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투표를 하는 국민…현명한 유권자 돼야
   
▲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 객원교수
이번 대선 과정을 지켜보면서 머리 속에 떠오르는 인물 중 한 사람이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사람이자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정부의 초대 재무부장관이었던 '알렉산더 해밀턴'(1755/1757~1804)이다.
 
미국 역사를 통틀어 '알렉산더 해밀턴'만큼 극적인 인생을 살았던 인물은 드물다. 그의 드라마틱한 일생을 다룬 뮤지컬 '해밀턴'이 '2016 그래미상(Grammy Award)'과 '2016 퓰리처상(Pulitzer Prize)' 수상에 이어 '토니상(Tony Awards)' 뮤지컬부문 최우수작품상과 남우주연상 등을 받으며 현재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대히트를 기록하고 있다.
 
'알렉산더 해밀턴'은 요즘 말로 흙수저 출신으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중 가장 낮은 계층 출신이었지만 탁월한 지혜와 담대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미국 정계 연방주의자(Federalist)의 영수(領袖)가 되었으며 명성 높은 언론인이자 변호사였다. 그러던 그는 어느 날 그의 정적인 '애런 버(Aaron Burr)' 부통령과의 권총결투에서 총상을 입고 50세도 안 되는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미국 초대 재무장관으로 취임하여 독립전쟁으로 빚더미였던 미국의 재정을 회생시키는데 크게 기여한 공로로 그는 대통령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화 10달러 지폐의 인물이 됐다. '해밀턴'의 명성 뒤에는 그의 정치철학과 신념이 녹아 있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변덕과 충동적인 분위기에 좌우될 수 있다"고 믿은 그는 "지속적인 자유를 보장하는 정부에서도 시민의 권리침해를 방지하려는 노력 못지않게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엄격하게 법을 제정하고 집행할 수 있도록 적절한 권한이 부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방주의자로서 1789년 미국 재무부장관으로 취임한 그는 강력한 중앙정부를 지향하는 자신의 신념과 연방헌법 비준을 관철시키기 위해 헌법을 옹호하는 논문 『Federalist(연방주의자)』를 신문에 연재했다. 1788년 3월 『Federalist No.70』호 기고에서 그는 정부가 현명하고 시의 적절한 결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강력한 통치력이 필요함을 아래와 같이 역설했다.
 
   
▲ 대선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투표를 하는 국민의 책임이다. 우리 유권자들이 개인적인 호불호나 이해관계를 떠나 오로지 나라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인물을 지도자로 뽑아야 한다. /사진=각 후보 캠프 제공

"좋은 정부를 정의(定義)함에 있어서 지도자의 통치력이 최우선 요건이다. 그 통치력은 외세의 공격으로부터 나라를 보전하는 필수요소이며, 또한 안정적인 법 집행의 선결조건이자 정상적인 법치를 훼방하는 권력자들로부터 재산권을 보호하며, 야심, 파벌, 무질서에 의한 모험이나 협박으로부터 자유를 보장하는 선결조건이기도 하다… 나약한 통치자는 정부를 무능하게 이끌어 간다. 무능한 통치는 잘못된 통치와 다름없다. 그리고 이론적으로 뭐라고 표현하던 잘못 통치되는 정부는 실제로는 나쁜 정부일 뿐이다." (Alexander Hamilton, Federalist No. 70, New York Packet, March 18, 1788)
 
이와 같은 '해밀턴'의 신념이나 주장에 비추어 우리나라의 대통령 탄핵 사태와 '사드(THAAD)' 배치 문제 등 우리 사회의 갈등과 정부의 의사결정 과정을 돌아보면 과연 우리 정부에 '통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우리 헌법도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제37조 2항).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성향이 오만과 편견을 낳는다.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급히 치르게 된 대선이 불과 열흘 남짓 코 앞에 다가왔다. 후보단일화를 외치는 우파진영에서 단일화 조짐이 보이지 않는 것도 이런 성향의 탓인지도 모른다.
 
요즘 언론에 떠도는 여론조사결과를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우파 일각에서는 "'최선'은 물 건너갔으니 '차악(次惡)'을 택하자"는 논리가 떠돌았다. 일부 유명 언론인들도 나서서 통계학 이론, 커뮤니케이션 이론, 심리학 이론 등을 들이대며 현실적인 '차악 논리'를 대안으로 주장했다. 그러나 대선후보 방송토론이 진행되면서 각 후보지지율의 변화 조짐이 보이며 그 주장도 힘을 잃은 듯하다.
 
필자는 이번 대선을 통해 '알렉산더 해밀턴'과 같은 인물을 찾아내 지도자로 뽑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운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대선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투표를 하는 국민의 책임이다. 우리 유권자들이 개인적인 호불호나 이해관계를 떠나 오로지 나라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인물을 지도자로 뽑기를 고대한다. 무관심 또는 무책임으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할 것이 아니라 투표를 통해 자신의 기대와 바램을 실현시키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영국의 정치철학자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는 "악이 번성하기 위해 단지 필요한 것은 선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The only thing necessary for the triumph of evil is for good men to do nothing.)"라고 했다. 악은 선한자들의 무관심, 무책임, 비겁함을 먹고 자라난다. 비겁한 침묵이나 방관으로는 자신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이 세상에 노력 없이 얻어지는 것은 없다.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 객원교수
[미디어펜=편집국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