렷한 당 수습책도 마련하지 않은 가운데 원내사령탑과 리더십을 모두 잃을 수 있다는 우려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정 원내대표는 전날 의총에서 "당의 새로운 리더십을 세우는 데 걸림돌이 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

그러나 같은날 초선의원 46명은 정 원내대표 사퇴에 '만장일치 반대'로 뜻을 모았고 비박계 의원 40여명이 참여 중인 비상시국위원회도 "원내대표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주기 바란다"며 의총에서의 사퇴 철회 요구를 예고한 바 있어 처음부터 수용 가능성은 낮았다.

의총 직후 비상시국위 대변인 격인 황영철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대체로 정 원내대표가 사임해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9일 탄핵안 표결은 물론 비상대책위 구성 등까지 역할을 해달라는 요구가 주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전날(6일) 의원총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현 시점에서 정 원내대표 사퇴가 곤란한 이유로는 우선 당규상 정책위의장 동반 사퇴가 불가피해 원내지도부 공백을 초래한다는 점이 꼽힌다. 대야 협상은 물론 정책 및 당정 조율 기능까지 마비되면 당 자체 기능이 '초토화'될 수 있다.

그동안 야권과의 원내 협상을 돌아보면 4·13 총선 결과로 나타난 뚜렷한 수적 열세에 비하면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이번 예산안 협상에서 원내지도부는 정세균 의장의 법인세·소득세 인상안 등 예산부수법안 지정이라는 선제적 공세에 직면하고도 협상을 통해 야권의 숙원인 법인세율 인상을 저지했고 소득세는 과세표준 5억원 초과 구간을 신설, 최고세율 40%를 적용토록 해 '전면 증세'를 막아냈다.

누리과정(3~5세 무상보육) 협상의 어린이집 예산 일반회계를 편성하는 대신 중앙재정 일부를 3년 한시 특별회계에 전입시키는 타협안을 만들었다.

당 리더십의 경우 뚜렷한 친박 혹은 비박 대표자가 전면에 나설 경우 당내 만성적인 계파갈등이 격화돼 분당마저 불가피할 것이란 우려가 상존하는 가운데, '중재자 리더십'으로서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점도 거론할 수 있다.

정 원내대표는 청와대에 일방적으로 휘둘리지 않는 행보와 함께 여전히 친박과 비박 사이에 '낀박'으로 분류될 만큼 중용을 유지해왔다.  야권과 정세균 의장의 일부 편파적 의사진행이나 공식 발언에 대해 '할말 하는 모습'과 함께 투쟁력도 꾸준히 보여왔다.

전날 박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내년 4월 사퇴-6월 조기 대선' 당론을 받아들이려 했다는 박 대통령의 의사 타진에도 '당의 9일 탄핵안 표결 참여가 불가피하다'는 간언을 통해 위헌적인 조기 하야가 기정사실화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7일 한 새누리당 관계자는 현재 당내 상황을 "비상상황"이라고 표현하며, 정 원내대표의 사실상 재신임 사유에 대해 "대안이 없지 않느냐"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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