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여성가족부 발행 '일본군 위안부 바로 알기' 전국 각급 학교 배포
5월 말 문재인 대통령 지시로 국정교과서가 공식적으로 폐지됐다. 정부는 대통령이 지시한 지 19일 만에 지시를 이행했다. 교육부는 "중·고교 역사교과서 발행체제를 국·검정 혼용에서 검정체제로 전환하는 고시 개정을 완료해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 절차를 마무리했다"고 밝혔고, 이런 내용의 '중·고등학교 교과용 도서 구분 재수정 고시'가 관보에 게재됐다.

이렇게 국정 역사교과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 같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교육부에서 발행하는 공식적인 한국사 교과서는 국정체제가 폐지됐지만, 학교현장에는 그 이후 또 다른 '국정' 역사교과서가 버젓이 배포됐으며, 앞으로도 배포될 예정이다.

바로 '일본군 위안부 바로 알기' 책자다. 여성가족부에서 2015년 12월 31일 자로 발행된 이 책자는 교육부의 협조로 현재 각급 학교별로 전국에 배포된 상태다. 물론 정부에서는 그 사용을 폐지하거나 중단할 계획은 없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책자 형태의 학습자료로 분류되지만, 엄연히 국가가 만들어 전국 학교에 일률적으로 배포하고 수업에 사용토록 하는 '국정' 교과서다.

국정 교과서는 문 대통령이 대선 기간 중 청산해야 할 적폐로 규정하고 교과서 국정화 금지 공약까지 내건 대상이었다. 그는 대통령으로 취임하자마자 제1호 업무지시로 국정교과서 폐지를 지시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상식과 정의 바로 세우기 차원"이며 "국정 역사교과서는 구시대적인 획일적 역사 교육과 국민을 분열시키는 편 가르기 교육의 상징"이라고 했다. 또한 "더 이상 역사 교육이 정치적 논리에 의해 이용되지 않아야 한다는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를 보인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 여성가족부에서 2015년 12월 31일 자로 발행된 '일본군 위안부 바로 알기' 책자는 교육부의 협조로 현재 각급 학교별로 전국에 배포된 상태다.

그렇다면 버젓이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일률적으로 배포되고 사용되는 '일본군 위안부 바로 알기' 교과서는 뭔가? 이것이야말로 전국의 모든 학교에 동일하게 배포된 만큼 국가가 주도하는 '획일적 역사 교육'이다. 당연히 위안부 문제의 세부 상황에 대해 여러 학자의 이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한 가지 관점만 강제한다면 '국민을 분열시키는 편 가르기 교육'이라는 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결국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는 특정한 교과서에는 적용되고, 특정한 교과서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우리는 그동안 이런 모습을 많이 봤다. 똑같은 뇌물도 곽노현 전 교육감의 뇌물은 '착한' 뇌물이 됐다. 똑같은 위장전입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하면 자녀를 위한 '착한 위장전입'이 됐다. 똑같은 음주운전도 안경환·조대엽·송영무 후보자의 음주운전은 인명 피해가 없었다는 이유로 '착한' 음주운전이 됐다. 똑같은 표절도 '김병준' 전 후보자는 '낙마 사유'였지만 '김상곤' 사회부총리는 '관행'이었다. '착한' 표절이다. 똑같은 입학비리 의혹도 최서연씨는 '국정농단'이지만, 안경환 전 후보자는 '부정'이었다.

마찬가지다. 똑같은 국정 역사교과서도 자유민주적 관점에서 쓰였지만 '적폐'고 '금지 대상'이며 '구시대적인 획일적 역사 교육'이요, 절대 악이지만, 소위 '민족사관'으로 불리는 관점에서 기술되면 '역사바로잡기'요 '평화'와 '정의'다.

정부의 태도만 그런 것은 아니다. 국정체제가 무슨 절대 악인 것처럼 극성을 떨던 학부모단체를 가장한 정치단체들은 잘 모른다 치더라도 시국선언까지 하던 교사들은 학교에서 다들 책을 받아들고 봤을 텐데도 꿀 먹은 벙어리들이다. 학교마다 찾아다니던 그 열정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당연한 얘기다. 좀 더 정직하게 말하자. 여성가족부의 책자 필자는 다수가 전교조의 전국역사교사모임 교사와 그동안의 천편일률적 검정 역사교과서 저자들이다. 그러니까 '우리 편'이 만든 국정 역사교과서는 '정의'이고, '너희 편'이 쓴 역사교과서는 '적폐'라는 얘기다.

역사교육계의 기득권을 장악한 좌파 사학자들이 쓰면 '정의'이고, 다른 집단이 다른 시각을 제시하면 '적폐'로 규정해 시장의 진입 자체를 막는 행위. 기득권을 자신들만 누리고 사다리를 걷어차겠다는 자사고·외고 폐지와 너무 닮아 보인다.

'민주화 세대'가 그동안 입에 달고 살아왔던 '진정한 민주화'는 자신들이 모든 기득권을 누리는 사회였던 모양이다. 그들은 사실 '군부 독재'가 못내 부러워 그토록 비난했나 보다. /박남규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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