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가 호남경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안희정 지사나 이재명 시장이 과반 저지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문재인 전 대표의 말처럼 대세론이 굳어지는 듯한 모양새다. 현 판세대로라면 문재인 안철수의 대결 구도가 예상된다.
물론 정치는 생물이고 선거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는 점에서 변수는 존재한다. 하지만 야당경선은 호남민심이 좌우해 왔다는 경험칙에서 보면 정치판 지각변동이 없는 한 양자대결 구도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다. 호남 압승을 거둔 문재인 전 대표는 지지율에서도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탄핵정국에서 가장 큰 반사이익을 본 문재인 전 대표다. 촛불 민심의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다. 갈라진 보수의 지리멸렬한 모습도 문 전 대표에게는 정치적 기회인 셈이다. 반문연대라는 명분 없는 떼거리 정치가 수면하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역시 동상이몽일뿐이다. 문재인 전 대표의 기만 살리고 그의 세력을 응집하게 하는 반작용도 있다.
문제는 정치권보다 표를 던지는 민심의 변화다. 문재인 전 대표의 대세론이 굳어질수록 문 전 대표의 안보론, 대청소, 분노의 정치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상대적으로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전 대표의 말 바꾸기와 책임회피도 한몫했다.
한·미 FTA와 제주 해군기지는 문재인 전 대표가 몸담았던 정부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반 박근혜 정부 기치를 높이 든 광장의 민심이 이전 정부의 일까지 덤터기를 씌우는 측면도 있다. 문제는 문재인 전 대표가 한·미 FTA 재협상, 제주 해군기지 반대 입장을 취하는 건 정치인의 신의는 물론 책임성 없는 일이다. 자신을 부정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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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전 대표(사진)나 이재명 시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박근혜 정부의 정책을 모조리 뒤엎자는 분위기다. 안보든 경제든 예외없이 깎아내리고 아예 뭉개버리려 하고 있다. 이는 안보·외교을 담보로한 위험한 도박이다. /사진=연합뉴스 |
대통령에 당선되면 미국보다 '북한 먼저 가겠다'는 발언이나 사드 전면 재검토,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즉각 재개처럼 현실을 도외시한 주장도 불안감을 부추긴다. 한미동맹은 안보적인 측면에서 절대 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의 선택이란데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세상 어디에 절대 선이란 존재할 수가 없다. 더욱이 정치의 세계에서는 자칫 잘못된 독선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
역사를 거슬러 정의나 민주주의를 부르짖었던 프랑스 혁명이나 러시아의 혁명의 끝은 결국 스스로의 권력에 도취돼 퇴보하는 결과를 낳았다. 굳이 촛불 혁명이니 시민 혁명이니 하지 않아도 오만과 독선이 부르는 결과는 현재진행형이다. 완장을 참과 동시에 과거를 뒤엎자는 혁명군처럼 행세하다가는 낭패를 본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 그 길목에 서 있다.
문재인 전 대표나 안철수 전 대표, 안희정 지사, 이재명 시장 등 지금 대선주자라면 모두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특히 대세론에 힘입은 문재인 전 대표는 트럼프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지금도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자인 오바마가 추진했던 사안이라면 모조리 갈아엎으려 한다. 언론에서 'ABO(Anything but Obama·오바마만 아니면 된다)'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다. 트럼프 케어는 좌초 위기에 빠졌고 트럼프는 취임 이후 최저 지지율을 경신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박근혜 정부의 정책을 모조리 뒤엎자는 분위기다. 안보든 경제든 예외없이 깎아내리고 아예 뭉개버리려 하고 있다. 민감한 안보나 첨예한 외교도 '박근혜만 아니면 된다'란 식의 주홍글씨를 붙여 아예 쓰레기통으로 내던지려 하고 있다. 적폐청산, 대청소란 무시무시한 말들이 오간다.
안보와 직결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와 민감한 외교 사안인 한·일 위안부 합의도 도마위에 올랐다. '적폐'란 주홍글씨를 씌워 '박근혜만 아니면 된다'라며 세상의 판을 뒤엎는 '청산 정치'를 외치고 있다. 거기에 분노까지 얹었으니 그야말로 정권이 바뀌면 '정권 교체'가 아닌 '나라의 교체'를 가늠케 하고 있다.
안희정 지사는 "문 전 대표는 '나는 선이고 상대는 악'이라는 이분법에 빠져 있다"고 했다. 문재인 전 대표의 분노에 찬 '청산정치'는 또 다른 편가르기와 갈등을 부르고 혼란을 키울 우려가 높다. 문재인 전 대표는 지난 총선 때 "호남 지지를 못 받으면 정계 은퇴하겠다"고 했다가 대패했는데도 제대로 해명조차 없이 말을 바꿨다. '적폐'와 '청산'의 대상과 기준이 모호해진다.
북한의 핵 실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사드 배치를 놓고 중국의 몽니가 계속되고 있다. 미국의 경제적 압박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이웃 일본과의 외교는 개점휴업상태다. 안보(사드, 한·미 훈련, 주한 미군 철수)와 외교(대미·대일·대중국), 북한과의 관계 설정이 중대하고 심각한 상황이다. 이럴수록 이전 정권이 외국과 맺은 관계와 약속은 지키는 게 원칙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오락가락하는 안보·외교 정책은 신뢰 상실은 물론 스스로 덫에 걸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차기 대통령은 누가 되느냐보다 어떻게 해 나갈 것인가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갈등을 부추기는 게 아니라 해소하고, 분열이 아니라 통합을, 분노가 아니라 화해를 이끌어낼 지도자가 절실한 때다. 야당의 갈라먹기 독무대가 된 국회에서 독주는 불가능하다. 독선이 아니라 협치를 생각하고 이념보다 국익을 우선하는 지도자가 필요한 때다.
[미디어펜=문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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