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적대시 소자보 확산, 언론도 공공의 적으로
그 사이 언론마저 공공의 적인 마냥 취급받게 되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여론은 초기 정부 당국 성토로 나타났다가 사나흘 지나면서 점차 미디어 때리기로 고조되는 양상이다. 미디어를 적대시하고 비아냥대는 소자보가 인터넷, 모바일을 덮치고 있다. 난파선 뉴스에 대한 불신과 염증, 무기력함이 시시각각 극단화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대로 미워하고 부정하고 몰아치는 우리 사회 내부 파열이 계속된다면 한국 언론계, 미디어산업 엔진 몇 개가 영영 망가질지도 모른다. 자칫 회복키 힘든 손상까지 염려되는 미디어 난파 상황이다.
미디어 관찰자들이 공분하는 행태 첫째 종류는 <배려 못함>이다. 생존자 구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시청하고 있을 때 ‘상해사망 1억 원, 상해치료비 500만원, 통원치료비 15만원, 휴대폰 분실 20만원’ 같은 도표로 단체여행자 보험 설명에 치중한 TV뉴스는 민심을 긁고 말았다. 상처입고 요동친 민심은 미디어를 연신 들춰낸다.
민심긁는 상해사망 1억원 등 단체여행자 보험설명 TV뉴스...
한 대기업이 구호품 보내고 임시 기지국 증설한 걸 다룬 어느 매체는 “잘 생겼다. 잘 생겼다 ~ ”라고 제목을 뽑더란다. 홀로 남은 6살 아이에 가족 행방을 묻는 인터뷰도 나왔다 하고 안산 단원고 숨진 학생 노트를 뒤져 책상위에 연출한 사진을 올렸다는 매체도 지적당했다. 선박 내부 사진 리트윗을 학생에게 요청했다가 ‘나는 모릅니다’는 답신을 받았다는 경우도 사람들 울화를 돋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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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참사를 보도하는 방송 신문 인터넷 등 미디어들의 미숙 미흡한 편집과 뉴스 전달, 취재남발과 구조자와 실종자 가족을 배려하지 무례한 취재와 과잉속보 남발등이 위험수준으로 치달아 국민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세월호만 난파된 게 아니라 미디어들도 난파되고 있다. 이런 비극적 사건일수록 말을 절제하고, 유가족들을 배려하는 편집과 취재가 필요하다. SBS기자가 현장취재도중 웃는 장면이 공개돼 파문이 일고있다. |
미디어 난파를 자초한 두 번째 유형은 <미숙 미달 미흡>에 해당한다. 구조된 학생에게 친구들 사망 소식을 아느냐고 물어본 인터뷰부터 시작해서 피해 가족들 근처 리포트 도중 “거짓말 하지마...” 하는 외침과 쌍욕까지 수차례 생방송되는 상황 등 숱한 미숙함이 드러났다. 뉴스 전달자, 편집자로서 함량 미달이 큰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MBN 18일 아침 생방송에 나온 희대의 거짓말녀 인터뷰 보도 사건은 한국 미디어를 격침시킨 사고였다. 방송사가 공식 사과한대로 당시 거짓말녀가 지껄인 “해양경찰이 민간 잠수사들 구조 작업을 막고 있다”는 낭설은 큰 혼선을 초래했다.
말이 좋아 혼선이지 피해 가족들에 끼친 충격이나 당일에도 70명 민간 구조사와 현장을 사투한 수많은 군경들 마음 상처는 어떻게 씻을 수 있나? 실수 연발하는 미숙함과 함량, 자질미달에 대책 미흡까지. 불량 미디어들은 신뢰를 무너뜨리고만 있다.
MBN 홍가혜 희대의 거짓말녀 파문, 불량미디어 범람
답답하게도 대한민국 미디어, 언론 난파를 못 멈추게 하는 세 번째 악습은 <표현 과잉>이다. 4월 16일 대형사고 이후 한국의 신문, 방송, 인터넷 매체들은 영화로 치면 너무나 빠른 프레임 속도로 장면을 돌려 왔다. 영상 과잉, 무리한 뉴스 전달로 이번 재난보도를 그르치고 있다. 되도록 빠르고 많은 영상, 굵고 강렬한 자막, 재빠르고 다채로운 멘트와 문장 경쟁을 벌이다보니 정작 시청자와 독자들은 싫증나고 멀어지는 역설이다. 물론 잘 알고 있다. 눈이 퉁퉁 붓고 충혈 되어가는 여성 앵커, 목이 잠기고 발음도 무너지는 기자들 보면서 뭉클함을 느꼈고 진정 고마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어쩌랴? 미디어는 전문 서비스로서 다가가 기여함으로써 인정받아야 한다. 다른 어떤 직종보다도 철저하게 정제된 언어와 표현력으로 이용자 고객을 섬겨야 한다. 때문에 미안함을 무릅쓰고 이번 뉴스 서비스들이 너무 넘치는 영상과 멘트, 자막, 기사들을 남발했다고 분석하고자 한다. 연이어 특집 특보 속보로 생방송 생중계를 꾸려나가려다 보니 유사 중복 반복 오탈 현상이 극심하게 되었다. 제작진 고충은 이해하지만 한 매체 한 채널에서 끝나는 사소한 과잉이 아니다.
특집 특보 속보에 유사중복 반복 오탈현상 극심
대한민국에는 비슷하게 실수하고 비슷하게 과잉하는 매체들이 너무 많다. 방송만 해도 종편까지 해서 메이저급만 10개 정도고 신문 방송 인터넷 언론 통틀어 엄선했다는 포털 네이버 뉴스스탠드 입점 매체만 해도 51개나 된다. 그 밖에 단체나 개인 차원에서 만들거나 퍼오고 돌려 보는 SNS 소셜 미디어, 마이크로 볼로깅, 디지털 큐레이션 사이트들까지 치면 울트라 다매체 수준이다. 매체 포화다. 이런데도 매체마다 엇비슷한 영상 밀어내고 설익은 취재 뉴스 쏟아내고 뉴스룸 멘트, 편집국 기사 작성 확대하면 결국엔 국민들 한계효용이 무서운 속도로 체감하고 만다.
뉴스 과잉과 남발은 뉴스 이탈을 부르고 정규 뉴스 이탈은 비정규 풍문과 속설로 비화된다. 유언비어도 발효한다. 이렇게 한 번 뉴스 미디어를 이탈한 민심은 쉬이 돌아올 리 없다. 바로 이 순간에도 소셜 미디어로 증폭되는 거친 목소리들이 상당 부분 ‘한심한 언론... , 인간도 아닌 기자들...’을 정조준하고 있다. 더 나가다가는 미디어 불신과 난파를 넘어 사회 전체 집단극화와 내부 파열 파국에 이르는 병이 자라날지 모른다. 어찌 해야 하나? 이 힘든 때 대한민국은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나누기 위해서 어떤 지혜를 모아야 하는가?
문화부 방통위, 미디어에 나와 정부 대변, 변호해라
우선 정부에 제안한다. 문화부 방통위로 하여금 유언비어를 차단하고 색출한다고만 하지 말고 직접 미디어에 나와 정부를 대변하고 변호해야 한다. 허물어진 신뢰와 불안감이라는 탱크를 밟고 올라가 확성기 들고 명확하게 사실관계를 말하고 나라를 위한 정부 가치판단을 전하는 책임 있는 인사가 왜 아직 한 분도 없는가? 인터넷과 모바일에 넘쳐나는 비정규 언론과 사설 통신이 곧 정부 대변인, 변호인들이 용감하게 멈춰 세워 딛고 이겨내야 하는 탱크다.
뉴스 미디어 언론인들에게도 당부한다. 말마따나 산소통 들고 바다에 뛰어들 것 아니면 현장에 가지 말아야 한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가서라도 미디어부터 질서 있게 서로 검증하고 협업해가며 정보 콘텐츠를 다듬어주기 바란다. 지금 같은 다매체 무한경쟁 환경일수록 단독 플레이보다는 오픈 콜라보레이션을 작동해야 한다. 협업도 하고 분업도 하고 공유도 하는 기자단 시스템을 복원해야 한다. 기자단 조직을 꾸려 완장 표식이라도 하고서 실질적인 공동 플랫폼을 운용해야 한다.
침묵적 냉정한 태도 표현으로 시청자 독자 가치판단 돕는 비서역할을
사실 이번은 단독 특종으로 차별화해야 득을 보는 뉴스 상황이 아니다. 팩트(fact)가 극히 제한되는데도 계속 보도해야 하는 강박감 하에서는 기자 정신도 고갈되고 만다. 말도 더 빨라지고 영상도 자막도 수식도 더 장황해지게 마련이다. 그보다는 침묵에 가까울 정도로 냉정한 태도와 표현으로 시청자와 독자들 가치판단(judgement)을 돕는 비서역할로 돌아서길 권한다. 언론도 기자도 때로는 이용자 고객 뒤나 옆에서 정보를 해석해주고 뉴스 콘텐츠를 배려하고 맞춰주는 비서와 집사로서도 기능할 줄 알아야 한다. 지금이 바로 이렇게 복무할 때다.
스트레이트 속보는 기자단이 커버하고 사고 원인 심층 분석하고 검증하는 뉴스에서 선의의 경쟁을 벌여야 한다. 이 즈음 대한민국 기자단이 단합된 위로 메시지 내고 오보 막는 자율 규제 선언 알리고 짬짬이 봉사한다면 훈훈한 굿 뉴스가 되지 않겠는가? 국가기간방송과 국가기간통신이라는 KBS, 연합뉴스와 경험 많은 매체 언론인들은 실수도 자각 못하는 작은 매체들도 보듬고 가야 한다. 기사도 봐주고 취재도 도와야 한다. 이런 실천이 곧 지금 상황이 준엄하게 요구하는 미디어 공유가치(Creating Shared Value: CSV)라고 본다.
"말할 수 없는 것은 말하지 않아야 한다." 억지말은 진실 전하지 못해
수도승 같았던 오스트리아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전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아야 한다. 설령 억지로 말한다 해도 그 진실은 전하지 못한다”. 1차 세계 대전 참호 속에서 꽃핀 지혜였다. 우리 언론도, 미디어 이용자들도 되새겼으면 한다. 훨씬 더 천천히 알리더라도 말할 수 없는 것은 말하지 말자고. 내가 확인하고 남들도 거들어줘 말할 수 있는 것을 얻고 나서야 비로소 담담하게, 크게 표현하거나 꾸미지 말고 또렷이 전달해드리자고. 이것이 슬픔을 덜어드리기 위해 우리 미디어가 할 수 있는 전문가적 기여가 될 터이다.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