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지난달 12일 귀국한 지 20일만에 국회 정론관을 찾아 전격 후보 사퇴를 밝혔다.

반 전 총장은 후보 사퇴를 “오전에 혼자 결정했다”고 밝혔으며, 캠프 관계자도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반 전 총장이 새누리당과 바른정당, 정의당을 순차적으로 방문하는 일정 내내 기자들도 ‘어느 당으로 입당할 것인지’ ‘어떤 방식의 개헌을 할 것인지’ 등을 물은 것으로 볼 때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반 전 총장이 급작스럽게 불출마 선언한 것으로 볼 때 어떤 결정적인 계기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이날 사퇴 선언문이 비교적 잘 정리돼 있는 것으로 볼 때 설 연휴 내내 고민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귀국한 뒤 오히려 지지율이 하락세를 이어갔고 설 연휴를 지나면서 1위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지지율(32.8%)의 절반인 13.1%에 불과한 것이 중요 요인이 됐을 것이다.
 
게다가 반 전 총장은 이날 사퇴문에서 밝힌 것처럼 인격살해에 가까운 음해와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이기주의가 판치는 정치권에서 함께할 수 없다는 판단도 있었다. 결국 반 전 총장은 ‘직업 정치인’들 사이에서 버텨내지 못하고 ‘제2의 고건’이 됐다.

   
▲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대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한 뒤 나와 차량에 타고 있다.

반 전 총장이 “정치에 환멸을 느꼈다”고 하자 일각에서는 “정치권에 뛰어들 준비가 안된 것”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그동안 반 전 총장의 기성 정당 입당을 놓고 ‘정치인들의 간보기’가 유난했던 것도 사실이다.

10년간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국제적 인물로 부각된 반 전 총장으로서 국내 대선에서 지는 선거를 치를 의향은 없었을 것이다. 그가 귀국한 날 공항 기자회견에서 한 말처럼 설 연휴까지 전국으로 민생행보를 다녀본 결과 정치권의 반응과 지지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내린 결정으로 보인다.  

반 전 총장의 대선후보 사퇴로 대선 판도도 크게 흔들릴 수 있다. 

반 전 총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으로 가장 수혜를 받을 대선주자는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가 될 전망이다. 반 전 총장을 지지했던 보수층을 비롯해 중도층의 표심이 안 전 대표에게 쏠리면서 지지율이 상승세를 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여권에서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급부상할 가능성도 나온다. 정작 황 권한대행 자신은 대선 출마를 선뜻 결정하지 못하는 모양새지만 새누리당을 비롯한 보수 진영의 출마 권유가 거세질 수 있다.
 
바른정당의 유승민 의원이나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보수 결집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 바른정당 후보가 안철수 전 대표와 연합해 차기 대선을 치를 경우도 제기됐다. 여권 후보의 지지율이 전혀 오르지 않을 경우 안 전 대표에게 힘을 실어서 크게 볼 때 ‘문재인대 반 문재인’의 구도가 나올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그간 손학규·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 등이 불을 지폈던 ‘개헌’을 매개로 한 제3지대는 만들어지지 못하거나 ‘스몰 텐트’로 전락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야권에서 안희정 충남지사가 ‘충청 표심’을 등에 업고 급부상해서 ‘문재인 대세론’을 꺾을 가능성도 거론되는 상황이다.

10%를 웃돌던 반 전 총장의 지지율을 어떤 후보가 흡수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앞으로 대선구도는 보다 선명해진 만큼 여야 할 것없이 후보들이 지지율  반등을 노리는 ‘문재인 대 반 문재인’의 선거전쟁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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