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말 워싱턴에서 제시한 압박과 대화를 병행하는 남북관계 주도 의지가 6일(현지시간) ‘베를린 구상’으로 완성됐다. 취임 50여일만에 첫 한미정상회담에 이어 G20정상회의로 다자외교무대 데뷔까지 완성한 문 대통령은 새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핵화 대화로 유도하기 위한 대북 압박’으로 구체화했다. 

‘전략적 인내는 끝났다’는 미국의 강경 압박과 ‘신중한 접근’을 내세운 중국의 대화 중시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자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런 만큼 한반도 문제에서도 세 대결을 펼치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문 대통령이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이끌어 비핵화를 완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최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시험발사 도발에도 중국과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의 새로운 조치에 반대한 바 있다. 하지만 미국은 군사 옵션까지 거론하며 북한 무역의 90%를 차지하는 중국에게 북한에 대한 원유공급을 중단할 것을 요구해왔다.

이런 가운데 G20 계기 일정 첫날 의장국인 독일 메르켈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문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의에서 북한 문제를 다뤄줄 것을 요청했고, 이에 대한 메르켈 총리의 특별 배려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효과도 낳았다.

국제경제 협력의 최상위 회의체로서 정치·안보 문제를 논의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원칙으로 하고 있는 G20정상회의에서 의장국인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북한 문제를 거론해 정상들 사이에서 “북한에 대해 안보리 조치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시켰고, 또 메르켈 총리는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통해 이런 사실을 발표했다. 

북핵을 규탄하는 G20 공동성명도 이끌어낼 수 있었지만 결국 불발된 것이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 때문이라는 전언도 나오는 상황에서 여전히 추후 안보리에서 추가 대북제재가 결의될 지 여부는 지켜볼 일이다. 

하지만 대북정책과 관련해 문 대통령이 미국과 중국 입장 사이에서 다소 애매한 균형자를 자처해 우려도 일었지만 이번 외교무대에서 문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 문제에서는 단호하게 대응한다는 입장을 재확인시킨 것이 분명하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 오후(현지시간) 독일 함부르크 엘부필하모니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문화공연을 마치고 문재인 대통령의 손을 잡고 있다. 뒤쪽에 있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 장면을 바라봤다./사진=쳥와대 제공


결국 대화와 압박을 병행하는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은 최종 북핵 폐기와 동북아 평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어 국제사회의 호응을 받았다. 하지만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기 위해 결정적인 역할을 해야 할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을 담보할 수 없는데다 북한이 우리 정부의 시간표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 남겨진 과제이다.

핵보유국을 목표로 하고 있는 북한은 이 카드를 쥐고 미국과 협상할 작정이어서 그 이전에 문 대통령의 바람대로 대화 테이블에 마주앉을 가능성이 낮은 상황이다. 게다가 문 대통령은 이번 G20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각각 사드 문제와 위안부합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과제로 남겼다.   
  
특히 북한의 ICBM급 도발 직후 G20정상회의가 열리면서 새로운 한국의 대통령을 둘러싸고 한미일 대 중러 구도의 신냉전 시대를 열었다는 전망도 있다. 이번에 문 대통령과 마주앉은 시진핑 주석이 “혈맹관계”를 언급하며 북한에 대해 할 만큼 했다는 입장을 드러낸 것도 이런 전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북핵 문제 해결에서 중국 역할론을 강조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 압박에 시진핑 주석이 인내심을 바닥을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앞으로 북핵 문제를 논의하는 한미중, 한중일 3자 회의체가 가동되더라도 공회전하지 않고 결실을 만들어낼지도 관건이다.  

일단 이번 G20을 계기로 문 대통령은 오랜 외교적 공백을 깨고 한미일 3자 대북 공조 확립을 이뤄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다음 단계는 중국·러시아와 공조를 이뤄 북한에 실질적인 압박을 가하는 과제가 남았다. 이런 과정에서 대북 인도적 지원 등 남북간 직접적인 교류협력도 이뤄져야 하므로 지금 문 대통령의 외교는 겨우 출발선에 다시 선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7일 G20정상회의 첫날 환영행사로 진행된 오페라 공연에서 뒷줄에 서 있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보란 듯이 갑자기 문 대통령의 손을 잡아 채 흔들었다. 한국이 한미일 공조체제 틀 속으로 확실히 들어왔다는 점을 상징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세레모니였다. 하지만 이런 트럼프 대통령의 과장된 제스처마저도 문 대통령이 뛰어넘어야 할 숙제가 됐다.

한편, 정부는 이번 G20정상회의에 대해 평가하면서 “우리 정부가 북한 문제뿐 아니라 경제를 포함해 새정부의 정책방향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8일 폐막된 G20정상회의와 관련해 “저성장과 일자리 부족, 이로 인한 양극화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참가국 대다수의 고민이었음을 확인했다”며 “우리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경제정책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고 사람 중심 투자, 공정 경제, 혁신 성장을 핵심 축으로 하는 새정부의 경제정책을 소개했다”고 설명했다.

또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에도 G20이 협정을 충실하게 이행하기로 했고, 문 대통령도 이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와 정책적 노력을 강조한 것도 하나의 성과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문 대통령은 방독 일정은 5일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총리 등 독일 정상과의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6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중정상회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및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한미일 3국 만찬회담 등으로 이어지면서 4강외교를 복원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 대통령은 5~9일까지 독일 방문 기간 모두 9개국 10차례의 양자 정상회담과 한미일 3국 정상 만찬회담을 가졌고, EU(유럽연합) 정상회의 상임의장과 유엔 사무총장, 세계은행 총재 등 3개의 국제기구 수장과도 면담도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