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세헌기자]12월 결산 상장 기업들의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오는 17일부터 시작된다. 이번 정기 주총도 여전히 3월 중·하순 금요일에 몰려있어 주주들의 참여 제한 논란이 되풀이 될 전망이다.
예년처럼 소액주주들의 의결권 행사 등 주주감시활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는 데다,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등으로 기관투자가의 적극적인 참여 역시 여전히 기대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지난 2010년 전자투표제가 도입됐으나, 실제 활용한 사례가 극히 적어 유명무실한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13일 한국예탁결제원과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이번 주 주주총회를 여는 코스피 상장사는 현대자동차, LG생활건강, 현대건설, 아모레퍼시픽, 네이버, 하나금융지주, 한국화장품 등 128개사다.
코스닥에서는 카카오, GS홈쇼핑, 셀트리온, 바이로메드 등 79개사, 코넥스시장에서 미애부 등 4개사가 이번 주에 주주총회를 연다.
12월 결산 상장법인 270개사 가운데 포스코 등 47개사는 이미 정기주주총회를 완료했다. 1333개사가 3월 넷째 주 이후로 정기주주총회 일정을 확정했다.
특히 17일에는 코스피 110개사, 코스닥 65개사, 코넥스 3개사 등 178개사의 주주총회가 몰려있다.
주총일자를 확정한 유가증권시장 68곳과 코스닥시장 63곳 등 모두 131개 상장사 가운데 절반 이상인 68곳은 오는 24일 주총을 연다.
유가증권시장에선 상장사 68곳 가운데 절반이 넘는 36곳이 24일에 정기 주총을 개최한다. 이날 코스닥 상장사 63개 중 32개사도 주총을 진행한다.
주요 상장사별로 보면 LG디스플레이는 16일에, 현대차, 네이버, 농심, 엔에스쇼핑, 현대글로비스, 효성 등 상장사는 17일 정기 주총을 연다.
삼성전자와 E1, LF, LS, LS네트웍스, 한화, 녹십자홀딩스, 만도, 메리츠종금증권, 삼양홀딩스, 신도리코, 쌍용양회공업, 엔씨소프트, NHN엔터테인먼트, 코이롱인더스트리, 한라홀딩스, 한솔로지스틱스 등은 24일 대거 주총을 개최한다.
17일 열리는 현대차의 주총에서는 정몽구 회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이 상정돼있어 국민연금의 찬성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국민연금은 2008년과 2011년 현대차 주총에선 정 회장의 이사 재선임에 반대했으나 2014년 주총에서는 찬성했다.
같은 날 주총을 진행하는 LG전자는 정관상 이사의 정원을 최대 9인에서 7명으로 변경하고 구본준 ㈜LG 부회장과 정도현 LG전자 대표이사 CFO 사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할 예정이다.
상법상 사외이사는 3명 이상을 두고 이사 총수의 과반수가 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7인 체제에서 사외이사는 4명, 사내이사는 3명이 돼야한다.
LG전자는 그동안 사업본부장들이 각자 대표를 맡으며 이사회에 참여해왔으나, 지난해 말 조성진 부회장 1인 대표이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조준호 사장은 각자 대표직을 내려놓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24일 개최 예정인 삼성전자의 주총은 최순실 특검 사태 등으로 주요 안건을 논의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룹의 지주회사 전환 등 지배구조 개편 안건은 논의조차 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말 주주가치 제고 방안의 일환으로 삼성전자를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
|
|
▲ 지난해 3월에 열린 삼성전자 정기주주총회 |
상장사들이 3월 중·하순 금요일에 무더기로 주총을 개최하면서 소액주주의 주총 참여가 어렵다는 문제는 올해도 이어질 전망이다.
같은 날 주총이 몰려있으면 주주들이 물리적·시간적 제약으로 각사 주총에 참석하기 어려운데, 이에 상장사들은 주요 의사 결정 안건을 일사천리로 통과시키려고 계열사 주총을 같은 날로 잡기도 한다.
소액주주들이 주총장을 직접 찾지 않아도 인터넷 투표시스템을 통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전자투표제가 도입됐으나 활용 비율은 미미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010년 전자투표 제도가 도입된 이후 의결권 행사를 위해 전자투표를 사용한 주주 비율은 평균 0.90%에 불과했다. 행사 주식 수를 기준으로 하면 1.76%만 전자투표를 이용했다.
이번 정기 주총에서도 예년처럼 감사보고서와 배당 등 주주친화 정책, 결산 등 안건을 제대로 된 논의 없이 거수기처럼 승인하는 사례가 난무할 것이란 논란이 예상된다.
최근 상장사들의 주주친화 정책 확대에 대한 목소리는 커지고 있으나, 이번 주총 시즌에 삼성 등 주요 그룹의 지주회사 전환 등 굵직한 지배구조 개편 안건은 논의조차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사안이 주총에서 논의되려면 앞서 이사회 의결 등을 거쳐 안건이 상정돼야 하는데, 이번 주총 시즌은 감사보고서와 배당, 결산, 정관 변경 등 통상적인 안건 승인에 그칠 것이란 시각이 대체적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주주들의 주총 참여를 높이기 위해서는 법 개정을 통해 전자투표제 의무화 도입과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 활성화 등을 유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기관투자가들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유도하려고 자율지침인 스튜어드십 코드가 지난해 12월 도입됐지만, 가입한 곳은 전무한 실정이다.
현재 8개 금융투자회사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기로 했는데, 국내 가장 큰 손인 국민연금은 아직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이에 주주들의 주총 참여를 활성화하고 기관들이 제 목소리를 내게 하려면 전자투표제 의무화와 스튜어드십 코드의 법률적인 불확실성을 없애주기 위한 제도 개편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 금융투자사 관계자는 "한때 기업들이 전자투표제 도입에 나섬에 따라 소액 주주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가 한층 쉬워질 것으로 예상됐지만, 실제 소액주주들의 의결권 행사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과 노력이 더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