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전삼현 숭실대 교수 |
지난 3월 19일 법무부가 현행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을 '금융투자상품 및 공정거래 집단소송법'으로 변경하는 법안을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현재 집단소송이 가능한 증권 관련된 허위공시, 시세조종, 내부자거래, 금융투자상품 부정거래, 부실감사라는 대상행위를 기업어음(CP)이나 파생상품을 비롯한 각종 금융상품의 불건전 영업행위와 공공부문 입찰 비리를 비롯한 기업 간 담합행위까지 확대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집단소송제기 요건 중 50인 이상으로 되어 있는 소송인단(구성원) 요건도 20~30명 수준으로 완화하고 소송인단의 증권발행 보유 비율(0.01% 이상 보유)도 완화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처럼 법무부가 집단소송의 대상을 증권분야에서 공정거래분야까지 확대하고자 하는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즉, 집단소송법은 존재하지만 정작 집단소송이 활성화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집단소송이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그 이유는 크게 2가지로 압축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집단소송대상 범위가 너무 협소하고 소송제기 요건이 너무 엄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기업들이 소송을 당하지 않도록 예방을 철저히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법무부는 그 이유를 전자에서 찾은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사실 전자에서 언급된 이유는 법의 본질을 잘못 이해한 때문일 수 있다. 즉, 법의 제재적 기능만 생각하고 법의 예방적 기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은 입법 정책적 판단 때문일 수 있다.
법의 기능은 역사적으로 많은 변화를 거쳐 왔다. 특히, 제재적 기능은 역사적으로 볼 때 주로 국가중심사회에서 강조되어 왔었고, 현대적 시민중심 사회에서는 예방적 기능에 더 큰 비중을 두어 왔다. 특히, 21세기는 국민 또는 시민중심의 사회질서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시점에서 법무부가 법의 예방적 기능보다 제재적 기능에 비중을 두어 입법을 추진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인다. 법무부가 오히려 법의 예방적 기능에 더 비중을 두어 법제도를 정비하고, 법집행 역시 예방적 기능에 더 비중을 둔다면 국민들로부터 진정한 민주주의 수호자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번 집단소송법 제정안을 보면서 과연 법무부가 진정한 민주주의 수호자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의문이 든다. 이번 법무부가 개정안으로 마련한 금융상품의 불건전 영업행위와 공공부문 입찰관련 담합행위는 사실상 집단소송이 아니어도 이미 다수 당사자소송을 통하여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이미 널리 실행되고 있다. 이는 인터넷상에서 집단소송을 홍보하는 변호사들의 광고를 보면 잘 알 수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
|
|
▲ 법무부가 집단소송 범위를 현재의 증권관련 허위공시, 분식회계, 시세조종 등에서 불건전 금융상품 판매, 공공입찰 비리나 기업들의 담합행위 등으로 대폭 확대하는 법안제정을 추진하고 있어 거센 논란이 일고 있다. 미국은 이미 조지 부시대통령 시절에 집단소송 남발이 미국 제조업을 사라지게 하는 원흉이 됐다면서 집단소송을 제한하는 정책으로 전환한 바 있다. 시민중심사회에선 법의 제재적 기능보다는 예방적 기능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법무부의 집단소송제 대상 확대는 신중해야 한다. 동양증권의 부실어음과 회사채 판매로 재산상의 피해를 입은 동양사태 피해자들을 대신하여 어느 변호사가 집단소송서류를 제출하고 있다. |
문제는 이처럼 우리나라는 정부가 나서서 집단소송제를 확산시키고자 노력하는 반면, 미국정부는 오히려 2005년에 집단소송을 억제하는 법률을 제정하는 등 우리나라와는 정반대의 입법정책을 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2005년 미국 정부가 집단소송제한법을 제정할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은 "쓰레기같은 소송으로부터 정직한 중소기업인들을 보호하고 경제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명분을 제시한 바 있다. 또한 그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은 미국에서 제조업이 사라지게 한 원흉을 집단소송제도라고 지목한 바도 있다. 이는 2005년 당시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은 법의 제재적 기능보다는 예방적 기능에 더 큰 비중을 두어 집단소송관련 입법정책을 추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2005년 증권집단소송법을 제정함으로써 비록 집단소송이 제기되지는 않았지만, 과거 존재하였던 분식회계라는 악습을 단숨에 개혁하는 놀라운 입법적 성과를 거둔 바 있다. 즉, 예방적 기능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증권집단소송법이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무부가 집단소송이 활성화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집단소송의 범위를 확대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는 입법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법무부가 소액 다수 피해자의 구제, 기업의 경영투명성과 공정경쟁을 촉진하기 위하여 집단소송의 적용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뜻은 잘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소송남발과 기업도산, 소비자에게 비용전가 등과 같은 부작용을 해소하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소송확대만을 위한 법개정을 서두는 것은 분명 그 숨은 뜻에 대한 국민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소지가 다분히 있는 것이다. 더욱이 기업의 경영투명성과 공정경쟁 촉진이 집단소송제도의 활성화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지 것인지에 대하여도 법무부는 명확한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법무부는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심도있는 고민을 한 후 대안을 마련하고, 그 차원에서 새로운 법개정안을 제시하는 것이 더 시급한 실정이라고 본다. /전삼현 숭실대 법대 교수, 기업소송연구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