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과 청소년 만남 주선…손자가 되어 주고 삶의 얘기 책으로 담아내다
국민대통합위원회에서는 매년 국민통합 우수사례를 발굴·전파하기 위하여 전국 지자체와 민간단체 등에서 추진하는 국민통합 활동사례 중 우수사례를 선정하여 국민통합 활동에 대한 동기부여와 분위기 확산을 꾀하고 있다. 그 성과물로 2016년 '국민대통합위원회 우수 사례집'이 발간됐다. 사례집은 국민대통합위원회가 취재하여 이를 바탕으로 작성된 것이다. 미디어펜은 국민대통합위원회의 우수사례 원고를 매주 1회(목요일), 총 25회에 걸쳐 연재한다.[편집자 주]

[1]주민의 힘으로 만드는 복지-⑥제주 서귀포 세대 벽 허문 '동홍동 어르신 이야기'

세대를 넘어 하나가 되다

서귀포시 동홍동에는 아주 특별한 삶의 이야기가 있다. 바로 '동홍동 어르신 이야기'이다. 동홍동주민센터에서는 이 사업을 통해 지역 내 소외되어 있는 어르신과 청소년들의 지속적인 만남을 주선하여 서로의 삶을 나누는 소통과 복지를 실현해 나가고 있다. 독거 어르신들은 정을 나눌 수 있는 손주를 얻고, 청소년들은 인생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짐으로써 위화감을 넘어선 세대 통합의 멋진 장을 펼쳐 나가고 있는 것이다.

   
▲ 독거어르신 집을 찾은 청소년들이 다과를 즐기고 있다.

위화감을 넘어 윈윈 만남

서귀포시 동홍동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쪽에는 영구임대 아파트가, 다른 한쪽에는 고급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영구임대 아파트에는 독거 어르신과 중증장애인을 비롯하여 기초생활수급자 가정 등 생활이 어려운 가정 360여 세대가 모여 살고, 길 건너편에는 넓은 평수의 아파트들이 즐비해 있다. 이렇다 보니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위화감이 조성되기도 한다. 심지어 이렇게 말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저희 엄마가 건너편 영구임대 아파트 애들하고는 놀지 말래요."
"거기엔 제 친구들 있는데 가기가 좀 꺼려져요."

이러한 지역 내 위화감을 해소하기 위해 동홍동주민센터에서는 대안을 모색하게 되었다. 사업을 담당한 맞춤형복지팀 허희숙 팀장은 이렇게 말한다.

"영구임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어르신들의 외로움과 청소년들의 소외감을 어떻게 치유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동홍동 어르신 이야기 사업’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어르신들에게는 청소년들이 가족이 되어 드리고 청소년들에게는 어르신들이 멘토가 되어 주신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입니다. 소통과 만남이 있어야 진정한 복지가 이뤄질 수 있으니까요."

'동홍동 어르신 이야기 사업'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 사업의 추진을 위해 센터에서는 독거 어르신들과 청소년들의 만남의 필요성에 대해서 적극 홍보하였는데, 이에 대해 남주고등학교에서 관심을 보였다. 남주고등학교 교감은 사업 참여의 계기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동홍동주민센터가 구상하는 어르신들과 청소년들과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 생각했습니다. 특히 교육자의 입장에서 청소년들에게 좋은 인성 교육의 대안이 될 수 있겠다 싶었죠. 그래서 남주고등학교 아이들과 어르신들을 만나게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하면서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2015년 8월에 남주고등학교 학생 15명 그리고 복지위원 15명이 처음으로 남주고등학교에 모여 '동홍동 어르신 이야기 사업' 추진을 위한 자매결연 협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협약 체결 후 동홍동주민센터는 그해 8월부터 12월에 걸쳐 '손자가 되어 드리겠습니다-어르신과의 만남의 날', '어르신 이야기를 들으러 방문하겠습니다-가정방문의 날' 등의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 나갔다.

   
▲ 외로움은 훌훌 웃음꽃 활짝. 청소년들과 함께 한 동흥동 어르신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 동흥동 어르신과 청소년들의 만남의 날.

손자가 되어 드립니다!

본격적인 사업의 시작은 '손자가 되어드리겠습니다-어르신과의 만남의 날'이었다. 2015년 8월 독거 어르신 5명과 남주고등학교 학생 15명, 복지위원 15명의 첫 만남이 이뤄졌다. 이 자리에서는 '동홍동 어르신 이야기 사업' 소개, 추진 계획 발표 및 마음열기 시간이 진행되었다. 어르신들을 만나게 된 청소년들은 처음에 무척 어색해 했으나 어르신, 복지위원과 학생들이 각기 팀으로 나뉘어 대화를 하다 보니 그 어색함도 금세 가시게 되었다. 만남의 날 참여 학생은 이렇게 회상한다.

"처음에는 어색해서 말도 나오지 않았어요. 그런데 할머니, 할아버지가 저희를 친손주처럼 대해 주셔서 조금씩 대화를 나누게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집에서 하는 것처럼 편안하게 대할 수 있었어요."

한편, 동홍동주민센터에서는 총 4회에 걸쳐 '어르신과 함께하는 나들이' 체험 프로그램을 동시에 운영했다. 어르신과 학생들이 함께 '서귀포시 행복나눔의 날' 축제, 제주의 가을을 만끽하기 위한 '걸으며 놀멍 쉬멍' 상효원 나들이 등에 참여한 것이다. 나들이를 하는 동안 학생들은 어르신들의 손주가 되어 드렸다. 사업 담당자 허 팀장은 이렇게 회상한다.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계단을 올라가실 때면 학생들이 뛰어가서 업어드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죠. 처음에는 어색해 하던 아이들이 어느새 그 어색함을 깨고 어르신들에게 다가가고 있었던 것이죠. 만남을 통해 마음의 벽이 허물어졌던 셈입니다."

동홍동 독거 어르신과 청소년들의 만남은 윈윈(win win) 만남이다. 독거 어르신들에게는 따뜻한 가족의 정을 느끼게 함으로써 외로움을 달래는 시간이 되고, 조부모와 함께 사는 경우가 거의 없는 요즘 청소년들에게는 어르신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예절을 배우고 바른 인성을 기를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 동흥동 어르신 이야기 발표회-Life Story. 선녀와 나무꾼 단체사진 모습.

학생들이 만드는 '어르신 이야기(Life Story)'

"우리 어릴 때는 말이야, 가난한 사람이 많았어. 하루 세 끼를 못 먹는 날도 많았지. 가난해서 여자애들은 학교도 다니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지. 우리 집도 소를 팔아 큰 오빠만 대학에 가고 나는 초등학교밖에 가지 못했거든."

"6.25전쟁 때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이 많았어. 뿔뿔이 흩어져서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알 수 없었지. 나도 전쟁 때 오빠를 잃어버리고 다시는 만나지 못했지."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를 듣는 남주고등학교 학생들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이곤 했다. '어르신 이야기를 들으러 방문하겠습니다-가정방문의 날'의 풍경이다.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열심히 듣고 있으면 어르신들은 더욱 신이 나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곤 했다. 청소년들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르신들 삶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게 되었고, 청소년들 스스로도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으며 서로의 삶을 공유해 나간 것이다.

"팀을 짜서 매월 2회씩 어르신 댁을 방문했어요. 말벗도 되어 드리고 안마봉사도 하고 같이 대화도 나누었죠. 특히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글이나 사진으로 표현하여 어르신 이야기책을 만들었는데, 뜻밖에도 아이들의 호응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어르신들께서도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자부심도 느끼고 삶에 대한 자신감도 회복하시는 듯했고요."

이렇게 학생들이 만든 어르신 이야기를 모아 2015년 12월 말, 동홍아트홀에서 '동홍동 어르신 이야기 발표회-Life Story'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어르신들의 삶을 담아낸 학생들의 작품 21편이 발표되었고 어르신들의 삶의 발자취를 표현한 사진 및 작품 전시회가 열려 추억을 나누는 훈훈한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또한 그 작품을 모아 'Life Story' 책자를 발간했다. 사업에 참여한 한 어르신은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가족도 없이 혼자 살다 보니 외롭고 우울했는데, 아이들과 만나고 이야기를 들려주다 보니 하루하루가 즐겁고 또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을 내가 할 수 있구나 싶어서 보람도 느꼈습니다."

동홍동주민센터는 ‘동홍동 어르신 이야기 사업'을 통해 지역 내 위화감과 갈등의 요소를 해결하는 한편, 어르신과 청소년들 간 세대 통합의 멋진 장을 만들어 갈 수 있었다.
[미디어펜=편집국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