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민보다 외국인 여행자 먼저 챙겨…경찰에 감사와 신뢰 보내는 시민
   
▲ 이석원 언론인
2017년 4월 7일 금요일 오후 3시. 나는 스톡홀름 중심가 노르말름 광장에 있는 113년 된 카페 '비엔넬 카펫(Wiener cafeet)'에 아내와 함께 있었다. 프랑스풍의 빵과 케이크로 유명한 집이다. 주말에는 낮에도 예약을 하지 않으면 쉽게 자리를 잡을 수 없는 곳이다.

이 카페의 카푸치노와 캬라멜 라테는, 스톡홀름에 살고 있다면 한 번쯤 꼭 맛을 봐야 한다고 애기할 정도로 유명하다. 18세기 아르누보 스타일의 고풍스러운 내부는 커피 맛을 배가 시켜주고, 친절한 종업원들의 태도는 커피 맛을 한결 행복하게 해준다. 이 카페가 1904년부터 이 자리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는 것은 20세기 초나 21세기 초를 상관하지 않고 멋진 일이다.

60세는 됐음직한 중후한 종업원이 커피를 가져다 줬을 때 우리 옆자리의 스웨덴 아주머니가 뭐라고 말을 건다. 스톡홀름 시내에서 큰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버스나 지하철이 다니지 않을 것 같다는 얘기였다. 동양인인데다 DSLR 카메라를 들고 있는 우리가 아마 여행자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고맙다고 의례적인 인사를 하고 났는데, 다른 사람들도 술렁이기 시작한다.

모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자기들끼리 스웨덴어로 뭐라고 얘기한다. 아까 그 아주머니가 다시 스마트폰을 보여주면서 그냥 사고가 아닌 듯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아주머니의 스마트폰에 뉴스 화면에는 'Terror'라는 단어와 'Stockholm'이라는 단어가 보인다.

   
▲ 113년 된 카페 비엔넬 카펫. 테러가 발생하자 이곳은 든든한 대피처로 제공이 됐다.

나는 내 스마트폰에서 스웨덴 공영방송인 SVT 앱을 실행시켰다.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는 별로 없었지만 스웨덴어로 '테러'와 '드로트닝가탄(Drottninggatan)', '트럭'이라는 말이 반복됐고, 화면에는 30분 전에 내가 있었던 곳, 드로트닝가탄에 있는 올렌스 백화점 건물 한 편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장면이 보였다. 그렇다. 불과 30분 전 나는 거기서 그저께 워킹 홀리데이로 스웨덴에 들어온 한국 젊은이를 만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테러가 발생한 것이다.

오랜 직업병은 어쩔 수 없었나. 아내에게 자리를 지키라고 하고는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테러 현장으로 달려갔다. 하늘에는 경찰 헬기가 둔탁한 소음과 함께 선회하고 있었고, 사방에서는 경찰차와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멀찌감치 폴리스 라인이 설치돼 현장 접근은 불가능했고, 경찰들이 사방을 뛰어다니면 상가의 철수와 행인들의 대피를 소리치고 있었다. 행인들은 공포가 서린 표정으로 멀리 현장 쪽을 향해 연신 사진을 찍다가도 경찰의 통제에 따랐다.

하는 수 없이 다시 돌아온 카페. 그런데 사람들이 무지하게 많아졌다. 이미 꽉 차 있던 테이블은 그렇다 쳐도 카페의 복도와 주방 쪽 공간에도 사람들이 즐비했다. 아내의 얘기를 들어보니 카페 측이 거리에 있던 행인들을 카페로 불러들여 대피를 시킨 것이란다.

뉴스에서는 테러범이 도주해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고 있다느니, 도심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로 테러가 벌어진 것이라느니 하는 소문이 돌고 있었고, 그래서 거리는 안전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카페 놀라웠다. 이미 영업이 중단된 것은 말할 나위 없고, 그냥 카페 문을 걸어 잠근 게 아니라 거리의 행인들에게 대피 장소를 제공한 것이다.

조금 후 종업원들은 카페 한 쪽 공간에 커피와 차, 그리고 빵과 케이크를 가져다 놓고는 대피하러 온 사람들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시민들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고자 하는 조치였다. 그리고 종업원들은 쉴 새 없이 손님들 사이를 다니며 특히 외국 여행자들에게 뉴스 속보를 계속 전달해주었다.

   
▲ 추모의 벽. 테러 현장 트럭이 충돌했던 자리에는 수 많은 시민들의 추모의 글이 쓰여진 공간이 됐다.

현지인에 비해 정보가 떨어지는 여행자들에 대한 배려다. 오지랖 넓어 보이는 한 종업원은 나와 아내를 비롯한 외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돌아다니며 "걱정하지 마라. 스웨덴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다"라며 안심을 시키느라 고군분투하기도 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테러가 발생했다는 것도, 하필 내가 현장 지척에 있을 때 발생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보다도 이 카페 주인을 포함한 스톡홀름 시민들에게 더 놀랐다. 그들은 충분히 충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침착했고, 또 이런 상황에서 정보 취득에 열악한, 스웨덴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 여행자들에게 무척 친절했다. 그리고 그들을 더 염려해 주었다.

이건 대단히 현실적이지 못한 경험이었다. 테러를 지척에서 경험한 것도 비현실적인 경험이지만, 테러의 와중에 스톡홀름 시민들이 보여준 행동은 어쩌면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그런 경험이었다.

다음 날, 그리고 그 다음 날 테러 현장을 다시 찾았다. 하루 동안 통제됐던 현장은 이내 시민들에게 개방이 됐고, 그곳에는 추모의 벽과 함께 마치 스톡홀름의 꽃을 모두 가져다 놓은 것 같은 꽃무덤들이 곳곳에 만들어졌다. 이번 스톡홀름 테러로 사망한 사람 중 스웨덴 사람은 2명이다. 그리고 영국인 한 명과 벨기에인 한 명. 그런데 스톡홀름 시민들은 어느 나라의 누가 얼마나 희생됐는지 보다 이런 테러가 일어났다는 것에 슬퍼했다.

그리고 추모 공간 한 편에 팔레스타인 국기와 스웨덴 국기를 함께 들고 서 있는 아랍계 젊은이들을 부둥켜안고 우는 이들도 있었다. 이 또한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경험이다. 무슬림에 의해 저질러진 테러 현장에서 무슬림 청년들이 찾아오고, 또 그들을 안고 우는 스톡홀름 시민들.

추모하던 시민들은 현장을 지키는 경찰에게도 다가가 꽃을 주기도 하고, 포옹을 하면서 함께 울기도 했다. 경찰차가 꽃으로 뒤덮이는 신기한 광경도 보였다. 심지어 테러 후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 스톡홀름 시민들의 "테러를 겪으면서 경찰을 더 신뢰하게 됐다"는 응답이 무려 90%에 달했다. 이건 더더욱 비현실적이다. 경찰을 원망하거나, 검문검색을 강화하는 경찰에게 거부감을 갖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갖는다는 것.

일촉즉발 위기의 순간에 길 위의 행인과 외국인 여행자를 먼저 챙기고, 자국민이 아닌 다른 나라 희생자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테러 현장에 온 이슬람 청년과 그들을 보듬고 도닥여 주더니, 심지어는 경찰을 포옹하고 그들을 더 신뢰한다는 테러 당한 스톡홀름 시민들.

테러 발생 이틀 후인 9일 테러 현장 바로 인근 세리엘 광장에서는 '러브 페스타'라는 행사가 열렸다.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테러리즘을 규탄하기 위해 스톡홀름 시민 5만 명이 모였다. 그 자리에서 스톡홀름 시장인 카린 반가르는 "두려움이 지배해서는 안된다. 테러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 테러는 친절과 포용에 곧 패배할 것이다"고 외쳤다. 시장의 외침 이전에 스톡홀름 시민들은 이미 친절과 포용으로 테러를 이기고 있었다. /이석원 언론인

   
▲ 스톡홀름에서 가장 큰 광장인 세리엘 광장 계단. 평소 젊은이들의 만남의 공간으로 유명한 이곳 계단은 시민들이 직접 곱게 꾸민 꽃무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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