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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의춘 미디어펜대표 |
하루 24시간 억울할 만큼 일에 미쳤던 대우맨들
"흔적을 남기는 것은 부담스럽다."
입은 말을 멈추고, 축축해진 눈은 과거를 더듬는다. 세계경영을 호령하던 시절엔 이런 식으로 창업 50주년을 맞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열심히 노력하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살았다.
하루가 24시간이라는 게 억울할만큼 일에 미쳐 살았다. 대다수 국민들이 가난에 허덕일 때 우리세대가 도전 희생 창조해서 후대에게 잘사는 나라 물려주자고 했다. 선진한국을 물려주기위해선 우리가 죽어라고 일해야 한다고 임직원들을 독려했다. 나라가 강해야 해외에서 대접받는다고 강조했다.
일년 중 280일을 해외에서 보냈다. 조종사외에는 가장 많이 비행기를 탔다. 귀가 잘 안들리는 것은 하도 비행을 많이 탔기 때문이다. 수출시장 개척을 위해 비행기에서 잠자는 게 예사였다. 현지 공항 화장실에서 면도하고 세수했다. 이곳에서 옷을 갈아입고 바이어를 만나 상담했다.
아프리카 남미 구석에 보따리를 메고 외로운 행상을 했다. 조금의 피로한 기색도 없이 만날 사람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인내심을 갖고 장사를 했다.
대우를 경영하는 동안 하루도 쉬지 못했다. 유일하게 딱 한번 쉰 게 신혼여행 때였다. 연말연시는 중동 동남아 등 해외직원들과 보냈다. 칠흙같은 밤에 중동의 사막지대를 5~7시간 달려서 건설노동자들을 격려했다. 명절과 연말연시를 자녀들과 함께 할 시간이 없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았다.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는 수출로 국부를 창출해야 했다. 다들 좁은 국내시장에 안주하고 있었다. 나는 해외로 나갔다. 칭기즈칸을 빗대 ‘김기즈칸’이란 별명을 얻었다. 중동과 동남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유럽 미국 중국등을 누볐다. 미수교국이었던 쿠바에도 가장 먼저 깃발을 꽂았다. 우리는 남들이 가보지 않은 험지와 오지 곳곳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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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중 전 대우회장은 하루 24시간이 억울할 정도로 일에 미쳐 살았다. 평생 국가경제와 제조업육성을 위해 도전하고 헌신하고 창조했다. 해외시장개척과 수출을 주도했다. /대우그룹 제공 |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남들 안 간 곳 대우 깃발꽂아
선진국이 수백년간 쌓아온 경쟁력을 수십년만에 따라잡기위해선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아직 쉴 시간이 없었다.
기업의 이윤은 창조 도전 희생의 대가로 주어질 뿐이다. 지갑에 돈이 얼마 있는지, 재산이 얼마나 있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돈과 재산보다는 성취가 주는 보람과 행복이 그 어느것보다 크다. 기업가는 희생적이어야 한다. 기업재산을 국가와 민족에게서 수임받은 신탁재산으로 여겨야 한다.
대우는 개도국 기업 가운데 최대의 다국적 기업을 형성했다. 90년대 대우임직원은 28만명에 달했다. 해외공장 종업원은 18만명으로 국내 근로자보다 더 많았다. 백인계 인력이 10만명에 달했다. 동유럽 최대규모 자동차업체인 폴란드 FSO자동차, 헝가리 조선공장, 유럽과 미국의 가전공장 등에선 백인근로자들이 가득했다. 한민족 역사상 언제 백인들을 이렇게 대규모로 고용한 적이 있었던가?
대우는 한국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글로벌경영, 세계경영의 돛을 올렸다. 무국적 기업을 지향했다. 90년대 중반 세계경영 3년간 현지법인 244개, 지사 97개, 연구소 10개, 건설현장 45개에 달했다. 전세계에서 400개 해외네트워크가 활발하게 움직였다.
대우차는 연산 130만대 체제를 구축했다. GM과 결별할 당시 연산 18만대규모에 불과했던 것을 7~8배 늘렸다. 자동차의 성과는 엄청난 노력의 산물이었다. 임직원들이 아침 일찍부터 밤 10시, 12시까지 일했다. 토요일 일요일도 없었다. 개발인력과 생산인력이 부족했다. 품질도 좋아야 했다. 제품도 개발해야 했다. 3가지를 동시에 달성해야 했다. 뛰고 또 뛰었다. 달리고 또 달렸다. 미치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었다.
대우임직원 28만명, 전세계 400 네트워크 구축했는데
대우 세계경영은 한국기업이 나아갈 방향이었다. 삼성 현대차 SK LG 등 재계가 해외시장개척과 글로벌경영에 동참했다. 세계경영은 재계가 글로벌기업으로 도약하게 하는 불씨였다.
대한민국 무역규모가 세계8대강국으로 부상한 것은 기업들의 수출시장 개척과 해외진출로 이뤄진 것이다. 기업과 기업인들이 밖에서 벌어 국부를 살찌웠다.
대우의 급성장과 성공신화는 우연한 산물이 아니다. 대우맨은 남들보다 2배이상 일했다. 남들이 내수에 안주할 때, 해외로 나갔다.
세계경영이 꽃을 피웠다면 2000년에 전 세계에 600개 제조업체가 생겼을 것이다. 해외매출 720억달러로 커졌을 것이다. 해외 600개 제조업체 꿈. 엄청난 목표였다. 그 꿈은 실현 직전에 끝내 무너졌다.
대우는 재계무대에서 사라졌다. 외환위기 이후 수출로 위기를 극복하자고 제안한 것이 화근이 됐다. 전경련 회장사로서 대우가 앞장서 수출확대에 주력했다.
당시 우리나라와 말레이시아 태국 등 일부 아시아국가만 외환위기를 당했다. 미국 유럽 중국 브라질 등 신흥국 시장은 견실하게 성장했다. 달러환율이 급등해서 가격경쟁력이 강화되고, 수익성도 좋았다. 달러를 벌어들여 외환보유액을 확충할 수 있었다.
98년초 김대중정부에 500억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방안을 제시했다. 김대중정부는 반신반의했다. 산자부는 겨우 20억달러 흑자를 전망했다. 다들 나를 미친 사람취급했다. 97년 수백억달러 적자에서 어떻게 500달러흑자로 반전하겠느냐고 반문했다. 98년 경상수지 흑자규모는 450억달러로 목표치를 거의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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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회장은 수출과 시장개척만이 한국경제의 나아길 길임을 제창하고 솔선수범했다. 경제가 강해야 국가위상이 올라간다고 했다. 대우경영기간 신혼여행 한 하루만 쉬고, 세계경영에 전념했다. /대우그룹 제공 |
외환위기 경상흑자 500불 제안에 김대중정부 "당신 미쳤다"
나의 예상은 적중했다. IMF차관을 조기에 갚고, 향후 외환위기가 다시 도래하는 것을 막기위해선 1000억달러의 외환보유액을 쌓아두자고 했다. 1000억달러 외환보유액은 든든한 방파제였다. 지금의 외환보유액은 3700억달러로 커졌다. 외환보유액 기준 세계 7~8위에 랭크돼 있다. 외환보유대국으로 성장했다.
김대중 경제관료와 금융회사들은 대우의 수출확대 드라이브에 대해 불신했다. 대우를 타깃으로 4대그룹의 채권과 기업어음(CP)발행을 급격히 제한했다. 정상적인 자금수급이 차질을 빚기 시작했다. 일본 노무라증권이 ‘대우에 비상벨리 울리고 있다’는 보고서를 내면서 국내외 금융회사들의 자금회수가 급증했다. 둑이 무너졌다.
대우는 99년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공중분해됐다.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중공업을 매각하고 자동차는 외자유치를 통해 정상화하겠다고 했다. 자동차만은 경영하고 싶었다. 금융당국도 자동차경영권 유지가 가능하다는 암시를 줬다. 정부와 채권단은 모든 경영권을 박탈했다.
자동차는 제조업의 핵심이다. 협력업체 육성과 자동차부품및 공급체인 완성, 글로벌 생산및 유통망은 국가적 자산이었다. 이를 무너뜨린 것은 국가경제에 심각한 재앙이었다. 김대중대통령과 이헌재 금감위원장이 미국 달러 유치 성과에 급급했다.
금융당국과 채권단의 압박만 없었더라면 대우차는 GM과 수십억달러의 외자를 유치할 수 있었
다. GM는 대우차가 쓰러진 다음에야 하이에나처럼 4000억원에 사들였다. 한국GM은 대우차 중소형 생산모델을 이용해 중국 등 글로벌시장에 판매했다. 본사의 경영위기를 돌파하는 일등공신역할을 했다.
대우가 쌓아온 자동차 종합상사 조선 중공업 전자 건설 업종 경쟁력과 노하우 세계네트워크는 한국경제의 엄청난 자산이었다.
해체 당시 대우는 41개 계열사에 76조원의 자산을 보유했다. 재계2위의 글로벌그룹이었다. 김대중정부와 이헌재 금감위원장은 대우해체로 대마불사 신화는 깨졌다고 강변했다. 수십년간 피땀흘려 이룩한 자동차 조선 중공업 등의 경영노하우와 생산능력, 해외거점등을 하루아침에 무력화시켰다.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미국 자동차 빅3는 경영난을 겪었다. 부도직전까지 몰렸다. 미국 부시행정부와 연준은 GM과 포드 크라이슬러에 대해 수백억달러를 수혈해 살렸다. 자동차산업이 고용과 성장 국가경제에 미치는 막강한 영향을 감안한 것이다. 미국은 중앙은행이 나서서까지 자동차산업을 살렸다.
외환위기 당시 김대중정부와 금융당국은 대우차를 과잉부채 해소 등 금융논리로 칼질했다. 이헌재를 금융위기를 극복한 스타로 평가하는 것은 재고돼야 한다. 자동차산업의 경쟁력과 강점을 무너뜨렸다. 제조업을 죽인 잘못된 금융개혁이었다.
대우는 사라졌다. 그룹은 산산조각났다. 대우차 대우중공업 (주)대우 대우전자 등 주력사들은 워크아웃에 돌입한 후 매각됐다. 자동차강국을 향해 질주하던 대우차는 GM에 싼값에 넘어갔다. 대우중공업의 중장비부문은 두산그룹에, 대우조선은 산은 자회사가 됐다. 종합상사 (주)대우는 포스코의 품에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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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중회장은 자동차육성에 전력투구했다. 제조업의 핵심이자 국가경제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고유모델 개발과 전세계 해외기지 구축을 통해 미국 GM등을 무섭게 추격했다. 자동차를 GM에 헐값매각한 김대중정부의 개혁은 실패한 정책이었다. /대우그룹 제공 |
이헌재처방, 자동차 등 제조업 죽인 실패한 개혁
대우의 최대 우량기업 대우조선은 전문경영인들의 사익과 돈빼먹기, 산은의 감독부실등으로 부실기업으로 전락했다. 주인이 없는 회사가 얼마나 쉽게 망가지는 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금융당국은 1차로 수조원을 투입한 데 이어 2차로 4조원이상 쏟아부어야 대우조선이 살아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우중회장이 리더십을 발휘했다면 지금같은 초대형 부실기업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세계경영을 했던 대우계열사 중 조선을 제외하면 워크아웃 졸업후 견실하게 성장하고 있다. 죽쒀서 남은 좋은 일만 시켰다. 계열사들은 뿔뿔히 흩어졌다. 세계경영의 전초기지였던 대우폴란드FSO 등도 속절없이 풍비박산이 났다. 외교적 갈등도 야기했다. 외환위기이후 금호 등 상당수 기업들은 워크아웃에 돌입해도 구사주에게 경영정상화후에 주식을 다시 인수할 기회를 부여했다. 대우와 김우중 회장에게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대우는 사라졌어도 대우정신, 세계경영은 여전히 살아있다. 현재형이다. 더욱 지속돼야 할 미래형이다. 남이 가보지 않은 미지의 영역을 개척한 것이 가장 큰 성과다. 대우의 수출및 시장개척 DNA는 재계에 소중한 가이드라인이 됐다. 중동과 아프리카 중남미 중앙아시아 사회주의 국가까지 진출하게 만들었다. 수출과 해외시장 개척을 해야만 한국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김우중은 잊혀진 영웅이 됐다. 81세의 고령이 됐다. 자신이 일궜던 세계경영을 회고하는 처지가 됐다.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찬란하기만 하다. 아니 극심한 고통이다.
대우는 22일 창업50주년을 맞았다. 반세기역사를 기념하는 뜻깊은 자리에서 사라진 대우를 회고해야 하는 것은 무척 슬픈 일이다.
22일 힐튼호텔 대우창업 50주 기념식 김우중과 대우맨 한자리
외환위기 당시 김대중정부가 좀 더 신중하게 자동차 조선 등 제조업의 중요성을 인식했다면 세계경영이 사라지는 비극을 면했을 것이다.
부채비율 200%라는 정체불명의 글로벌스탠더드로 대우를 분해한 것은 최악의 참사였다. 일시적 유동성위기만 해소해주면 대우는 중환자실에서 걸어나올 수 있었다.
대우는 미국월가와 자동차산업의 이익을 위해 희생양이 됐다는 의혹이 있다. GM은 동유럽 폴란드 헝가리 등에서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고, 폴란드 FSO인수경쟁에서 대우에 패배했다. GM에겐 대우차가 눈엣 가시였다. 클린턴 미국대통령은 방한 시 대우 등 4대재벌을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월가와 자동차업계를 대변한 것이다. 김대중정부는 미국정부의 압박을 엄중하게 여기고 4대재벌개혁을 강행했다.
김우중은 후진양성에 희망을 걸고 있다. 베트남에는 김우중인재사관학교가 운영중이다. GYBM이 그의 남은 희망이다. 글로벌한 젊은 경영인재를 육성하는 학교다. 한국에서 선발해서 미래의 경영인재로 양성하고 있다. 지금까지 500명이 졸업해서 취업했다. 이곳을 졸업한 젊은이들이 제2의 김우중신화를 창조하길 기대하고 있다. 청년사업가들이 자신처럼 ‘꿈중독자’가 되길 바라고 있다.
선진국은 기업과 기업의 인재들이 이끌어간다. 국력은 기업과 관련이 깊다. 선진국은 기업의 꽃이 활짝 펴서 굉장히 활기를 띤다. 기업이 나라를 이끈다. 기업경쟁력의 99%는 경영자에게 달렸다.
기업인 구속 안타까워, 기업인 존중해야 경제희망
요즘 최순실사건 수사과정에서 재계총수와 기업인들이 수난을 당하는 것을 보면 한국경제에 희망이 있는지 답답하다. 기업인을 존중하지 않는 나라는 경제에 희망이 없다. 기업가정신을 왕성하게 발휘하게 해줘야 한다.
국부창출과 선진부국 진입을 위해선 기업과 기업인들의 기를 살려줘야 한다. 과도한 재벌개혁은 기업가정신을 무력화시킨다. 아들이 대기업에 취직하길 바라면서 정작 기업총수를 구속하고, 소환조사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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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회장은 틈만 나면 생산현장으로 달려갔다. 품질과 청결을 항상 강조했다. 근로자들이 제발 오지말라고 하소연할 정도였다. 현장경영과 품질경영, 청결운동이 세계경영 신화를 만들었다. /대우그룹 제공 |
김회장은 22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창업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다. 대우맨 500명들과 조촐한 기념식을 갖는다. 김회장 참모들이 <김우중어록-나의 시대 나의 삶 나의 생각>이란 책도 펴내 그엑 헌정했다.
한때 28만명에 달했던 대우맨들의 도전 희생과 헌신 창조를 담은 다큐멘터리 <내 아버지의 연대기>도 선보였다. 대우인 100명이 출연해 국내외 산업현장과 해외시장을 누볐뎐 이야기와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주말도 없이 일했던 것, 먹고 살기위해 절박하게 자동차조립과 선박조립을 했던 근로자들의 회고담이 이어진다. 70년대 통금시간 직전까지 일하다가 서둘러 퇴근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일부는 한달에 수차례 사무실 야전침대에서 취침했다. 부산봉재공장에서 일했던 여사원은 낮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엔 고등학교 과정을 밟은 것을 말한다. 남동생 3명의 학비를 댔다. 여사원은 그때가 즐거웠다고 한다. 보람도 느낀다며 눈물을 흘린다.
강병호 전대우사장, 추호석 대우중공업이 아들, 딸과 함께 출연해 대화를 나눈다. 아들은 아빠얼굴을 거의 보지 못했다고 회고한다. 아빠가 밤늦게까지 일하다 퇴근하고, 주말도 근무했다고 했다. 미친 듯이 일했던 강병호 사장은 끝내 말을 못한다. 울먹인다.
통금까지 일하고, 아버지 볼 시간 없었다
김회장은 여전히 족쇄가 채워져 있다. 대우그룹 분해이후 법원으로부터 17조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았다. 그는 수년간 구속되는 등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 법원이 그에게 17조원의 추징금을 부과한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이석연 전 법제처장은 김우중 추징금에 대해 사법부 역사상 최악의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추징금은 분식회계에 대한 처벌이 아니다. 법인이 아닌 대주주 개인에게 천문학적인 추징금을 물린 것은 사법부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린 판결이다. 김회장과 전문경영자들은 검찰 수사과정에서 개인적인 횡령이나 착복을 한 것이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추징금 문제는 런던 금융센터를 통해 계열사간 자금거래가 빈번하게 이뤄진 것에 대해 지나치게 책임을 물었다. 외국환거래는 금융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당시 대우는 국내외 금융회사들의 자금회수로 유동성위기에 몰렸다. 계열사간에 외환거래가 급박하게 이뤄지다보니 금융당국에 일일이 신고하기 버거웠다. 대우가 실제 외환거래를 위반한 금액도 17조원이 아닌 3조~4조원에 불과했다.
김우중 17조 추징금 사법부 최악 수치, 풀어줘야
판사는 징벌적 처벌이란 이유로 실제 외환거래위반 금액의 8배가량을 부과했다. 무책임했다. 당시 반재벌 마녀사냥에 편승한 과도한 판결이었다. 가혹했다. 김회장과 대우전문경영인들에게 평생 족쇄를 채웠다.
한겨레 등 좌파 언론과 정치권이 때만 되면 추징금으로 김회장을 흠집내곤 한다. 베트남 YGBM에 대해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대우재건을 꾀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악의적인 비난이다.
김회장 딸 김선정씨가 운영하는 아트선재센터는 창업 50주를 맞아 대우창업을 기념하는 특별전시를 열고 있다. 한겨레는 삐딱한 시선으로 보도했다. 추징금도 갚지 않으면서 대우재건을 꾀한다는 황당한 기사였다.
김회장은 이런 세간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대우맨을 다룬 다큐멘터리에도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김우중 다큐멘터리로 오해받을까 해서다.
김회장은 베트남 GYBM에서 대부분 보낸다. 여생을 젊은 창업가와 기업인을 양성하는 데 헌신하고 있다.
김우중회장은 마지막 남은 한국경제의 신화다. 이병철 삼성, 정주영 현대 창업주가 타계한 후 4대그룹 창업주 가운데 마지막 거목이다. 한국경제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데 솔선수범했다. 하나님은 가난에 찌든 한국에 이병철 정주영 김우중같은 뛰어난 인재를 보내주셨다. 그의 신화같은 경영노하우와 기업가정신, 전세계 정상및 최고경영자들과의 막강한 네트워크는 국가적 자산이다.
김회장이 마지막으로 국가경제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할 기회를 줬으면 한다. 대우그룹을 재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의 전세계 네트워크를 사장시키는 것은 안타깝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90년대 가장 밀접하게 비즈니스를 한 것도 김회장이다. 중요시장으로 부상한 신흥국과 개도국 경제외교를 위해서도 기여할 수 있다. 수교를 추진중인 쿠바 지도자들과도 두터운 인맥을 갖고 있다.
김회장에 대한 가혹한 추징금은 풀어주자. 대우 워크아웃이후 18년간 혹독한 시련과 환난을 겪었다. 그에 대해 관용을 베풀어줄 때다. 국민들은 대우와 김우중회장에게 많은 빚을 졌다.
여생 베트남 청년인재사관학교 운영, 제2 김우중 키워
김회장은 98년 외환위기 당시 수출드라이브로 국난을 타개하려다 장렬히 산화했다. 그의 담대한 꿈과 비전 리더십을 이해하지 못한 김대중 정부 경제관료의 무능하고 속좁은 편견이 대우를 쓰러뜨렸다. 단순 금융논리로 대우를 무너뜨렸다. 자동차 중공업 등 핵심제조업의 중요성을 간과했다.
국가경제에 온 몸을 바친 김회장 추징금문제는 정치권과 차기정권이 해결해주길 바란다. 그의 사면복권은 좌파 노무현대통령이 해줬다. 이명박 박근혜 등 보수정권은 그에게 온정을 베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국가경제를 걱정하고 있다. 선진국대열에 당당하게 진입하려면 강한 제조업과 국제수지 흑자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우리는 영원히 김우중을 그리워할 것이다. 그가 전세계를 누비며 한국경제를 키우고자 했던 도전과 희생 창조는 우리가 계승해야 한다. 우리는 김우중을 절대로 그냥 보낼 수 없다. 한국경제 역사에서 김우중은 찬연히 빛날 것이다. /이의춘 미디어펜대표
[미디어펜=이의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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