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 잇단 진술 번복…특검 수세
공소 내용 증명 명확한 증거 부재
[미디어펜=홍샛별 기자]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 등으로 구속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이 오는 7일이면 두달을 맞는다. 

   
▲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 기소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원 구치감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세기의 재판'이라고 불리며 지난 4월 7일 첫 발을 뗀 이 부회장의 재판은 같은 달 19일부터는 매주 3차례(수·목·금요일)씩 열리는 등 강행군을 이어 왔다. 

재판은 진행될수록 "증거가 차고 넘친다"던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증인들의 진술 번복, 증거 조작 등의 민낯을 드러내며 사실상 동력을 잃었다. 특검의 강압 수사, 진술 강요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 역시 높아지는 상황이다.

증인의 잇따른 진술 번복…수세 몰린 특검 

지난달 31일 오전 10시 시작해 다음날인 이달 1일 오전 2시 8분에 종료된 제21차 공판. 이날 증인으로 참석한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는 "최순실이 삼성 합병을 얘기한 적 없다"며 특검의 주장과는 전혀 상반대는 진술을 내놓았다.

특검은 마장마술용 명마인 '살시도' 소유권 분쟁 당시 최순실이 "삼성도 내가 합치도록 도와줬는데 은혜도 모르는 놈들"이라고 이야기한 것을 들었다고 박 전 전무가 진술했다고 밝혔다.   

박 전 전무는 "최순실이 당시 화를 내며 혼잣말로 '은혜도 모른다'라고 한 것은 정확히 들었으나 실제로 '합치는 것을 도와줬다'는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내용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박 전 전무의 이 같은 발언은 특검측 진술 조서의 신뢰도에 치명타를 입히기 충분했다. 최순실의 최측근 인사로 꼽히는 박 전 전무는 삼성의 승마 지원 의혹의 실마리를 풀기 위한 핵심 증인으로 주목을 받아 왔다. 

증인의 진술 번복은 이번뿐이 아니다. 

지난달 26일 진행된 제19차 공판에서 김학현 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은 "진술 조서가 잘못돼 이를 바로잡으려 나왔다"며 특검의 조서 내용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다. 

김 전 부위원장은 "1차 조사(2016년 1월 8일) 때 최 비서관과 통화 내용에 관해 기재된 조서 내용은 내가 한 말이 아니다"라면서 "이를 바로잡기 위해 법정에 나왔다"고 했다. 

그는 이어 "담당 검사가 본인이 한 말을 마치 제가 답변한 것처럼 적었다"고 지적했다. 조사 당시 검사가 '최 비서관이 전화하지 않았냐'고 같은 질문을 반복했고, 자신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수차례 이야기 했다는 것. 

김 전 부위원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사가 '이런 스토리 아니겠냐. 그래야 앞 뒤가 맞다'고 이야기했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기억력을 100% 확신할 수도 없고 빨리 자리를 피하고 싶은 마음에 동의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 김학현 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속행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공소 내용 증명할 명확한 증거 부재…특검 '자충수?'

이 부회장에 대한 재판은 지난 2일로 제23차를 맞았다. 그러나 특검은 혐의를 입증할 명확한 물증을 어느 하나 제출하지 못했다.  

특검은 당초 수만 쪽에 달하는 서류 증거를 근거로, 이 부회장의 혐의 입증을 자신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재판 진행 과정을 돌이켜 보면 그 같은 자신감은 그야 말로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특검은 재판장에서 의견을 제시할 때마다 "향후에 제출하겠습니다", "나중에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와 같은 표현으로 증거 제출을 미루는 상황이다. 특검 스스로 이 부회장의 공소 사실을 증명할 만한 명백한 증거가 없다는 걸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증거 부족에 시달리는 특검의 조급함은 증인 신문 때에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특검은 출석한 증인에게 '그럴 것이다'라는 식의 답변을 유도하는 질문을 해 재판부의 지적을 받는 가 하면, 새로운 증거 제시는 하지 못한 채 기존 조서 내용을 재확인 하는 데에만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제9차 공판(4월 28일)까지 진행됐던 서증조사 때 역시 주변적이고 간접적 정황을 설명하는 데 치중, 재판부로부터 "간단히 하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지난 4월 26일 진행된 제7차 공판에서는 재판부가 증거 능력으로 인정하지도 않은 언론보도를 설명하는 데에 긴 시간을 쏟았다. 특검은 이날 삼성의 중간금융지주사 전환 등에 관한 언론 보도를 인용하다 삼성 측 변호인단으로부터 "언론보도가 증거로 채택될 지 아닐지 모르는 상황에서 특검은 언론보도가 진실인 양 말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7차 공판에서는 또 장시호 측이 작성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의 목적사업계획서에 대한 억지 주장으로 빈축을 사기도 했다. 특검은 졸속 검토에 의한 자금 지원을 주장하는 이유로 사업 계획서의 '오자'와 '비문'을 꼽았다.

박주성 검사는 "영재센터 사업계획서를 보면 오타나 비문이 있는데 이것만 봐도 사업계획서가 얼마나 부실한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오자와 비문이 있는 미흡한 사업 계획서를 바탕으로 10억7800만원이라는 거액의 후원금을 집행한 것이 뇌물 공여와 횡령의 증거라는 게 특검의 주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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