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 "이 부회장에 관한 혐의 입증 증거가 차고 넘친다"
"영장 내용을 보면 사람들이 기절할 수준"
"국가경제도 중요하지만 정의를 세우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규명을 위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구속영장 청구에 앞서 흘린 말들이다.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특검이가 합리적인 법리 공방보다 여론전에 휘둘린 것을 자인한 셈이라고 지적한다. 무죄 추정원칙과 인격권을 침해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18일 오전 이 부회장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열고 심리에 들어갔다. 이 부회장의 구속여부는 빠르면 오늘 밤 늦어도 내일 새벽으로 점쳐지고 있다.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곧바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된다.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은 이미 여러 차례 법리보다는 여론에 밀린 수사를 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샀다. 본류를 벗어나 '대기업 특검'으로 변질된 것이 아니냐는 따가운 질책도 나왔다. 특검이 무자비 하게 휘두르는 칼에 대한민국 전체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깊다.
증거가 차고 넘친다는 특검의 자신감은 되레 자신이 없음을 입증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증거가 차고 넘치는데 굳이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이자, 브랜드 가치 518억 달러로 세계 7위의 최고경영자를 구속하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피의자 구속 여부를 규정한 형사소송법 제70조(구속의 사유)에 따르면 피고인이 일정한 주거가 없을 때,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을 때,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을 때로 제한하고 있다. 최근 사법부의 흐름은 인신구속을 최소화 하는 흐름으로 가고 있다. 불구속 수사 원칙은 검찰이 자백을 얻어 내려고 무리하게 구속수사를 남발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특검은 이미 이재용 부회장 구속영장 청구에 앞서 삼성전자를 세 차례나 압수수색했다. 먼지까지 탈탈 턴 특검이 주거가 일정하고, 도주 우려가 없는 이 부회장을, 그리고 증거가 차고 넘친다면서 무엇 때문에 굳이 구속영장을 청구했냐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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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검이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는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인 불구속 수사와 무죄추정원칙을 깼다. 여론몰이와 공명심에 집착해 무리수를 둔 것이라고 밖에 해석할 수 없다. 광장에 등장한 촛불시위와 그들의 손에 들린 '재벌 개혁' 피켓에 부화뇌동한 '포퓰리즘적 수사'라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진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오후 영장 실질심사를 마친 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을 나서 서울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증거 적절성 여부와 혐의에 대한 판단은 법원의 몫이다. 그럼에도 특검이 증거가 차고 넘친다고 공공연히 흘린 것은 '엄포성'이라는 해석을 낳고 있다. 더욱이 구체적 혐의를 입증할 증거에 대해서 함구한 것은 자기모순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영장이 기각될 경우 법원에 화살을 돌리기 위한 고도의 여론전이라고 꼬집는다. 증거 자신감을 내세워 법원을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장 내용을 보면 사람들이 기절한 수준이라는 점 역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원색적인 표현도 문제지만 지나친 자신감 뒤에 오만함이 묻어 난다. 여론을 앞세워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것은 무죄추정의 원칙과 인격권에 대한 침해다. 수사권 남용을 넘어 특검 스스로 사법 정의를 무너뜨리고 있다. '법대로가 아니라 특검 마음대로'라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국가경제보다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는 이유도 궁색하기는 마찬가지다. 죄가 있는 곳에 벌이 있으면 된다. 국가경제와 정의를 내세운 것은 기획수사라는 의혹만 짙게 했다. 되짚어 보면 사회정의를 위해 이재용 부회장을 반드시 구속하겠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법리적 판단 외 특정 목적으로 특정인을 단죄하겠다는 속내를 비친 것이다. 이 역시 사법정의에 어긋난다.
특검팀은 삼성의 경영안정을 위해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박상진 대외협력담당 사장은 불구속 수사한다고 생색을 냈다. 대한민국 경제를 견인하는 오너 리스크보다는 '대어'를 낚겠다는 공명심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이 '피해자'로 본 이재용 부회장을 '뇌물 공여자'로 둔갑시킨 특검이다.
이제 법원은 특검이 무차별적으로 휘두른 칼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돌아봐야 한다. 이재용 부회장 구속영장청구 소식에 월스트리트저널은 "세계 최대 스마트폰 업체 리더가 부패 스캔들에 걸려들었다"고 전했다. CNN은 "갤럭시노트7의 굴욕적 낭패 이후 회사 이미지가 더욱 손상됐다"고 평가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삼성그룹 승계 과정에 차질이 빚어지고 한국 최대 기업의 리더십이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삼성이 오랫동안 쌓아온 브랜드 가치가 실추 위기를 맞았다. 구속되면 그룹 경영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달 14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가 주재한 '테크서밋'에 외국기업 경영자로는 유일하게 초청받았다. 삼성측은 지난해 12월 초 초청을 받고 특검팀에 요청했으나 특검팀의 답은 '출국금지'였다. 세계가 예의주시하는 트럼프의 행보에 대한민국 특검만 눈을 감았다. 기업의 민간 외교 훼방꾼 역할을 했다. 칼춤에 취한 특검의 눈에는 외교도 국익도 보이지 않는다.
특검은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인 불구속 수사와 무죄추정원칙을 깼다. 여론몰이와 공명심에 집착해 무리수를 둔 것이라고 밖에 해석할 수 없다. 광장에 등장한 촛불시위와 그들의 손에 들린 '재벌 개혁' 피켓에 부화뇌동한 '포퓰리즘적 수사'라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공을 넘겨받은 재판부가 공명정대하게 무너진 사법정의를 세워야 한다. 법원은 정치적 논리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야당의 일방적 주장이나 야당 추천 특검의 압박에 굴해서는 안 된다. 아직까지 특검이 뇌물 혐의를 입증할 결정적 증거를 확보했는지는 알려진 게 없다. 정치 과잉을 법정으로 끌어 들여선 안 된다.
또 하나. 검찰과 특검팀은 삼성의 미래전략실, 최고 경영진의 자택 등 대규모 압수수색만 세 차례 했다. 검찰·특검·청문회에 이재용 부회장은 세 차례, 주요 임원들은 17차례나 불려갔다. 가히 융단폭격이나 다름없었다. 증거가 차고 넘친다는 특검의 말대로라면 증거인멸에 대한 우려도, 도주의 우려도 없다. 검찰에서 피해자가 특검에서 뇌물 피의자로 바뀌었지만 이 부회장에게는 제대로 된 방어권 행사의 기회조차 없었다. 불구속 수사를 규정한 형사소추법 원칙을 되새겨야 한다.
또 있다. 특검이 주장하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성사라는 대가와 뇌물 공여 간의 전후관계, 대통령과 최순실씨 간의 '이익의 공유'는 특검의 주장일 뿐이다. 특검은 결정적 증거도 내놓지 못했고 검찰 수사결과와는 정반대다.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른 판단이 요구되는 이유다. 여론에 흔들리지 않는 법치주의와 진짜 정의가 무엇인지를 법원이 바로 세워야 한다.
[미디어펜=문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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