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안보 경제와 직결된 에너지정책 대통령 말 한마디로 결정할 사안 아니다
   
▲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 객원교수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두 달도 안 되어 "원전 중심 발전(發電) 정책을 폐기하고 탈핵(脫核)시대로 가겠다"며 '고리 1호 원전의 영구퇴출'과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을 밀어붙였다. 문제는 국가 에너지정책과 국가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중대 사안을 정부 부처간 사전 논의도 없이 대통령 뜻에 따라 국무회의 당일 구두보고와 간단한 회의로 결정했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한 정치권의 반발과 국민들의 우려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원전은 '탈핵(脫核)'과 연관 지어 운운할 사안이 아니다

원전(原電) 문제는 핵무기를 놓고 '핵폐기'나 '핵동결'을 얘기하듯 '탈핵(脫核) 시대' 운운하며 섣부른 결정을 내릴 사안이 절대 아니다.

우선, 원전은 순간적 핵폭발에너지를 파괴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핵무기와는 달리 원자로(原子爐)에서 핵분열이 서서히, 상당 시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핵분열 속도를 제어하여 이 때 발생하는 열을 전력 생산에 이용하는 평화적, 생산적 장치이다. 

둘째, 현재 29%의 공정으로 진행 중인 '신고리 5, 6호기'를 폐기한다면 이미 집행한 1조6000억원 공사비 외에도 수조 원을 매몰비용으로 날리게 된다.

셋째, 우리가 '신고리 5, 6호기'와 동일한 모델을 수출한 아랍에미리트(UAE)나 그 동안 원전 수출을 위해 공들여온 여러 나라들이 앞으로 한국 원전기술을 채택하겠는가? 

넷째, '신고리 5, 6호기' 존폐를 공론화위원회와 시민배심원단의 공론화 과정을 거쳐 결정한다 하더라도, 일부 언론의 지적처럼 "전문지식이 없는 시민들이 틈틈이 전문가 설명을 들으면서 석 달 안에 균형 있는 판단을 내리길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이며 "시민배심원이 정말 균형 있게 뽑힐 가능성도 높지 않다"는 우려를 씻을 수 없다.

다섯째, 우리나라는 지형이나 기후조건이 태양광발전이나 풍력발전에 취약하여 현 기술 수준의 대체에너지나 신재생에너지로는 에너지 수급이 불가능하다. 결국 상당 부분의 전력을 석유와 가스로 발전해야 하는데 온실가스 문제 외에도 비싸질 전기요금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여섯째, 이와 같은 현실에서 원전사고를 겪었던 미국이나 일본조차도 '과학'과 '경제성'을 근간으로 하는 원전을 현실적인 대안으로 인식하고 원자로 사용연한을 20년 연장하고 20년 추가 연장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에너지 수급과 국가 경제에 막대한 변수가 될 원전 존폐 문제를 대통령 지시에 따라 국무회의에서 간단히 의결하고, 한수원 이사회는 밀실 이사회까지 열어가며 거수기(擧手機) 역할을 해서 될 일인가?

   
▲ 문재인 대통령의 탈핵탈원전정책은 공감이 가지만, 에너지백년대계차원에서 정치권 전문가들과 충분한 토론을 거쳐야 한다. 사진은 고리1호기 영구퍠쇄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원전사고를 겪은 나라들도 원전 추가 건설을 추진

원전(原電)은 기술적, 경제적, 환경적 측면에서 화석연료(化石燃料, Fossil fuel)에 의한 대기오염 및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처하는 효율적인 대안으로 전세계에서 실용화 되어왔다. 역사적으로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섬 원전사고, 86년 소련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2011년 쓰나미에 의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겪었지만 미국, 일본, 유럽 국가 등을 포함해서 세계 곳곳에서 원전이 가동되고 있다. 

특히 미국은 1979년 원전사고 후 중단했던 신규 원전허가를 31년이 지난 2010년 민주당 오바마 행정부가 허가를 재개했다. 정권이 바뀐 후 현 트럼프 행정부도 에너지 수요를 감당하면서 지구온난화를 막는 최선의 대안이 원전이라는 판단으로 차세대 소형모듈 원자로 개발을 포함하여 원전 추가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신고리 5, 6호기'의 운명을 아마추어에 맡기겠다니…

최근 원전 문제에 관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 국민 59%는 원전에 대해 긍정적이고 32%가 반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찬성 48%/반대 42%), 정의당 지지층(47%/44%), 이념성향 진보층(49%/44%) 등에서도 긍정적 응답이 우세였던 반면 30대의 경우는 찬성 45%, 반대 49%로 반대가 다소 우세했다. 

'신고리 5, 6호기' 공사중단 문제에 대해서는 찬반의 성별, 연령별 차이가 컸다. 남성은 48%가 '계속 건설', 36%가 '중단'이었지만, 여성은 25%만 '계속 건설'이고 46%는 '중단'을 원했다. 연령별로는 고령일수록 '계속 건설'(60대 이상 53%), 저연령일수록 '중단'(20대 61%) 의견이 많았다. 원전에 대한 '과학적 지식'보다 '사고 위험'에 대한 두려움이 상대적으로 큰 여성, 저연령층 등 비전문가 그룹과 문 대통령 지지층이 건설 중단에 동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론화위원장을 제외하고는 공론화위원과 시민배심원단을 이해관계자나 원전 관련 전문가들이 아닌 비전문가들로 구성하겠다는 국무조정실의 방침이나 위의 여론조사결과로 미루어 볼 때 정부의 의도에 따라 ‘신고리 5, 6호기’의 퇴출로 결론을 몰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이 때문에 원전 전문가들은 이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치거나 최소한 국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원자력은 이미 산업으로써 경제 생태계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새 정부가 추진하는 단편적인 탈원전 정책은 원자력이 가진 엄청난 파괴력을 우리 경제에도 줄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사진은 신고리 원전 5·6호기 조감도.

60년 키워온 원전기술이 대통령 말 한마디로 사장(死藏)되는가?

화석연료는 온실가스뿐만 아니라 채굴과정에서도 많은 환경오염 문제를 야기시킬뿐만 아니라, 매장지역이 편중되어 있고 매장량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공급량과 가격의 불안정으로 '에너지 파동'이라는 사회적, 경제적 문제에 취약하다.

우리나라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으로 국민생활 향상과 복지증진에 기여하고자 1958년 2월 원자력법을 공표한 후 1959년 1월 원자력원을 설립하고 4월에 서울공대에 원자력공학과(현 원자핵공학과)를 개설했다. 1978년 4월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의 상업운전을 시작으로 그후 원자력 발전소를 지속적으로 건설하면서 원전건설의 자체기술을 꾸준히 축적해왔다.

그 결과 우리 자체기술의 가압경수로형 한국표준형원전(OPR1000) 개발에 이어, 이보다 안전성과 경제성을 10배 강화한 한국형 신형원자로 APR1400을 개발하여 2007년 신고리 3, 4호기를 건설했다. 이 APR1400 모델이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된 모델이며, 현재 영국이 23조원 규모의 차세대 원자로로 채택을 검토 중인 모델이다. 

방사성폐기물 처리와 핵 재처리 기술이 빠르게 발달하면서 원전의 경제성, 안전성, 친환경성도 향후 크게 개선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권이 바뀌자마자 '정치적 목적' 또는 '비과학적 논리'로 원전 퇴출을 밀어붙인다면 에너지 수급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가 60년에 걸쳐 축적해온 원전기술이 세계시장에서 꽃피우려는 시점에 이를 영영 사장(死藏)시키는 역사적인 과오를 범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정부가 뜬금없이 '탈(脫) 원전'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원전 안전기술의 개발과 관리를 독려하고 감독을 강화하는 대책을 마련하는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한수원 이사회에서 유일하게 반대의견을 낸 조성진 교수의 '원전 관련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 2040~2050년이면 우라늄이나 사용후핵연료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핵융합 기술이 상용화될 것… 더 안전한 원자력발전 시대가 눈앞에 있는데 비과학적인 담론에서 출발한 일부 세력이 왜곡하고 있다'는 지적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 객원교수 
[이철영]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