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 기자]박한철 헌법재판소 소장은 지난 25일 탄핵심판 9차 변론기일에서 "재판관 2인 공석으로는 절차가 제대로 진행될 수 없어 3월 13일 전에 선고돼야 한다"고 밝혔으나 아직 헌재의 탄핵심판에 남아있는 쟁점과 의혹은 상당하다.
우선 탄핵심판의 시효다. 탄핵심판은 180일 내로 내리게 되어 있다. 박 소장의 언급대로라면 헌재는 지난달 9일 탄핵소추 후 93일이 채 지나지 않아 탄핵심판을 결정하겠다고 공언한 셈이 됐다.
대통령 변호인단 이중환 변호사는 "박 소장의 해당 발언이 언론에 보도된 권성동 국회 소추위원의 말과 유사하다"며 "헌재가 청구인 측인 국회 의견을 그대로 말한 것이라면 심판 절차의 공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재판관 9명 중 2명이 임기 만료로 자리를 비우고 나머지 7명 재판관이 6명 이상의 찬성을 얻어 탄핵 인용 가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은 헌재 재판부가 '내부적으로 고심해야 하는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탄핵심판 변론을 끌고 가야 할 나머지 7명 재판관들에게도 탄핵 인용이나 기각 등 판단의 재량을 줄일 수 있는 발언이라는 비판도 있다.
법률에 근거해 사건을 판가름하는 법치주의 최후의 보루인 헌재가 자칫 공정성에 대한 시비에 휩싸여 대의명분을 잃는다는 문제제기다.
헌재 탄핵심판에 남아있는 두번째 쟁점은 국회의 탄핵사유서 수정이다.
국회 소추위원단은 지난 23일 박 대통령의 법률위반 탄핵사유에 대한 법률적 평가에 재산권 보장(헌법 제23조 제1항)과 시장경제 질서(헌법 제119조 제1항) 등 헌법위반 법리를 추가해 수정한 후 이를 헌재에 제출했다.
미르·K스포츠 재단 강제모금 행위와 최순실씨와 관련한 기업 특혜 의혹 등에 적용된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강요죄' 등 법률위반 법리에 헌법위반 법리를 추가한 것이다.
헌재는 작년 12월22일 첫번째 변론기일에서 "소추 의결서에 기재되지 않은 새로운 사실로 임의로 추가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헌재는 국회 소추위의 변경된 탄핵사유서를 접수함으로써, 자신들의 공언을 스스로 뒤집었다.
지난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국회가 탄핵사유를 추가 제출하자 헌재는 '국민 뜻이 왜곡되기 때문에 판단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지금의 헌재는 2004년 탄핵심판이라는 전례에서도 없었던 조치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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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한철 소장의 후임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국회 동의를 얻어 임명하게 되어 있으나 야당에서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그 후임을 지명해선 안된다는 입장을 밝혔다./사진=연합뉴스 |
탄핵사유 밝힐 핵심증인 4명의 잠적
셋째로는 추가 증인 채택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있다.
헌재는 지난 25일 박 대통령 변호인단이 신청한 39명 증인 중 10명만을 추가로 채택했다.
헌재는 최순실씨 비밀 문건 유출의 핵심 증인이자 태블릿PC 개통자인 김한수 청와대 행정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및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을 포함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기업 총수들을 증인으로 채택하지 않았다.
헌재의 증인 채택 및 증인신문에 있어 가장 큰 의혹은 잠적 중인 핵심 증인들이 4명 있다는 점이다.
고영태 전 더블루케이 이사, 류상영 더블루케이 과장,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과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 모두 잠적 중이며 이들에 대한 증인 철회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무 파일 없는 빈 태블릿을 검찰에 넘겼었고 의상실 영상을 방송사에 제보하는 등 한때 최씨 측근이었다가 등을 돌린 고영태 전 이사에 대해 국회 소추인단은 헌재 증인 채택을 철회했고, 고영태는 헌재 증인 출석에 불응한 뒤 잠적했다.
대통령 변호인단은 고씨를 증인으로 불러 신문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와 관련, 대통령 변호인단 이중환 변호사는 "고영태는 범죄자임이 틀림없다"며 "헌재 증인신문을 받아보면 알 것이다. 탄핵사유가 허구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다"고 밝혔다.
헌재 탄핵심판 심리 중에 불거진 또 다른 쟁점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재 재판관 임명 여부다.
박한철 소장의 임기는 1월 31일 끝나며, 이정미 재판관은 3월 13일 임기 만료된다. 3월 13일 이후에 탄핵심판을 결정할 경우, 헌재는 나머지 재판관 7명 중 6명 이상의 찬성을 모아 탄핵인용할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르면 재판관 임기가 만료되기 전에 후임자를 임명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박한철 소장의 후임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국회 동의를 얻어 임명하게 되어 있으나 야당에서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그 후임을 지명해선 안된다는 입장이었고, 황 권한대행 역시 후임 재판관 임명에 대한 의사를 비춘 바가 없었다.
이에 대해 조대현 전 헌법재판관은 "법률에 규정된 의무이기에 황교안 권한대행도 마땅히 이행해야 한다"며 "일부 정당에서 권한대행이 후임자 임명은 안 된다고 하니까 그런지는 모르겠다"며 재판관 후임 임명을 둘러싼 논란에 난색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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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재는 2004년 '2004헌나1 노무현대통령 탄핵사건'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나 법치주의에 역행하는 것을 탄핵의 중대 사유로 꼽았다./사진=미디어펜 |
탄핵 인용의 중대사유…근거와 사실관계
헌재가 다루어야 할 또 다른 주요 쟁점은 탄핵사유 근거의 타당성과 사실관계 부합 여부다. 이는 지금까지 헌재에서 대통령 변호인단과 국회 소추위원단이 가장 치열하게 맞붙은 쟁점이기도 하다.
국회는 헌재에 탄핵소추안의 근거로 검찰의 공범 공소장과 언론기사 15건을 제출했다. 국회는 검찰의 중간 수사결과와 언론기사를 근거로 대통령을 탄핵했다.
문제는 아직 박 대통령 자신이 재판은커녕 검찰 조사도 받지 않았고, 특검 대면조사가 성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검은 이제 출범해 본격적인 수사 중이다. 법원 판결까지 나려면 한참이다.
현재까지의 헌재 분위기로 보면, 특검 수사나 최순실 관련 1심 법원 판결이 나기 전에 탄핵심판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르, K스포츠재단 설립 및 사익 추구에 대한 특검 수사도 의혹 확인 차원에 그쳐있다. 재단 설립 등은 준조세의 일환으로 기업들로부터 모금을 받은 일반적인 기금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욱이 기금 모금에 응한 기업 총수들 모두 '대가성 없는' 일반적 모금이었다고 진술했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 헌재에서 박 대통령의 정상적인 통치행위를 불법으로 판단한다면 현 정부를 포함해 역대 정권이 받았던 기금 모금 모두 동일한 잣대로 판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더욱이 헌재가 대통령 탄핵 인용 여부를 앞두고 고민해야 할 '최순실게이트 의혹' 관련 쟁점은 설사 이러한 의혹 중 일부가 법률위반이라 하더라도 대통령을 파면할 정도의 ‘중대한’ 법 위반으로 볼 수 있느냐 여부다.
헌재는 2004년 ‘2004헌나1 노무현대통령 탄핵사건’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나 법치주의에 역행하는 것을 탄핵의 중대 사유로 꼽았다.
법조계 다수는 "현재 대통령이 받고 있는 혐의는 여기 해당하지 않는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방어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았고 탄핵소추 및 탄핵심판 과정의 법적 절차에 무리수가 많다는 지적이 있기도 하다.
헌재의 탄핵심판 선고 시기
세간의 관심이 가장 많이 쏠려있는 것은 헌재가 탄핵심판 선고를 언제 내리느냐다.
탄핵심판 선고 시기와 관련, 조대현 전 헌재 재판관은 25일 "헌법재판소가 탄핵 소추 사유에 대한 증거 조사를 아직 끝내지 않았기 때문에 선고시기를 결정하지 않은 상태일 것"이라며 "(아직) 결정할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조 전 재판관은 박한철 소장의 3월 13일 이전 발언에 대해 "그런데도 3월 13일 이전에 끝내야 한다고 말한 건 재판관 한 명이 더 퇴임하기 전에 해야 한다는 취지로 이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 전 재판관은 "3월 13일 전에 결론을 내자는 얘기가 아니고, 재판관 한 명이 더 퇴임하기 전에, 8명이라도 있을 때 바람직하다는 것, 그리고 양측에게 빨리 끝낼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는 취지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7년 대선 등 올해 대한민국 호의 향방은 헌재의 손에 달려있다. 남아있는 쟁점과 의혹에 관해 헌재의 공정하고도 치밀한 법리증거 검토가 요구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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