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투자처를 찾지 못한 뭉칫돈이 은행 예금으로 편중되고 있다. P2P소액투자‧크라우드펀딩 등 새로운 방식의 투자전략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더 큰 성공을 위해서는 투자 위험성을 보완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국민‧우리‧KEB하나‧농협은행 등 시중 5대 은행에 몰린 요구불예금 잔액이 작년 말 300조원을 돌파했다. 정확한 액수는 327조3672억원으로 2015년말 대비 41조7415억원이 늘었다. 대한민국의 1년 예산이 400조원 안팎임을 감안하면 국가예산의 75%에 육박하는 거금이 예금 형태로 '고여 있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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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자처를 찾지 못한 뭉칫돈이 은행 예금으로 편중되고 있다. P2P소액투자‧크라우드펀딩 등 새로운 방식의 투자전략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연합뉴스 |
예금액 증가가 금융권에 미친 영향은 다양하다. 우선 주요 은행들을 자회사로 두고 있는 금융지주사들의 실적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금융사들의 전통적인 수익모델인 '예대마진'을 남기기 쉬운 구조가 유지됐기 때문이다.
'저금리 기조 장기화'라는 악재가 무색하게도 작년 신한‧KB‧하나 등 주요 금융지주사들은 거의 매분기 '어닝 서프라이즈' 낭보를 울렸다. 구조조정 여파로 힘든 시기를 보낸 농협금융 또한 적자를 청산하며 새 출발을 알렸다.
우리은행 역시 호실적에 기초해 숙원 과제던 민영화에 성공했다. 최근엔 '금융지주사 전환' 청사진을 조금씩 그려가며 2차 도약시점을 모색 중이다. 결국 시중 5대은행의 호실적이 고스란히 금융권 전반의 '호황'으로 이어진 셈이다. 대다수 애널리스트들은 금융지주사들의 올해 실적도 낙관하며 잇따라 매수 사인을 내고 있다.
고객 입장에선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은행에 많은 자금이 몰리다 보니 자금유치 경쟁이 시들해졌다. 실제로 최근 시장에서는 특판 예금이 사실상 실종됐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예금이 너무 많아 문제인 상황에 고객들을 끌어당기려는 (은행들의) 노력이 느슨해지는 건 필연적"이라고 짚었다.
금융당국과 투자업체들은 금융소비자들의 '은행예금 짝사랑'에 내심 답답한 표정을 짓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상품을 소개하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P2P소액투자는 최근 가장 각광받고 있는 투자형태 중 하나다. P2P금융은 돈이 필요하지만 시중은행에서 대출받기가 어려운 개인이나 법인을 대상으로 여러 투자자들의 자금을 모아 빌려주는 금융플랫폼을 뜻한다.
8퍼센트‧렌딧‧어니스트펀드‧테라펀딩‧루프펀딩‧투게더앱스‧펀다 등의 업체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으며 연 수익률은 평균 12.1% 수준이다. 개인투자자 입장에서 가장 큰 메리트는 최소투자금액이 5000원으로 소액이라는 점. 업계에 따르면 개인투자자들의 약 67%가 재투자에 나설 정도로 '마니아'들이 형성되고 있다.
불특정 다수의 개인으로부터 인터넷이나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금을 모으는 크라우드펀딩 역시 당국과 업계의 관심을 받는 '유망주'다. 특히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의 경우 스타트업 기업들의 자금조달 창구로 최근 급부상하고 있다. 은행에 편중된 수익구조를 다변화 하기 위해 금융지주사들도 크라우드펀딩에 관심을 갖는 추세다.
금융위 자료에 따르면 작년 1월 증권형 크라우드 펀딩이 허용된 후 약 1년간 총 116건의 아이디어가 크라우드 펀딩에 성공해 7172명의 투자자로부터 180억원을 조달받았다. 약 90%의 참여자가 개인 투자자로 구성돼 있으며 성공률은 절반 이상에 달한다.
한편 P2P투자와 크라우드 펀딩 등 새로운 형태의 투자방식이 은행 예금 잔액을 얼마나 분산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완벽하게 '검증'되지 않았다는 불안감 때문에 위험회피 성향을 가진 투자자들을 끌어당기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있다.
P2P투자의 경우 대출 받은 사람이 돈을 갚지 않을 경우 손실을 입게 된다는 점, 크라우드펀딩의 경우 창업 3년 미만 기업들이 절반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 등 각각의 방식에 예금보다 큰 위험성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금융권 한 고위 관계자는 "막대한 은행예금이 주식시장으로조차 흘러가지 않아 코스피가 '박스피'가 되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면서 "당국과 금융사들이 원금손실에 대한 투자자들의 공포감에 좀 더 집중하는 것이 은행예금 분산을 위한 지름길이 될지 모른다"고 분석했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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