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조한진 기자]"무리한 재벌개혁은 기업은 물론 경제 위기까지 몰고 올 수 있어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A그룹 고위 관계자)
문재인 대통령이 ‘재벌개혁’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재계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특히 ‘재벌 저격수’로 이름을 날린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후보자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을 투톱 체제로 만들면서 재계는 더욱 긴장의 고삐를 조이고 있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주요 대기업들은 김 후보자와 장 실장이 주도할 것으로 예상되는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은 물론 경제 관련 법률 개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우선 재계는 새 정부가 어떤 식으로든 대기업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문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재벌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제시한데다 김 후보자와 장 실장 역시 이 같은 대통령 방침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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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후보자 /사진=연합뉴스 |
'재벌 저격수' 김-장, 어디부터 손댈까
재계는 김 후보자와 장 실장이 재벌 규제수단으로 우선 소수주주권 강화 정책을 밀어 붙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소수주주권 강화는 과거 시민운동 시절부터 김 후보자와 장 실장의 의견이 일치되는 부분이라는 이유에서다.
소수주주권은 다수결의 원칙이 통용되는 주식회사에서 회사 또는 주주의 이익보호를 위해 소수주주에게 인정한 특별한 권리를 의미한다. 대주주의 독단적 전횡을 막고, 회사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소수주주권 강화의 효용성에서는 물음표가 달리고 있다. 원론적 기능과 취지가 왜곡될 수 있다는 이유다. 일반 투자자 보다는 외국계 펀드나 기관들이 이 제도를 이용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소수주주권 강화는 결국 투기펀드와 기관의 배만 불릴 가능성이 크다. 기업들의 경쟁력 제고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외국계 투기 펀드는 국익이나 기업의 장기 성장동력에는 관심이 없다. 주가 이익 등 단기 시세차익만 노리고 떠날 확률이 크다”고 말했다.
여기에 국민연금의 주주권 강화도 전망되고 있다. 핵심 기업들의 대주주인 국민연금을 재벌 통제 장치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동안 거론된 순환출자, 지주회사 관련 규제는 속도 조절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책 입안을 주도한 경험이 없는 김 후보자와 장 실장이 실무를 파악 한 뒤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할 것으로 전망되면서다.
두 경제학자 역시 최근 인터뷰에서도 과거보다는 다소 완화된 발언을 하고 있다. 장 실장은 "'두들겨 패는' 재벌개혁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도 최근 기자 간담회에서 "재벌개혁이 재벌을 망가뜨리거나 해체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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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사진=연합뉴스 |
강제보다는 자율 "더 지켜보고 심사숙고 했으면”
새 정부의 경제정책에서 재계가 우려하는 부분은 ‘몰아붙이기식, 옥죄기식 개혁’이다. 경영의 투명성 확보와 지배구조 개선 등은 기업들 역시 공감을 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충분한 준비기간 없이 무조건 규제를 강화하고, 관련 법률과 시행령을 뜯어 고칠 경우 기업 입장에서는 출구 전략을 찾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특히 기업들은 김 후보자와 장 실장이 경제민주화에 관심이 큰 가운데 상법 개정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보여주기식으로 법을 바꿀 경우 되돌리기 어려운 후폭풍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자칫 우리 경제를 끌고 가는 핵심 기업들이 투기자본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합리적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경제민주화와 재별개혁 정책을 밀어 붙일 경우 기업의 자율 경영을 저해하는 것은 물론, 투자와 고용까지 위축 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재계에서는 정부주도의 규제강화보다는 기업의 자정노력을 뒷받침 할 수 있는 정책이 더 효과적이라는 의견이 확산되고 있다.
한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우리 경제를 살리고, 고용을 확대하자는 목표는 새정부와 기업 모두 다르지 않다. 다만 방법론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며 “규제 강화를 통한 재벌 규제가 과연 투자와 고용을 촉진할 수 있는지 여부를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재계 일부에서는 현행 기업 관련 규제는 선진국 수준인 만큼 제도를 강화한다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규제 강화 보다는 현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감시 장치 마련이 더 시급하다는 것이다. 경제 선진국에서 실시하는 스튜어드십코드와 같은 제도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면 규제 강화 없이 시장의 감시 시스템을 강화할 수 있다고 재계는 조언하고 있다.
아울러 재계에서는 새정부에 규제의 벽을 높이고 관련 법률을 고치기 전에 충분한 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기업 스스로 지배구조 개선과 통제 장치 강화 등의 노력을 기울이는 상황에서 이 같은 상황을 면밀히 지켜본 뒤 시간을 두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최순실 사태를 겪으면서 기업들이 많은 자각을 하고 있다. 예전 같이하면 ‘큰일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라며 “기업들은 최든 자정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법으로 강제하지 않아도 지금의 경제·정치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펜=조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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