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들의 호통 갑질 볼썽사나워…조윤선 장관의 답변도 유감
   
▲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 객원교수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의 이른바 '블랙리스트' 관련 국회청문회에서의 조윤선 장관의 답변 모습을 떠올리면 만감이 교차한다. 우선 청문회에서 야당 국회의원들이 "밝혀라 7시간"이라고 쓴 주먹만한 뺏지를 달고 앉아서 서슬 퍼런 훈육선생이 어린 여학생에게 고함치는 듯한 꼴이 참으로 볼썽사납다.

도둑질하다 들킨 꼴로 앉아 어정쩡한 답변만 되풀이하는 조윤선 장관을 지켜보면서 안쓰러운 마음과 함께 우리나라 장관과 우리 정치판의 한심한 수준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야당의원의 무지막지한 고함에 주눅든 장관이 오랜 주저 끝에 한 답변이 "(특정 성향을 가진) 문화·예술인들의 지원을 배제하는 그런 명단은 있었던 것으로 판단이 되고 있다……문화·예술인은 물론 국민에게 심대한 고통과 실망을 야기해 깊이 사과 드린다"이었다. 참으로 무책임하고 경솔한 발언이 아닐 수 없으며, 장관이 과연 조직을 이끌어 갈 소신과 리더십이 있는지 딱하고 걱정스럽다.

답변을 회피한다고 해서 어차피 유야무야로 넘어갈 수 없는 상황임이 뻔한데, 한 나라의 장관으로서 소신을 가지고 특검이나 야당의 '블랙리스트' 관련 주장에 대해 당당하게 맞섰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우선 "국민에게 심대한 고통과 실망을 야기해 깊이 사과"한다는 말의 의미는 장관(조윤선 장관이던 그의 전임자이던)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이며 또한 국민들이 '블랙리스트' 존재 사실에 고통을 받고 실망했다는 뜻이 된다. 과연 그런가?

물론 이런 '리스트' 존재 사실에 대해 '촛불'을 들 국민도 있겠지만, 이런 '리스트'가 있다는 사실에 (전체) 국민이 심대한 고통을 받고 실망했다는 듯한 조윤선 장관의 발언은 가히 망언 수준이다. '블랙리스트' 작성 지시나 작성 작업이 어디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그런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이 불법인지 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그런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이 국익을 위한 것이었는지 국익에 반하는 것인지부터 따져봐야 할 것이다. 우선, 정부가 정책수행 과정에서 필요에 의해 작성한 특정 '리스트'를 '블랙리스트'라고 폄하하는 것부터가 적절치 않다.

   
▲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의 이른바 '블랙리스트' 관련 국회청문회에서의 조윤선 장관의 답변 모습을 떠올리면 만감이 교차한다. 서슬 퍼런 훈육선생이 어린 여학생에게 고함치는 듯한 꼴이 참으로 볼썽사납다. /사진=미디어펜

'교육'과 '문화'는 국민의 지식, 교양의 수준은 물론 국가의 이념적 정체성 확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국가 주요 정책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체제를 위협할 수 있는 제반 요소들을 파악하고 대비하는 것은 비단 문화관광체육부만이 아니라 모든 정부부처의 기본 임무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위해가 될 우려가 있는 집단을 파악하여 관리하고 이런 집단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제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나라 공직자들은 대체로 '무죄'에 대한 개념이 희박하다. 공직 유지 수준의 벌금형을 받았거나 집행유예, 선고유예 등의 판결을 받은 공직자들은 '무죄'의 선량한 국민이 아니다. 감방에 갇히지 않았거나 공직을 유지하고 있을 따름이지 '죄인'임에 틀림없다. '죄인'에게 공무수행을 허용하는 집행유예나 선고유예 등의 판결에 대한 일반 국민의 정서는 극히 부정적이다. 하물며 그런 사람들이 안하무인 큰소리치는 모습은 더욱 가관이다. 우리 국민의 눈높이로는 현 제1야당 대표나 서울시교육감도 국민들에게 그런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번 문화체육관광부 '블랙리스트' 관련 청문회에서 연약해 보이는 여성 장관을 마치 비행(非行) 청소년 다루듯 다그치는 국회의원들의 고압적인 자세는 그 자체로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 주무장관으로서 어떻게 답변했어야 마땅할까?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다. 그러므로 대한민국 공무원은 자유민주주의 가치와 민주법치사회를 지킬 의무가 있다. 이 나라 모든 공직자들은 공무를 수행하면서 어떤 내용이나 형태이던 다양한 '리스트'들을 작성하고, 보고 받고, 비교 검토하면서 정책을 수립하고 이행한다. 정부는 자유민주주의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모든 요소들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정리한 '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할 수도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거나 훼방하는 개인이나 단체에 국가예산을 지원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따라서 그런 목적의 '리스트'를 '블랙리스트'라고 폄하하는 것부터 잘못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블랙리스트'라는 표현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위와 같이 답변했다면 기세 등등한 야당의원들이 또 뭐라고 호통쳤을까? 이번 '블랙리스트' 소동은 비단 문화체육관광부에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만일 국정원이 '간첩용의자 리스트'를, 검찰이나 경찰이 '우범자 리스트'를, 국세청이 '(각종) 탈세의혹자 리스트'를 가지고 있다면 또다시 '블랙리스트' 청문회 운운할 것인가?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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