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퇴시 '재적 과반수 출석-출석 과반수' 본회의 찬성표 필요…野 동의 의문
한국당, 총사퇴 공언 초기부터 "정치적 명분쌓기 쇼" 일축
[미디어펜=한기호 기자]바른정당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일(10일)을 하루 앞둔 9일까지도 '탄핵 기각 시 국회의원직 총사퇴'를 공언하며 탄핵 반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자유한국당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의원직 사퇴가 법적으로 의원 개인 재량으로 이뤄질 수 없고 국회 본회의 의결 등을 거치게 돼 있어, 애초 실현 가능성이 없는 '말잔치'에 불과했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바른정당은 지난달 12일 처음으로 소속 의원 전원(32명)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결의한 이래 줄곧 공언해왔다. 이날까지도 당 대선기획단장을 맡은 김용태 의원은 오전 MBC라디오에 출연해 "저희는 기각되면 전원 사퇴한다"고 재확인하며 "(헌재 판결에) 승복하지 않겠다는 말이 아니다"고도 밝혔다.

당 대선주자 유승민 의원도 이날 동대문시장 방문 직후 기자들과 만나 "기각될 경우 약속드린대로 전원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말했고, 주호영 원내대표까지 국회에서 열린 비상시국 의원총회에서 "(기각 시) 의원직 총사퇴로서 정치적 책임을 질 것"이라고 확인했다.

   
▲ 지난달 20일 오전 국회에서 바른정당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사진=미디어펜


의원직 총사퇴가 일견 초강수로 비칠 수 있으나 정작 현실화 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의원 1명이 사퇴하는 것만 해도 스스로 거취를 정할 수 있는 대통령의 하야보다도 어려운 일이 될 수 있다.

의원직 사퇴를 위해서는 우선 본인이 서명·날인한 '국회의원(의원 성명) 사직의 건'을 국회의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정기·임시국회 회기 중이면 사직서 안건을 본회의 표결에 부쳐야 하고 폐회중일 경우에는 국회의장이 사직을 허가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다만 폐회 중이더라도 국회의장 재량으로 사직서를 수리한 바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본회의 표결이 사실상 유일한 방법인데 국회법 109조에 따라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필요하다.

가장 최근의 의원직 사퇴 사례는 지난 2015년 10월12일 본회의에서 사직의 건이 처리된 심학봉 당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의원이다. 성폭행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된 상황에서 당일 본회의에 자신의 의원직 제명안이 상정되기 직전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이뤄졌다.

심학봉 전 의원 사례보다 3년여 앞선 19대 총선 직후에도 2012년 7월 윤금순 구(舊)통합진보당 전 의원이 비례대표 부정선거 파문에 책임을 지고 사직서를 제출, 본회의 표결을 거쳐 물러난 사례가 있다.

2012년 18대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당시 비례대표 의원이, 2014년 6·4지방선거를 앞두고 남경필·정몽준·김기현·서병수·유정복·윤진식·박성효(이상 한국당)·이낙연·김진표·이용섭(이상 더불어민주당) 등 당시 현역 의원들이 출마를 위해 사퇴한 바 있지만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 사례라고 보기 어렵다.

   
▲ 국회 본회의장./자료사진=미디어펜


바른정당의 이번 총사퇴 약속은 스스로 공언했듯 '정치적 책임'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일제히 사직서를 내더라도 함께 탄핵 드라이브를 걸었던 입장인 더민주·국민의당·정의당 의원들이 쉽사리 본회의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져줄지는 의문이다.

야3당은 '탄핵 기각 시 의원직 총사퇴'에 바른정당과 입을 모은 적도 없다. 만일 탄핵 인용과 총사퇴가 이뤄지더라도 바른정당이 차지했던 지역구 보궐선거에서 야권에게 의석이 고스란히 넘어오기보다는 탄핵 반대 여론을 등에 업은 한국당 후보에게 넘어갈 공산이 크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선별적으로 사직의 건을 처리해준다면 국회 전체가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다. 한국당부터도 바른정당의 총사퇴 공약에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여왔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바른정당의 공약 직후부터 "물귀신 작전", "정치적 명분쌓기이자 쇼"라고 촌평한 데 이어, 이날 바른정당의 '탄핵 인용 시 한국당 해산' 요구에 대해 "소아병적 생각"이라고 일축했다. 탄핵 기각·각하 여론몰이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윤상현 의원 역시 "사퇴한다고 사퇴가 되겠느냐"고 웃어넘겼다.

한편 같은날 바른정당 고문인 김무성 의원이 오전 YTN라디오에 출연해 대선 전 개헌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친박, 친문패권세력을 제외한 모든 세력이 힘을 합쳐야 한다"며 '제3지대 연대' 연결 고리를 자임하는 등 의원직 총사퇴와는 동떨어진 행보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미디어펜=한기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