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한기호 기자]김대중(DJ) 정부에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경제사령탑을 맡은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지난달 31일 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74세.

전북 군산출신인 강봉균 전 장관은 3선 의원 출신에 합리적 중도성향을 가진 인물로 외환위기 극복의 주역으로 꼽히며, 정통 경제관료로서 최근까지 구조개혁과 재정개혁을 위해 노력해왔다.

특히 야권 인사임에도 지난해 4·13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반(反) 포퓰리즘'을 기치로 내걸고 '경제민주화 아이콘'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전 비상대책위 대표와 각을 세운 인물이다.

김 전 장관은 사범학교 졸업 후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서울대 상학과에 늦깎이로 입학, 행정고시 6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박정희 정부 시절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5차례나 참여한 한국경제의 산 증인으로도 꼽힌다. 이 과정에서 경제기획국장, 대외경제조정실장, 노동부 차관과 경제기획원 차관, 정보통신부 장관 등을 거쳤다.

   
▲ 고(故)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사진=연합뉴스


DJ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기획수석과 경제수석, 재경부 장관 등 요직에 중용됐다. 외환위기 발생 후 경제수석과 재경부 장관을 지내면서 재벌기업 지배구조 개혁과 함께 부실기업과 금융기관 구조조정 등 소위 '신자유주의'를 대표하는 정책을 이끌었다.

이후 2002년 8월 8일 16대 국회 재보선에서 전북 군산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며 금배지를 달았고 그해 대통령 선거 때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후보의 경제 분야 공약을 주도했다.

이후 개각 때마다 경제부총리 후보로 하마평에 끊임없이 오르는 가운데 17~18대 내리 국회의원으로 활약했다.

2014년부터는 고향인 군산대 석좌교수, 재정 건전성을 지키기 위해 무책임한 포퓰리즘에 대한 대안을 전파하기 위한 모임인 건전재정포럼의 대표를 맡으며 경제 원로로서 활동해왔다.

2016년에는 4·13 총선 당시 새누리당에 입당해 공동선대위원장을 지내며 재전건전성을 기치로 야권의 복지 포퓰리즘 공약 남발에 맞서기도 했다.

또한 경기 대응을 위해 한국은행에 기준금리 인하와 주택담보대출증권, 산업은행 채권을 직접 인수하는 내용의 '한국판 양적완화'를 화두로 던졌다.

총선 이후 경제 원로로서 언론 등을 통해 내수·수출 동반 둔화, 저성장 고착화 등 경기 난국을 헤쳐나갈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2016년 9월 2년 임기의 대한석유협회장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췌장암으로 건강이 급속히 악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 전 장관은 2016년 11월30일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전직 부총리, 재경부 장관들과 만난 자리에는 참석했으나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후인 지난해 12월 중순 모임에는 건강 악화로 참석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으로는 부인 서혜원씨(71)와 아들 문선씨(43), 딸 보영씨(42)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3일 오전 7시, 장지는 전북 군산 옥구읍 가족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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