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박종운 시민정책연구회 연구위원 |
새로운 멘토의 남 탓
청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Boys, Be ambitious)! 란 말이 있다. 이 말은 미국 매사추세츠 주립대 농대의 교수였던 윌리엄 클라크가 1876년 1년간 일본에 파견 나와서 북해도 농립학교에서 농업기술을 가르치다가 떠나가면서 정신 교육 차원에서 한 연설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이 말은 사람들에게 많은 감명을 주면서 일본 개화의 상징적인 말로 되었다.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고, 수많은 젊음들의 모토가 되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란 말도 있다. 이런 제목으로 책을 낸 김난도 교수는 청소년들에게 아픔에 좌절하지 말고, 그것이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 태어나는 과정이며, 쉽게 포기하지 말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인생시계’ 이야기는 취직 못한 대학교 졸업생의 고민이 아침 7시 12분에 해당되는 것이며, 오늘 아침 7시 12분에 무엇인가가 잘 안풀렸다고 하루가 끝났다고 생각하지는 말라는 이야기로 인기가 있다고 한다. 야망을 가져라는 말처럼 역동적인 혼을 느끼게 하지는 못하지만, 좌절할 수도 있는 젊은이에게 새로운 희망을 불러 일으킨다는 면에서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거짓 멘토의 이야기도 있다. 안철수 공동신당 추진단장에 대해 그의 지방 방문에 앞서 그를 소개한 한 기사는 이렇게 말했다. “안 후보는 대권도전에 나서기 전 KIAST와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시절 청춘콘서트로 전국을 돌며 치열한 경쟁과 취업에 좌절한 우리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는, 그리고 그들의 좌절을 이해하고 우리사회와 기성세대의 잘못이란 점을 강조하며 국민적 소통메신저로 이미 자리를 잡았다.”(이승록, “안철수가 제주도민에 전할 '진심' 메시지는?” 제주의 소리, 2012.10.31.) 그의 장황했던 말들의 핵심을 가장 잘 압축했다고 느껴진다.
청춘에 도전과 비전 제시는커녕, 부모세대에 책임전가 아부로 일관
그는 시대에 맞는 도전의 과제를 제시하고, 그것을 위해 일로 매진하자고 격려해도 모자랄 판에, 세계 최고의 교육열로 자녀들을 키우는 부모 세대에게 좌절의 잘못을 돌리고 있으니, 이보다 더 거짓된 멘토가 있을 수 없다. 돌이켜보면 그가 이야기하는 부모세대들은 그 이전의 부모세대들의 봉건적 세계관까지 극복하면서 오늘을 일궈왔는데, 현재의 세대들은 시장에서 소비자들에 대한 충성봉사 경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대로(!) 생각하는 부모세대들의 생각에 따라 그저 ‘충성봉사’ 준비만 하면 되는 좋은 환경에 처해있다. 그런데도 부모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하다니, 청년들에 대한 아부와 왜곡치고는 정말 대단하다.
그래서 ‘안철수 현상’에 대해서 언론인인 정규재 논설위원은 일찍이 이렇게 반박했다. “대부분 거짓말이다. ‘우리가 대학 졸업할 땐 일자리가 널렸었다’는 말부터가 지어낸 말이다. 당연하지만 주로 명문대를 졸업한 정치인이나 의사나 교수 출신이라는 멘토들이 이런 거짓말을 한다. 어느 때고 명문대 졸업자에게 일자리가 없어본 적이 없고, 대부분 청춘들에게는 일자리가 충분히 있어본 적이 없다.
정규재, 안철수의 멘토는 청춘에 마약주는 거짓말
20,30년 전에는 일자리가 더 적었다. 아니 일자리 자체가 없었다. 독일 파견 광부나 간호사 모집에는 대졸자들이 몰렸다. (물론 비명문대다) 이들은 남의 나라 지하 2000m 막장에서 땀을 흘렸고 간호사들은 병원에서 백인들의 사체를 씻었다. 70년대 초에는 월남에 나가 피 값으로 돈을 벌었고 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에는 20만 명 이상의 청춘들이 숨 막히는 중동의 공사장에서 일했다. 그게 삶의 진면목이다. 사법시험에 합격하거나 의사가 되어 잘나갔던 인간들이 지금 멘토랍시고 있지도 않은 말을 허황하게 지어내면서 애들에게 설레발을 치고 있다.” ”남의 돈 가볍게 아는 이들도 청춘들에게 마약을 먹이는 자들이다. 2030 세대가 절망 끝에 결혼도 안 하고 집도 구하기 어려워졌단 말도 지어낸 말이다. 언제고 자기 집 갖고 결혼한 청춘은 없다. 반지하방에 세 들어 살아도 뜨거운 사랑으로 좋은 것이 젊음이다. 자기 집 구입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70년대 평균 30년에서 지금은 14년으로 내려왔다. 왜 새파란 청춘이 강남에 제 집을 갖고 있어야 하나. 아니 그런 세상은 있어 본 적이 없다. 그게 오히려 비정상 아닌가.“ (정규재, ”거짓말을 파는 청춘 멘토들,“ 한국경제신문, 2012.01.02)
한 사람을 영원히 속이거나 다수를 일시적으로 속일 수는 있지만, 다수를 영원히 속일 수가 없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거짓 멘토는 장기적으로는 멘토 시장에서 존립할 수 없다.
|
|
|
▲ 민주당과 통합키로 한 안철수 새정추 위원장은 청춘들에게 책임없는 거짓멘토와 아부, 거짓말로 이들의 도전과 패기를 잠재우는데 급급했다. 학창시절 전두환군사독재에 대해 분노는커녕 연애담만 나오고 있다. 그가 새정치, 상식의 정치를 내걸고 정치권에 진입했지만, 통합과 소통에 필요한 구체적인 이념이나 정책은 모호하기만 하다. 기초공천을 없애기로 하면서 민주당과 통합한 것은 양당통합의 뿌리를 흔들 것이다. 정치적 봉사를 하려는 지역정치인들의 손과 발을 묶어놓았기 때문이다. 그의 거품은 빠질 수밖에 없다. 안철수위원장이 김한길 민주당대표와 9일 국정원 특검수용을 촉구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마치고 걸어나오고 있다. |
‘새 정치’의 애매모호함
세상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데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경제생활을 통해서 소비자들에게 유용한 물적 인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시장에서의 충성 봉사는 사람들이 돈으로 하는 투표에 의해서 평가되고, 사람들의 돈 투표를 많이 받은 이는 대기업으로 성장해나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다른 하나는 정치생활을 통해서 정치소비자인 유권자들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정치가 혹은 정당은 정치적 봉사를 위해서는 국방 외교 시장 자선 등에 대한 견해와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정치소비자들은 그것을 보고 자신의 대변자를 선택한다. 세 번째는 가난하고 힘든 자들, 장애인들에게 헌신적인 봉사를 하는 복지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양대 정당은 정치 영역에서 국민의 선택 속에 형성된 것이다. 물론 이들이 과연 얼마나 국민들의 선택에 부응하여 대변자 역할을 잘 해내느냐는 사람마다 다 평가가 다를 것이다. 그리고 양대 정당의 극단적 대립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혐오하고 있다. 이로 인해 국회조차도 국회선진화법이라는 국회법 개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불만에 가득찬 광범한 무당파 층을 근거로 ‘무당파주의 정당’(?)에 대한 시도가 계속되어왔다.
안철수, 복지와 북한문제 애매모호, 갈등만 불러
현재 대한민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견해를 크게 보면, 성향적으로 집단주의 대 개인주의, 친북주의 대 북한민주화주의, 무조건적 나눠쓰기 복지주의 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집중 복지주의 등으로 나뉘어질 수 있다. 보다 이론적으로는 마르크스 내지 김일성의 독재주의 대 시장민주주의, 국가간섭주의 대 자유주의 등으로도 나뉘어질 수 있다. 이러한 성향 및 이론들이 복잡하게 얽혀져서 양대 정당의 성격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양대 정당 내에 각종 분파를 형성하기도 하였다. 이 대립이 기본적으로 쉽게 절충될 수 없는 것인데다가, 북한의 숨겨진 영향도 있어서 그 대립은 더욱 극렬했다. 따라서 보다 절충적이고 타협적인 정치에 대한 갈구가 늘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민주화 이후 의미 있는 제3정당운동이 계속해서 여러 번 시도되었다. 정주영의 정당, 문국현의 정당, 안철수의 정당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모두 단명하였다. 그것은 기성 정당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는 환호를 받다가, 새로운 정당으로서 눈 코 입 귀 손 발을 갖추어 나가자니 당원들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이론 내지 성향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마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반대와 파괴는 누구나 할 수 있으되, 건설을 하려면 기초가 확고하고 골조가 튼튼해야 하는데 그것을 제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존 정당으로부터 등을 돌릴 유권자들은 그들이 ‘새 정치’의 긍정적인 내용을 제시하지 않으면, 그들로부터도 더 빨리 등을 돌리게 된다. 게다가 양대 정당은 특히 선거 때 부동층(swing voter)의 지지를 얻기 위한 노력을 강화한다. 이처럼 내적 외적 한계 속에서 애매모호한 제3정당운동은 자리를 잡을 수 없다.
상식의 정치, 소통과 타협없는 비상식의 정치와 다를바 없어
안철수 정치의 경우 처음에는 상식의 정치를 외쳤다. 이 말은 모두에게 환영받을 만한 말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상식이 같고 구체적 문제에 대한 의견이 다를 경우에는 진지한 협의를 하지만, 이런 저런 연유로 상식이 다를 경우에는 극단적인 대립을 일으킨다. 요컨대 안철수 정치는 상식의 정치라는 구호만 있었지, 상식이 다른 경우에는 그것을 어떻게 타협의 정치로 승화시킬 것인가에 대해서는 어떠한 이해도 방법도 없었다. 따라서 자신의 ‘상식’을 국내문제에서는 나눠쓰기 복지주의, 대북 문제에서는 북한민주화주의로 요약한다고 하더라도, 그러면 무조건적 나눠쓰기 복지주의에 반대하는 이들과는 어떻게 타협을 이룰 것인가? 탈냉전과 개방 시대에 여전히 냉전의 고립된 섬이자 전체가 수용소군도로 변한 북한에 대해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게 북한민주화에 반대하는 세력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62년생이지만 학교에 일찍 들어간 탓에 대학교 80학번인 안철수 국회의원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등장 시기에 대학교를 다녔다. 그러나 내가 과문한 탓인지 비슷한 시기에 대학교를 다녔던 내 귀에 그가 군사독재에 분노했었다는 이야기가 들린 적이 없었다. 반독재 시위를 하지 않았다고 매도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민주주의가 우롱당할 때 최소한 그것에 대한 반대 의견 정도는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의 대학시절 이야기는 연애담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
80학번 대학시절 군사독재엔 침묵, 연애담만
이런 이야기를 새삼 하는 것은 그의 삶을 매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는 경제활동 면에서 컴퓨터 백신을 개발했고 성공을 거두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 못지않게 이미 충분한 사회적 기여를 했다고 본다. 그러나 그가 멘토 시장에서 ‘청춘 콘서트’로 바람을 일으킨 후에 그것을 바탕으로 정치에 진출했을 때, ‘상식의 정치’를 역설했기 때문에, 자신이 살아왔던 시대의 군사독재가 상식인지 아니면 민주화가 상식인지, 자신은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는 말을 했어야 한다.
안철수 정치는 ‘새 정치’의 내용이 모호하다는 말에 상식의 정치에서 한 발 더 나아갔다. 즉 3대 가치로 '정의로운 사회' '사회적 통합' '한반도 평화'를 내세운 것이다. 이 가치들은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표방하지 않은 정당이 있는가? 무조건 나눠쓰기 복지주의가 정의로운지 아니면 가난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전해주는 집중 복지주의가 정의로운지, 북한 동조세력이 활개치고 광화문에서 김일성만세를 부를 수 있게 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되는지 아니면 어쩔 수 없이 북한과 평화공존을 하지만 북한민주화에 이은 남북통일을 추구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되는지를 둘러싸고 논의가 정리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닌가? 대립지점을 해소할 고유의 방안은 무엇인가?
결국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에 원리적인 대답, 혹은 원리 위에서지만 타협적이고 실용적인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긍정적인 자리매김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안철수 현상에 대한 태도를 물을 때와는 달리, ‘새정치 연합’이라는 (기성정당 단계에 들어선) 당명을 가지고 새누리당 민주당 새정치연합 지지도를 물으니 지지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치시장에 기성 혹은 퇴물 정치인의 재활용 외에 새 제품을 내놓지 못하는 ‘새정치’
민주주의가 정치의 모든 모습은 아니지만, 일단 민주주의 정치 안으로 시야를 좁혀보면 민주주의 정치는 시장경제에서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그러나 시장경제에서는 소수의 지지표를 받은 기업도 틈새시장에서 존립 가능하지만, 선거제도라는 정치시장에서는 선택의 결과 당락이 분명하다. 따라서 정치시장은 시장경제에서보다 경쟁이 더 치열하다.
그래서 정치시장에서일수록 브랜드의 효과가 더욱 필요하다. 모든 유권자가 각 후보를 검증할 수는 없기 때문에 당에서 일단 거른 후보를 내놓으면 선택 시 신뢰성이 더욱 높아진다. 이때 당 공천은 신뢰성 있는 브랜드 역할을 한다. 당의 정치적 지향과 현실 정책을 ‘대충’ 내놓아도 신뢰성이 떨어지지만, 또한 그것을 실천할 사람조차 내놓지 않으면 과연 현실정치를 개혁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신뢰성은 더욱 떨어진다. 훈수정치에 그치고 말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물건을 내놓지 않는 기업과 선거에서 공천을 하지 않는 정당은 둘 다 기업도 정당도 아니다.
‘새정치연합’은 (정당이라는 법인의 헌법상 선거참여 권리를 무시하고) 정당의 기초자치단체선거 공천 폐지를 주장했다. 새누리당이 공천 폐지의 위헌성을 들어 공천제를 유지하는 경우에도, 공천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새정치연합’은 브랜드 효과를 뒷받침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치적 봉사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모일 우산으로 작용하기 힘들다. 이것은 정당 핵심이자 일선 개척자들의 존재를 무시하는 일이고, 따라서 열혈 당원이 있는 정당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선거에서 임의의 번호 추첨 속에서 번호가 엇갈려 당 공천의 브랜드 효과를 내지 못하는 정당은 결국 정당으로 존립할 수가 없다.
기초선거 공천안하기, 안철수 거품빠지기 재촉할 것
기초선거 공천 폐지를 매개로 한 ‘새정치연합’과 민주당의 통합은 얼핏 보아 당장은 시너지를 많이 낼 것으로 보인다. 광역단위 선거에서 고립된 리바이어던으로 전락해가던 민주당이 해볼만한 선거라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야당과 중간지대의 제3당 ‘새정치연합’이 후보를 내면, 새누리당에 절대 유리한 선거지형일 것이기 때문이다. ‘새정치연합’도 퇴물 정치인들의 재활용 정당일 수밖에 없는 인물난 속에서 창피를 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역시 정당의 중요성은 생활정치에 있다. 따라서 당의 근간을 이루는 부분이자 가장 다수인 기초 단위가 제일 중요하다. ‘새정치연합’과의 통합 제의는 일시적으로는 민주당의 지지도를 살려주었지만, 기초공천 폐지를 매개로 통합한 것은 결국 ‘새정치연합’+민주당의 뿌리를 뒤흔들 것이다. ‘새정치연합’+민주당이 기초 단위 선거에서 후보를 공천하지 않는다면, 결국 기초 단위 선거에서 후보로 나올 사람들은 탈당을 해야 하고, 어떤 후보든 타 당 혹은 타 후보를 위해서는 선거운동을 해줄 수 없으니 그 후보자들이 광역단위 선거 후보자를 위해서 서로 돕는 선거를 하기도 힘들 것이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의 김진표가 유시민에게 후보 자리를 양보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를 위해서 선거지원을 할 수 없었다. 타 정당 후보이기 때문이었다. 유시민 후보는 인기 여부 이전에 구조적으로 한나라당의 김문수 후보를 이길 수 없었다. 그래서 통합 선언이 있기 전에 민주당이 어쩔 수 없이 기초후보 공천을 하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들이 현실 정치를 하는 정당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시 ‘새정치연합’+민주당이 지방선거에 임박해서 공천을 하는 것으로 돌아서자니 그렇게 할 수도 없다. 그렇게 되면 통합의 전제가 깨지는 것이고, 안철수 정치의 정치적 신뢰도는 그야말로 산산조각나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종운 시민정책연구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