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경제단체 유지 가닥, 지속가능 의문
"상의에 기대감 더 커지고 있다" 재계 파장
[미디어펜=김세헌기자]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요 회원사의 잇단 탈퇴와 허창수 전경련 회장의 사임 선언으로 사실상 와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 허창수 전경련 회장이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시무식에 참석한 뒤 식장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손사래를 치고 있다. / 연합뉴스

허창수 회장은 지난달 28일 600여개 회원사에 발송한 서신을 통해 처음으로 공식 사과하고 임기가 끝나는 다음 달에 물러날 것임을 공식한 바 있다. 이에 전경련은 다음 달까지 쇄신안을 마련하고 후임 회장도 구하겠다는 계획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쇄신안의 경우 그동안 재계에서 유력한 안으로 거론돼 온 '미국의 헤리티지 재단' 모델이 전경련이 벤치마킹하기에 부적하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헤리티지 재단은 기부금을 바탕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우리 현실에 맞지 않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이처럼 경제단체 지위를 포기하는 쪽의 쇄신안을 추진할 것인지를 놓고 의견이 엇갈렸지만 현재로선 경제단체 성격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련은 주요 회원사들에 미국의 경제단체인 BRT를 벤치마킹 모델로 삼는 쇄신안에 대한 의견을 물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BRT는 미국 200대 대기업 최고경영자들로 구성된 협의체로 지난 1972년 세워졌다. 정부 등을 상대로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경제 단체의 성격이 짙다. 다만 기업의 목소리를 내는 데 치중할 뿐 기부나 재단 설립 등 사회협력 활동은 하지 않는다.

전경련은 회원사 뿐 아니라 국민의 눈높이까지 충족시키는 쇄신안을 찾아야 해 고민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내용적 측면을 떠나 회원사들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더 큰 난관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전경련은 두 달에 한 번씩 열리는 정기 회장단 회의를 이달 정상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참석 저조로 다시 무산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관측이다.

무엇보다 회원사들은 '정경 유착의 창구'로 지목된 전경련 회의 참석 자체에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전경련은 기업들이 공식 모임에 참석이 어려우면 개별적으로 회원사들을 접촉해서라도 의견을 수렴해 나가겠다는 방침이다.

허창수 회장의 후임자를 찾는 일도 험난해 보인다. 10대 그룹 총수들은 각종 이유를 들어 전경련 회장직을 하나같이 고사하고 있으며, 재계 '맏형'으로서 위상 저하를 감수하고 30대 그룹으로 시야를 넓히더라도 후임자 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으로 전해진다.

때문에 외부에서 명망 있는 경제 전문가나 관료 출신을 회장직에 모셔와서 전권을 주고 전경련의 쇄신 작업을 추진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전경련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 지난 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대강당에서 열린 시무식에서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신년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러한 혼란의 와중에서 재계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곳으로 전경련 대신 대한상공회의소에 주목하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전경련 해체론이 가속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지난 2일 시무식에서 "대한상의에 기대하는 바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며 "올해 기업인들이 의견을 구할 곳은 이제 대한상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것이 전경련의 역할을 대신하겠다는 뜻은 아니며, 대한상의의 역할이 달라질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지만 제계에 제법 큰 파장을 일으켰다는 반응이 나온다.

대한상의는 전국 16만 상공인을 대변하는 대한민국의 법정 경제단체로, 서울상의를 비롯한 전국 71개 지방 상공회의소를 대표하며 회원사가 14만개에 달한다.

대기업 모임인 전경련과 중소기업만을 회원으로 하는 중소기업중앙회와 달리 중소기업부터 대기업까지 아우르는 국내 최대 종합경제단체라는 인식이 강하다. 

무엇보다 재계는 두산그룹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대한상의 수장으로서 활동에 집중하고 있는 박용만 회장의 리더십에 주목하고 있다.

박용만 회장은 1990년 중반부터 강력한 구조조정과 인수합병(M&A)로 소비재 중심이던 두산그룹을 글로벌 ISB(인프라지원사업) 기업으로 변화시키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2001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2005년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통해 두산의 사업 방향을 전환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평소 박용만 회장의 적극적인 상의 활동으로 산업계는 물론 각계의 신망도 두터운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각에서는 재계를 대변할 창구로 대한상의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한편 전경련은 오는 12일 주요 그룹 총수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기 회장단회의를 예정대로 추진하는 가운데, 이 자리에서는 여러 쇄신안에 대한 의견이 오갈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의에서는 전경련이 현재와 같이 경제단체로 남느냐 싱크탱크로 전환하느냐의 두 가지 갈림길을 놓고 결론 도출을 시도할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