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 기는 공직사회·절절매는 공권력…도 넘은 정권 코드 맞추기
   
▲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 객원교수
대선 당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공직사회와 언론의 처신에 대해 "바람이 불기도 전에 먼저 누워버렸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집권자나 목줄을 쥐고 있는 실권자들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공직자들의 보신주의는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지만 허위, 과장, 편파 보도를 일삼는 언론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불만은 '기레기(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라는 용어가 대변하고 있다.
 
오늘(2017. 7. 13) 朝鮮日報 1면은 "'청정 에너지' 原電 파리기후협약 후 더 늘고 있다"라는 헤드라인으로 문재인 정부의 국내 1호 원전 '고리 1호'기의 퇴역과 신고리 5-6호기 공사 일시 중단 결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 외에도 1-3면을 "절절매는 경찰력… 反사드 10여명이 막자, 1500명 철수", "9:0→3:8…정권 바뀌자 취소된 '박정희 100주년 우표'" 등등의 제목으로 새 정부 출범 후에 벌어지는 '정권 코드 맞추기' 현상들을 비판하는 기사들로 채웠다.
 
우선, 원전 관련 문제부터 살펴보자.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으로 출국한 다음날 국내 주요 일간지들은 문 대통령의 '탈원전(脫原電)' 계획에 우려를 표하는 기사로 1면과 사설을 장식했다.
 
朝鮮日報는 '정부의 누구도 설명 못 하는 脫원전 다음의 대비책'이란 사설을 통해 '시민배심원'을 구성해 판단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에 대해 "전문 지식이 없는 시민들이 틈틈이 전문가 설명을 들으면서 석 달 안에 균형 있는 판단을 내리길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다…그 시민배심원이 정말 균형 있게 뽑힐 가능성도 높지 않다."며 정부의 졸속 에너지 정책을 비판했다.
 
東亞日報는 '原電정책 시민에 떠넘긴 靑, '저의' 운운하며 입까지 막나'라는 제목의 사설로 정부의 성급한 조치에 대해 "그렇게 밀고 나가서 국정이 잘 돌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아마추어다."라고 비판했고, 中央日報도 사설을 통해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은 초법적(超法的) 발상이라고 비난했다.
 
   
▲ 원자력은 이미 산업으로써 경제 생태계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새 정부가 추진하는 단편적인 탈원전 정책은 원자력이 가진 엄청난 파괴력을 우리 경제에도 줄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사진은 신고리 원전 5·6호기 조감도.

'기레기'라는 오명까지 쓰고 있는 언론들이 이처럼 정부의 원전정책을 일제히 비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수년간의 연구검토와 준비 끝에 작년 9월에 착공하여 현재 29%의 공정으로 진행 중인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으로 인한 매몰비용은 이미 집행한 1조6000억원 공사비 외에 보상비용 1조원과 인근지역 경제에 미치는 피해까지 더하면 6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신고리 5, 6호기가 우리가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한 원전과 같은 모델이라는 사실이다. 만일 한국이 안전을 이유로 건설 중인 원전시설을 폐기한다면 같은 원전을 가동해야 하는 UAE의 입장은 어떻게 변할까? 그리고 그간 우리 정부가 원전 수출에 공을 들여온 사우디아라비아를 위시한 다른 나라들이 한국 원전 기술을 채택하겠는가? 그야말로 외눈박이의 시각으로 국가 중요정책을 멋대로 좌지우지하려는 것 아닌가?
 
야당과 국민의 비판과 반발이 심각해지자 정부가 5, 6호기 건설 중단 문제를 논의할 공론화위원회에 원자력 및 에너지 분야 전문가를 포함하고, 이들과 시민배심원단이 3개월간의 공론화 과정을 거쳐 두 원전 건설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한 발짝 물러섰다. 결국 대통령 공약인 '신고리 5, 6호기 중단'의 졸속 결정의 책임을 시민들에게 떠넘기겠다는 발상 아닌가?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오늘 오후 열릴 예정이던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는 노조와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월 19일 고리원전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우리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면서 "원전 중심 발전정책을 폐기하고 탈핵(脫核) 시대로 가겠다"고 말했다. 원전도 핵물질을 원료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핵'이란 표현을 쓸 수도 있겠으나, 핵폭발(순간적인 핵분열이나 핵융합)의 엄청난 에너지를 파괴나 살상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핵무기와 연관 지어 '핵폐기'나 '핵동결'과 같은 개념으로 '탈핵' 운운하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다.

원전의 원자로(原子爐)는 핵분열 속도를 제어하여 핵분열이 서서히 진행되고 상당 시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여 이 때 발생하는 열을 전력 생산에 이용하는 장치로 순간적 폭발에너지를 파괴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핵무기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경제적, 친환경적 전기생산 설비이다.
 
실제로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겪은 일본조차도 기존 원전의 수명을 20년 연장했으며 세계의 원전 건설은 '파리기후협약' 체결 이후 더욱 증가추세에 있다. 또한 중동 산유국들을 포함한 세계 주요국가들이 원전의 도입과 확대를 계획하고 있다.

이런 세계적 추세에도 불구하고 새 정부가 고리1호 원전의 영구퇴역을 결정하고, 원전전문가도 아닌 국무위원들이 몇 십 분에 걸친 토의로 수년간의 연구와 투자로 건설 중인 신고리 5, 6호 원전의 공사중단을 결정하는 것은 결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처사가 아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공직사회에는 바람이 불기도 전에 먼저 누워버리는 '알아서 긴다'는 풍토가 더욱 확산될 수밖에 없다.

성주 사드기지 입구에 긴급 배치되었던 1500명의 경찰이 반(反)사드 시위대 몇 명의 눈치를 보며 "주민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피한다고 철수했다는 뉴스나, 우정사업본부의 '박정희 100주년 우표 발행 철회' 소식도 새 정부의 첫 업적이 '국정역사교과서 폐지'이었음을 상기한다면 놀랄 일도 아니다. 앞으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를 바꾸고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평가와 상벌을 뒤바꾸는 해괴한 일을 반복해야 할 것인가?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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