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마니타스적 인문교육과 자유교양 교육이 문명창조의 밑거름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 (3)- 빌헬름 딜타이(1833~1911)의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교육>

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편집자주]

   
▲ 박경귀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한국정책평가연구원장

그리스와 로마, 자유 평등정신을 현실정치에 첫 구현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와 로마공화정은 인류 문명의 고향과도 같다. 비록 노예제도에 기초한 한계를 갖고 있었지만, 시민의 보편적 가치인 자유와 평등의 정신을 현실 정치체계에서 최초로 실험하고 구현하려 노력했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이 동시대의 다른 나라의 사람들에 비해 이런 정신이 유달리 강했던 요인은 무엇일까? 이들의 남다른 문화적 기풍은 무엇이고,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명을 창출해 낸 원동력은 무엇일까?

빌헬름 딜타이(Wilhelm Dilthey, 1833~1911)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교육체계의 특징을 추적하여 분석해 줌으로써 그 요인들을 어느 정도 가늠하게 해준다. 딜타이는 19세기 독일의 탁월한 교육학자였다. 그는 교육과 교육제도가 민족과 함께 성장·성숙·쇠퇴한다고 믿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명을 뒷받침한 교육체계를 조명함으로써 독일 교육에 적용할 시사점을 찾고자 했다.

이 책은 딜타이가 브레슬라우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1874년 여름학기부터 1875년 겨울학기까지 강의한 ‘교육학의 역사와 체계’에 대한 강의록의 일부다. 첫 출판은 그의 사후인 1933년에 <딜타이 전집>으로 간행되었다. 이 책은 <전집> 제9권의 일부이지만 그리스와 로마의 교육체계에 대한 최초의 종합적 분석을 통해 근대교육학의 방향을 고민한 고전이다.

◇ 고대 그리스와 로마 융성의 원천은 인문주의와 전인교육

저자는 유럽문화의 원형을 이루는 문화는 헬레니즘(Hellenism)과 헤브라이즘(Hebraism)이라고 본다. 특히 교육사적으로 서양문화를 구성하는 원류로 헬레니즘 문화를 첫 번째로 꼽는다. 르네상스기의 인문주의자들이나 그 이후의 지식인들은 고대 그리스 정신을 교육적 이상으로 동경했다. 저자는 그리스 정신의 바탕에 깔린 인문주의와 자유교양 교육의 특성이 그리스 문화의 창조성과 탁월성을 만들어냈다고 본다.

서양문화의 또 다른 원류는 로마적 기풍이다. 그리스 문화는 단순하면서 심미성이 탁월했다. 반면 로마의 문화는 강건하고 실용성이 뛰어났다. 특히 이질적 문화를 쉽게 동화시키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런 특질이 정복민의 문화를 흡수하면서 대제국을 이루는 밑거름이 되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의 만개에 기여한 교육적 동인은 무엇이었을까? 그리스의 고대 교육의 핵심 개념은 ‘파이데이아(paideia)’이다. 이는 놀이(paidia)에서 학교교육(paideusis)을 거쳐 교육(paideia)으로 정착된 개념이다. 그리스인은 최상의 교육으로 강건한 신체를 위한 체육교육과 심미적 영혼을 위한 음악교육을 들었다. 음악교육은 국가의 생존을 위한 상무적(尙武的) 삶과 개인의 예술적 재능과 개성의 발전을 위한 축제와 놀이를 동반했다. 이는 국가적 목적에 기여하면서 개인의 도야를 추구할 수 있는 조화로운 교육이었다.

 

   
▲그리스인들은 거의 나체로 경쟁에 나서는 것을 당연시했다. 권투하는 소년의 모습을 그린 벽화, 크레타 고고학 박물관 소장, 2층 48전시실에 있는 산토리니 섬에서 발굴된 벽화 중의 하나다. ⓒ박경귀

물론 음악교육은 현대적 의미의 음악교육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리스의 교육은 지식과 인성도야의 총체적 교육이었다. 음악교육은 기초교육으로서 읽기, 쓰기, 셈하기는 물론, 호메로스의 시의 합창을 포함했다. 법률 교육은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하듯 암송했고, 시 속에 녹아있는 삶의 지혜를 발표해야 했다. 축제 참여를 통한 공동체 의식 함양 등 정신 도야를 포괄하는 교육과 함께 문법과 수사학도 가르쳤다. 전인적 인간미와 전사적 신체교육의 균형을 추구한 것이 바로 그리스 교육의 핵심 이상이었다.

신체교육 시설로 사설기관인 팔레스트라(Palaestra)와 공설기관으로 대형 체육관인 김나지움(Gymnasium)이 있었다. 페리클레스 시기엔 김나지움이 철학학교와 결합하면서 현대적 의미를 갖게 된다. 그리스의 교육은 놀이 중심의 소년기 교육에서 16~18세 사이의 청년기 교육으로 이어진다. 18세에 시민권을 취득하고 2년간의 군사교육을 성공적으로 수료하면 완전한 시민으로 배출된다.

 

   
▲ 그리스 올림피아에 있던 대형 체육관인 김나지움 유적, 올림파아 제전에 참여하는 각국의 선수들은 이곳에서 일정기간 합숙훈련을 했다. ⓒ박경귀

그리스 교육은 스파르타와 아테네 사이에 차이가 있지만, 공통적으로 자유로운 인간 도야의 특성을 갖고 있었다. 강요가 아닌 자유로운 학문의 탐구를 지향했다는 점에서 ‘창조력’과 ‘자유’를 숭상하던 그리스인들의 정신세계의 바탕이 되었다.

그리스의 고등교육은 수사학이 중심이었다. 민주정을 구가했던 그리스인들에게 각종 시민 회의, 소송, 군대의 지휘 등에 논리학, 수사학, 정치학이 필요했다. 뛰어난 언변은 최고로 존경받았다. 자연스럽게 수사학적 기술을 교사하는 ‘소피스트(sophistes)'도 인기를 끌었다. 최고의 인기 강사는 프로타고라스, 고르기아스, 프로디코스, 트라시마코스 등이다. 하지만, 소피스트의 수업은 인성교육을 거부하고, 지적 능력의 훈련에 요구되는 기술적 보조 수단만을 제공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당대에도 비판을 받았다.

◇ 그리스의 자유정신은 전인 교육의 결과

그리스 최고의 교육자는 역시 소크라테스였다. 그는 궁극적 진리를 탐구하는 교육학적 명제를 그리스 사회에 던졌다. 플라톤은 '아카데미아'를 설립하여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교육적 이상을 구현하고자 했다. 플라톤의 교육 철학은 역시 국가적 목적에 기여할 수 있는 개인의 육성과 도야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특히 그는 음악과 체육교육이 향락과 단순한 신체의 교육으로 변질되는 것을 비판하면서, 윤리적 목표의 정립이 체육교육에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플라톤은 수사학을 넘어 철학 교육을 통해 인식의 근원으로 돌아가야 하며, 기하학, 천문학, 대수학 등 자연과학의 이론으로 나아가 마지막 이데아에 이른다고 생각했다. 이런 플라톤학파의 순수 학문적 입장은 수사학교를 운영하던 이소크라테스학파와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운 철학학교 '리케이온(Lykeion)'은 자연과학과 역사 및 사회 현상 연구의 중심이 되었다. 나아가, 다양해진 개별학문의 성과를 수용하는 수업 개념인 ‘엔키클리오스 파이데이아(enkyklios paideia)’의 시대로 전환되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문법, 수사학, 철학 또는 변증법, 대수학, 음악, 기하학, 천문학 등 7개 자유학과(arts liberales)의 교육이 모든 자유인에게 요청되었다. 그리스의 7교과는 중세 유럽 대학의 교과과정으로 그대로 전수된다.

‘엔키클리오스 파이데이아’는 개인에 의존하지 않는 정규학업과정의 정립을 의미했다. 알렉산드리아의 대규모 박물관처럼 수많은 학자가 모여 학술연구와 교육을 체계적으로 수행하는 방식으로 발전하였다. 이후 로마제국의 교육기관의 표본이 된다. 물론 에피쿠로스학파는 백과사전적 교육제도에 반대했다. 스토아학파처럼 백과사전적 교육이 무용하다고 주장하며 문법과 수사학, 윤리학과 물리학 등으로 교육목적에 따라 교육과정을 단순화한 방식을 널리 유행시키기도 했다.

◇ 로마의 인성교육 ‘후마니타스(Humanitas)’는 그리스 교육의 계승

초기 로마인들의 교육은 가정이 중심역할을 했다. 특히 아동교육은 어머니에게 전권이 주어졌다. ‘어머니 품 안의 교육’이라는 정신 속에 진정한 로마 가정의 긍지가 담겨있다. 아동기의 교육을 노예들에게 맡겼던 그리스와 달리 로마에서는 어머니의 감독 하에 아버지의 동반활동을 통한 교육 이외에는 어머니가 가정교육을 전담했다.

로마 교육의 특징은 일상생활 자체의 요소들이 교육적 기능을 수행하는 특징이 강했다. 로마적 삶 자체가 공적 생활의 특성을 띄었다. 15세가 되면 아버지와 함께 의회에 출석하거나, 단체에 가입하고, 유명한 법률학자와 관계를 맺는 등 사회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사회가 요구하는 역량을 쌓을 수 있었다.

교사를 통한 교육은 기원전 4세기에 등장한다. 아동에게 기초 수준의 공동 수업을 제공하는 학교가 설립되고, 그리스 수업을 모방한 문법학교 등 사교육 기관이 생겼다. 로마에 본격적으로 그리스식 교육이 전파된 것은 기원전 167년에 폴리비우스 등 그리스인 1000명이 로마로 끌려오면서부터이다. 이후 기원전 155년에 아테네의 스토아학파, 아카데미학파, 소요학파 등의 유명학 학자들이 아테네의 사신으로 로마에 입성하여 명망 있는 로마인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며, 교육의 지평을 넓혔다.

이런 의미 있는 사건들은 정치적, 법률적, 군사적 능력에 의존하던 로마인들이 그리스의 찬란한 예술과 학문적 역량에 매료되어 지적 도야에 대한 욕구를 촉발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리스식 교육의 전파는 그리스 문명의 이식을 의미했다. 이를 통해 로마에 그리스어, 문법, 문학 수업을 다루는 학교가 등장했다. 로마의 상류계층은 그리스어로 대화하고 공무를 수행했으며, 그리스 교육과 문학을 이상적으로 간주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리스식 교육의 영향으로 로마의 인간성 교육인 ‘후마니타스(Humanitas)’의 이상이 태동했다.

로마의 교육은 그리스의 영향으로 초기에는 수사학과 문법교육이 주류였으나 점차 법률가나 정치가가 되기 위한 법률 교육과 정치학이 창조적으로 발달하게 된다. 특히 그리스의 영향에서 점차 벗어나, 농업, 윤리학, 법학, 군사학, 보건학, 실증문헌학 등 실용적 교육 분야로 확대되어 로마적 교육의 특징을 드러내게 된다. 이에 걸맞는 뛰어난 교육이론가도 탄생했다. 카토(Cato), 키케로(Cicero), 세네카(Seneca) 등이 그들이다.

로마의 교육은 ‘후마니타스(Humanitas)'로 불린다. 키케로의 경우 정치가에게 로마사, 로마의 국가조직, 로마법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리스의 사변적 철학에 로마의 역사의식과 법률의식이 결부되어 더 높은 수준으로 통일되기를 희구했다. 특히 정치가는 연설가 이전에 최고의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카토의 교육철학을 이어받아 로마교육의 이상인 ’후마니타스‘를 역설했다.

◇ 위대한 문명은 인문주의와 자유교양에서 나온다

로마 교육의 특징은 윤리적·세계주의적 요소를 띄어 세계시민적 의식이 교육의 목적으로 추가되었다. 이는 로마가 제국으로 성장하면서 갖게 되는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다만 공화정에서 제정 시대로 넘어가면서 통치 권력의 강화 차원에서 황제들에게 정치학의 발전은 저지당했다. 반면 황제의 이해와 상충되는 부분이 없었던, 법률학, 문법학, 수사학은 발달했다. 국가의 봉급을 받은 최초의 수사학 교사인 퀸틸리아누스는 로마에 수사학교를 최초로 도입하는 데 특별한 공적을 남겼다. 그는 특히 인격 형성의 기초가 되는 가정교육과 함께 공적 학교교육 체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로마의 교육도 초기의 기초교육은 사교육에 의존했지만, 점차 대다수 부모들은 공립 교육기관을 이용했다. 카이사르가 교사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하면서 교사들의 처우와 지위가 향상되어 교육의 중요성과 교사들의 영향력을 커지게 된다. 로마의 교육체계의 비약적 발전은 5현제(賢帝) 시기에 이루어졌다. 특히 하드리아누스(Hadrianus) 황제 이후 오늘날의 대학의 규모에 상응하는 대학이 로마, 아테네, 콘스탄티노플에 설립되어 다양한 학문분야에 대한 고등교육이 실시되었다.

로마의 교육의 목적은 인문주의적 교양을 지닌 연설가의 육성이었다. 여기에 그리스 교육의 전통을 이어받아 교육을 통한 덕성(virtue)과 행복의 실현을 강조했다. 이는 심신의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여 아름다운 인간을 육성하려 했던 그리스의 교육과 맥을 같이 한다.

저자가 그리스의 교육과 로마의 교육의 태동과정, 교육체계, 교과목, 교육사상가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교육의 특징을 비교하면서 주목한 것은 그리스와 로마의 교육이 당대의 각각의 시민들의 요구와 사회적 필요성에 어떻게 부응하는가 하는 점이다. 이는 교육이 단지 개인의 인격적 도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와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상을 만들기 위해 어떤 교육철학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운용되는지를 발견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개인의 발전은 국가와 민족적 차원의 발전과 괘를 같이 한다는 차원에서 볼 때, 개인과 국가의 발전을 뒷받침할 수 있는 교육체계의 중요성은 매우 높다고 하겠다. 딜타이는 국민정신의 형성이 중요하게 요구되던 19세기 독일의 상황에 비추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어떤 교육체계가 바람직할 지에 대한 고민했다. 그가 국가와 개인의 목표와 이상의 조화를 추구하던 그리스와 로마의 교육체계와 특징을 연구한 이유다.

오늘날 우리가 여러 역사적 사료, 문학작품, 역사서에 산재해있던 그리스와 로마의 교육의 흔적이 치밀하게 발굴되어 체계를 갖춘 교육사로 그려볼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오로지 교육에서 자아실현과 사회적 공헌의 접점의 모델을 찾으려했던 딜타이의 노고 덕분이다. 이 책에서 보듯, 그리스와 로마 교육의 인문주의와 자유교양 교육의 특성이 그리스와 로마 문명의 창조에 큰 밑거름이 되었다는 점에서 주입식 지식교육에 치중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대 교육의 문제점과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큰 각성을 안겨준다. /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한국정책평가연구원장

  

   
 

 ☞추천도서 :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교육>, 빌헬름 딜타이 지음, 손승남 옮김, 지식을 만드는 지식(2012), 20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