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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정욱 대한민국문화예술인 공동대표 |
전쟁의 또 다른 이름, 동맹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은 우리에게 레슬링의 양정모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대회로 친숙하다. 그러나 세계인들에게는 대단히 낯선 풍경을 연출한 올림픽이었다. 개막식 개회 선언을 하러 나온 사람이 캐나다 총리가 아니라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었던 것이다. 영연방이라는 단어를 교과서에서 배운 적은 있지만 연방이 그 정도인 것까지는 몰랐다. 캐나다뿐이 아니다.
현재 53개 영연방 국가 중 무려 16개국의 국가원수가 영국여왕이다(엄밀하게는 여왕을 공유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지만). 이 16개 국가들은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같이 큰 나라와 자메이카, 바베이도스, 바하마, 그레나다, 파푸아, 뉴기니, 솔로몬 군도, 투발루, 세인트 루시아, 세인트 빈센트 앤드 그레나딘, 안티과앤드바부다, 벨리제, 세인트키츠앤드네비스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16개국은 영연방과는 다른 개념으로 ‘영연방 왕국(Commonwealth Realms)’이라고 부른다.
영연방 국가들은 대부분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나라들이다. 예외도 있다. 나미비아, 르완다, 모잠비크는 영국의 식민지가 아니라 포르투갈, 벨기에, 독일의 식민 지배를 거친 나라들이다. 모잠비크는 주변에 죄 영연방국가들이라 그냥 가입했다. 르완다는 프랑스의 이중성이 질린 폴 카가메 대통령이 토니 블레어 전 총리의 설득으로 가입했다(2009년). 영연방 국가들의 총 인구는 무려 21억 명으로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에 육박한다. 정치적인 유대는 그렇게 강하지 않고 다소 친목단체에 가깝다. 어쨌거나 이들은 영국의 동맹이다.
영국에 영연방이 있다면 프랑스에는 프랑스 연방(혹은 불어권 국제기구)이 있다. 영국이라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싫어하는 프랑스는 자존심 차원에서 1974년 불어를 사용하는 국가들을 대상으로 이 연방을 창립했다(영연방은 1926년). 프랑스 연방은 모두 56개국이다. 나라 숫자에서는 앞섰지만 인구에서는 밀린다. 인도 때문이다. 해서 프랑스는 인도가 아주 잠깐 자신들의 식민지였다는 사실을 들어 인도에게 가입을 촉구하는 중이다. 캐나다는 두 연방에 다 가입되어 있다. 정치적인 유대는 영연방보다 강하다. 영연방이 모여서 럭비 같은 스포츠를 하는 것과 달리 2년마다 정상회담을 개최한다.
연방 혹은 동맹은 이렇게 자존심 싸움 때문에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연방이나 동맹은 결국 전쟁이 그 기원이거나 목적이다.
그리스 동맹은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페르시아에 대한 위기의식에서 만들어졌다. 페르시아와 그리스 폴리스들 간의 전쟁이 격화되면서 동맹의 형식은 견고해지고 구체화된다. 육지(마라톤)와 해상(살라미스)에서 거둔 대승으로 아테나이는 페르시아 콤플렉스를 극복하게 되고 극복이 지나쳐 자만 끝에 델로스 동맹을 만든다. 이 동맹에 불안을 느낀 라케다이몬의 동맹이 한판 붙은 게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다. 라케다이몬이 이겼기에 이름이 그렇게 붙었다. 아테나이가 승리했다면 전쟁의 사후 이름은 델로스 전쟁이 되었을 것이다. 이 동맹과 전쟁은 많이 알고 많이 다룬 것이라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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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동맹은 한국의 민주화를 도왔다. 미국은 남한의 정치적 안정이 동북아권 안정에 필수라고 인식했기에 남한 민주화에 관심을 가졌으며, 장기적으로 정치적 민주화를 후원했다./사진=연합뉴스 |
오랜 전쟁으로 쇠약해진 아테나이와 라케다이몬을 대신한 게 테베다. 잠시 그리스 반도의 패권을 장악했지만 라케다이몬 같은 전투력이나 아네나이 같은 문화가 없는 테베는 곧이어 패권을 그리스 북쪽의 마케도니아에 넘겨주게 된다. 이때 그리스 반도를 장악한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가 만든 것이 코린토스 동맹이다.
필리포스 2세가 죽은 뒤 왕위에 오른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 원정을 준비한다. 페르시아가 그리스 반도를 침공할 때마다 통과 길이었던 마케도니아가 쑥대밭이 되었던 것을 복수하고 싶었던 것이다. 기원전 334년 알렉산드로스는 보병 3만 명, 기마병 5천 명, 함대 160척으로 구성된 코린토스 동맹군을 이끌고 페르시아 원정을 떠난다. 대단히 적은 인원이다. 그가 상대하려는 페르시아는 손쉽게 50만에서 100만 명을 동원할 수 있는 고대의 최강국이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는 세 번의 큰 전투로 페르시아 제국(아케메네스 왕조)을 무너뜨리고 페르시아의 새로운 지배자가 된다. 알렉산드로스는 어떻게 그 무모한 전쟁 계획을 세웠던 것일까. 그는 페르시아 제국 역시 동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동맹을 깨기만 하면 얼마든지 승산이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알렉산드로스의 이런 분석과 판단은 100년이 조금 지나 또 하나의 전쟁 천재에 의해 재연된다. 카르타고의 한니발이다. 그는 알프스를 넘어 로마로 쳐들어갔다. 그 역시 알렉산드로스와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로마라는 시스템을 깨기만 하면 승산이 있다고 믿었다. 그가 이해한 로마의 시스템은 로마 연합이었다.
로마 연합의 뿌리는 라틴 동맹이다. 로마 연합처럼 라틴 동맹 역시 그 중심에 로마가 있다. 그러나 연대는 느슨하고 로마의 통제는 완벽하지 않았다. 동맹국들은 로마와 동맹을 맺었지만 동맹국끼리도 직접 딜deal을 할 수 있었다. 로마의 힘이 강해진 뒤로 다듬어진 로마 연합은 동맹국끼리의 통신과 분쟁을 금지한다.
상업적인 협상도 로마를 통해서 해야 하고 분쟁도 로마를 통해서만 해결해야 한다. 도표로 그려보자면 로마를 가운데 두고 그를 둘러싼 동맹국들이 로마와 선이 이어지고 동맹국들 사이에도 선이 그어진 것이 라틴 동맹이다. 로마 연합에서 선은 로마와 동맹국들 사이에만 그어지고 동맹국들 사이의 선은 없어진다. 한니발이 놓친 것이 바로 이 업그레이드 된 ‘연합’이었다.
그가 알고 있던 페르시아 동맹은 라틴 동맹처럼 사실상 약간의 식민지 지배국가 식민지 국가 간의 아슬아슬한 연합이었다. 그래서 맹주국인 페르시아가 무릎을 꿇자 주변 국가들이 연달아 항복하고 페르시아라는 제국 자체가 무너진 것이다. 한니발은 로마와의 큰 전투 몇 번이면 주변의 동맹국들이 돌아설 줄 알았다. 그래서 칸나이라는 어마어마한 대승을 거두고도 로마로 직접 쳐들어가지 않았다(실은 50%는 못 간 것이긴 하지만).
한니발은 이탈리아 반도의 등 쪽으로 돌며 반응을 기다렸는데 신호가 오질 않았다. 신호는커녕 한니발의 공격에도 도시들은 쉽사리 성문을 열지 않았다. 물론 돌아선 도시도 있었다. 이탈리아 중남부의 카푸아가 로마에 등을 돌린 것은 로마의 위상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투표권 없는 시민권을 가진 카푸아는 에트루리라 인들이 건설한 도시로 로마에게는 전략상 중요한 요충지였다.
카푸아가 손을 들자 카푸아 주변의 몇몇 도시가 그 뒤를 따른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로마 연합은 그의 예상보다 훨씬 단단했던 것이다. 한니발이 이탈리아 반도를 떠나자 로마의 카푸아 공략이 시작된다. 얼마 가지 않아 카푸아는 함락되었고 로마의 보복이 이어진다. 카푸아는 국내 자치권을 상실하고 동맹국에서 속주로 전락하였으며 카푸아의 지도층 인사 70명은 사형에 처해졌다. 동맹이란 그렇게 엄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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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9월3일 중국 정부의 '항일(抗日)전쟁·반(反) 파시스트 전쟁승리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사진=연합뉴스 |
우리가 이 사진을 보고 기겁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동맹국이 (잠정적으로) 적대적으로 대하는 나라의 열병식(쉽게 말해 군사력 자랑 행사)에 대통령이 참석한 것은 동맹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참고로 북한은 중국의 동맹국이다.
* 북중우호조약 (1961년 7월 체결된 ‘조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 조약’ 제2조)
- 어느 일방이 타국으로부터 침략을 받아 전쟁에 들어갔을 경우, 양방은 의무적으로 모든 노력을 다해 군사적 지원 등을 제공 한다.
대한민국은 거대한 온실이다. 밖으로는 찬바람이 몰아치는데 그 안은 사시사철 봄이다. 그래서 위기와 위험을 피부로 체감하지 못한다. 동맹은 단순한 군사 파트너가 아니다. 동맹은 맺고 있는 나라끼리의 외교적인 지침이다. 그것은 기준이자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 짓는 경계선이다. 무엇보다 동맹은 그 동맹에 흠을 내는 정치적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의 전승절 행사 참석은 그래서 위태롭다. 외교언어는 정밀하고 복선적이며 일상 언어 체계와 전혀 다른 메시지를 전달한다. 미국은 “우리는 한미동맹이 굳건하다고 믿는다.” “대통령의 판단과 의사를 존중한다.”고 말했다. 동맹이 흔들리고 있다는 말로 해석해야 한다. 존중하는 게 아니라 의심과 우려 섞인 눈초리로 보고 있다는 말이다. 무서운 경고다. 한미동맹으로 우리가 얻었고 또 얻을 수 있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한반도 및 그 주변의 장기적 평화가 유지되었다.
한미동맹에 따른 미국의 확고한 대한(對韓) 방위보장에 힘입어 한국은 1970년대 전반기까지 GNP의 4%라는 비교적 적은 국방비만 쓰면서 경제개발 우선정책으로써 경이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한미동맹은 국군의 비약적인 팽창을 이루었다. 대한제국이 일본에 병탄되었을 때 보유병력이 8000명 정도였던 데 비해 한미동맹조약에 따라 한국은 20개 사단을 현대화했고, 70만 대군을 갖게 되었다.
한미동맹은 한국의 민주화를 도왔다. 미국은 남한의 정치적 안정이 동북아권의 안정에 필수적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에 남한의 민주화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으며, 실제로 장기적으로는 정치적 민주화를 후원했다.
한미동맹으로 미국의 지원을 받게 된 한국은 외교망을 확대했다.
한미동맹으로 과거 동양에서 가장 폐쇄적이었던 은둔국 한국은 ‘팍스 아메리카나’를 구가하는 미국과 맹방이 됨으로써 서구 문명에 완전히 개장되었다. 원래 대륙 국가였던 한국은 이 과정에서 해양 지향의 태평양국가로 탈바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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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동맹으로 인해 지난 64년간 한반도 및 그 주변의 장기적 평화가 유지되었다./사진=연합뉴스 |
네이버 지도에서 스크롤바를 내리면 지도는 한 없이 작아진다. 대한민국도 그렇다.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긴 역사적 안목으로 볼 때 참 아무것도 아닐 수 있고 갑자기 사라진다 해도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여러 번 반복한 이야기지만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우리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 좋은 날은 계속 이어지지 않았다. /남정욱 대한민국문화예술인 공동대표
(이 글은 28일 자유경제원이 주최한 ‘세계 전쟁사로 본 한미동맹-세계사를 알면 한국의 갈 길이 보인다’ 7차 연속세미나에서 남정욱 대한민국문화예술인 공동대표가 발표한 발제문 전문입니다.)
[남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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