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사실 재구성한 허구…브레이크 고장난 택시마냥 위험한 오독 불러
   
▲ 이용남 영화평론가
5‧18, 이제는 특판 상품이 되었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낀다. 예전에는 딴따라라고 불리며 천대받고 괄시받던 이들이 이제는 영화 한편으로 국가 에너지 정책의 근간을 바꾸는 길잡이가 되고, 삼민주의(민족, 민주, 민중) 프레임의 역사공부까지 시키고 있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지위 변화인가. 

영화와 영화인에 대한 인식변화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착각하지는 말자. 영화는 환경전문가가 아니며 역사가도 아니다. 영화는 예술이지만 문화산업 시스템 내에서 작동되는 문화상품이다. 당연히 영화는 고수익을 목적으로 기획되는 상품이다. 특히 특정시기에는 특정상품이 출시되기 마련이다. 이제 5‧18은 <화려한 휴가>, <26년>, <택시운전사>처럼 역사라는 포장지의 트렌드이자 특판 상품이 되었다.  

<택시운전사>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영화다. 

영화는 어떤 의도를 지닌 문화생산자의 자기 해석 전달 매체다. 세상을 자신이 이해한 방식대로 표현하고, 자신이 인식하는 바에 따라 재구성한다. 재구성의 과정에서 문화상품을 판매하고자하는 목적은 사실을 왜곡하고, 가상의 스펙터클을 재현하도록 유혹한다. 

<택시운전사>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됐다는 소개와 함께 영화가 시작된다. 다시 말해 재구성된 가상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군함도>처럼 역사적 사실이라는 가면을 통해 재구성에 방점을 둔 영화다. 재구성은 가상의 상상력을 동원한 허구다. 그 허구는 스펙터클한 볼거리로 채워진다. 그리고 허구의 내용은 진실을 오독하게 만든다. 최근 소재주의에 빠진 대부분의 한국영화가 그렇다. 

문화상품의 임팩트를 강조한 영화는 <군함도>의 탈출 장면이나, <택시운전사>의 카체이싱 장면 같은 스펙터클의 볼거리로 머니컷을 생산한다. 이러한 머니컷은 그들이 언론을 통해 전하고 있는 영화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진정성이 의심되는 영화가 반(反) 대한민국 정서를 조장하면서 질주하고 있는 모습은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택시가 역주행하고 있는 것처럼 위험하게 느껴진다.

   
▲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 컷.

사실과 가상, 참을 수 없는 과장과 왜곡

역사가 일어난 일(사건)이라면, 일어난 일에 대한 재현은 가상의 기록이다. 가상의 기록은 언제나 사실의 후보이지 사실은 아니다. 가상은 사실과 오류의 가능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따라서 가상의 진위 여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적 사실 혹은 진리를 찾는 대중이라면 사실과 오류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하며, 그 구별을 정당화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인식 기준의 부재는 과장되고 왜곡된 역사의 자양분으로 진실을 썩게 만든다.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서울의 개인 택시운전사 김만섭이 통금시간 전까지 광주에 다녀오면 큰돈을 준다는 말에 독일기자 피터를 태우고 광주로 가게 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영화에서 발견되는 여러 고증의 실수는 차치하고 몇 가지 과장과 왜곡에 대해 살펴보자. 

첫 번째는 반복되는 이분법 프레임이다. <화려한 휴가>처럼 <택시운전사>도 일방적인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극단적인 선악의 대립을 기본 구도로 설정하고 있다. 복잡한 역사의 현실을 단순한 이분법 프레임으로 설정하는 것은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간에 5‧18의 정당성 확보를 위한 미화와 선동으로 귀결되고 만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점은 겨우 연탄집게만 들고 저항했다는 시민들이 무슨 이유로 군수업체 공장을 습격해 장갑차와 군용차량을 탈취하고, 서른여덟 곳의 무기고를 탈취해 총기 5400여정, 탄약 28만8000발, 폭약 2180톤의 무기로 무장 했는가이다. 

5‧18은 현대사의 비극이자 아픔이다. 그러나 일방통행식 메시지는 화합의 역사로 나가고자 하는 처절한 몸부림을 무시하고 공론화를 원천봉쇄하게 한다. 이번에도 5‧18에 대한 객관적 성찰의 기대는 사치에 불과했다. 

두 번째는 논란의 중심인 집단발포 장면이다. 이 또한 <화려한 휴가>부터 반복되는 가상의 현실화이자, 거짓의 진실화다. 이미 1995년 서울지검의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 조사에서도 발포명령은 없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포장면을 극적으로 재현한 것은 관객들의 감정을 극대화시켜 정서적 자극을 유도하기 위해서라고 해석된다.

시민을 향한 무차별 사격? 1980년 6월 19일 광주지검의 민‧관‧군 합동조사를 거쳐 집계한 민간인 사상자 수는 165명이다. 만약 30만 명의 시민들이 모인 장소에서 무차별적인 총기공격을 했다면 아마도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희생자가 발생했을 것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 측은 발포장면과 관련해 "법적 대응을 검토할 수도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런 논란을 예상했는지 영화는 "애국가를 부르고 있는데 군인들이 다짜고짜 발포했다"는 대사로 모호하게 처리하거나 간접적인 표현으로 발포장면을 구성했다. 가상의 상상력이 관객의 몰입도에 기여할수록 역사적 진실과 성찰의 기회는 사라진다. 만약 영화적 재미를 위한 가벼운 발상이라면 언젠가는 역사의 무게감이 전하는 후폭풍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민의 자발적 행동이다. 영화 장면 중 주유소에서 무상으로 기름을 넣어주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은 당시 광주 시민들의 일치단결된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05년 5월 18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약탈도, 방화도, 보복도 없는 그야말로 민주질서를 유지했다."라고 연설했다. 과연 그런가. 남정욱(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작가의 『편견에 도전하는 한국 현대사』에는 다른 시선의 증언들이 나온다. 전남대학교 5‧18연구소에서 발표한 증언들을 몇 가지 인용해보자.

   
▲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 컷.

"주유소 주인들이 대부분 시위대 차량에게 기름을 조금씩 밖에 넣어주지 않았다. 다른 시위대 차량이 와서 기름을 달라고 하는데 없다고 하면 격해진 시위대가 주유소 기름들을 막무가내로 부숴버릴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기름을 분재해 주었기 때문에 금방금방 기름이 떨어졌고 그럴 때마가 차를 팽개치고 다른 차를 타곤 했다."(윤석진, 5‧18 연구소)

"지원동에서 배추장사를 하던 사람이 트럭에 치여 죽었다고 했다. 보람아파트 앞에 가보니 도로에 피가 낭자한 사고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 사람은 계엄군이 아닌 시민군들이 이런 어려운 상황에도 돈을 벌려고 장사하는 것이 얄미워 일부러 치었다고 했다."(최남식, 5‧18연구소)

"우리가 맨 먼저 간 곳은 중앙고속터미널이었다. 터미널 홈에 차 몇 대가 세워져 있었지만 키를 모두 뽑아가 버린 상태였다. 사람들이 터미널 안으로 우르르 몰려 들어갔다. 책임자인 듯한 사람이 나왔다. "시위차량이 부족하니 그레이하운드를 좀 내주시오.",  "차를 줄 수 없소." 그 말을 들은 1백여 명의 흥분한 사람들이 세워놓은 차에 달라붙어 밀기 시작하였다. 어떻게 된 것인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중앙고속 건물 안으로 들어가 회사기물과 기타 시설물들을 모두 부숴버렸다."(윤석진, 5‧18연구소)

"도청 여기저기서 총소리가 나기도 했다. 오발을 하거나 재미로 한 방씩 쏘아보기 때문이었다. 더 기겁할 일은 수류탄을 차고 다니는 꼴들이었다. 안전핀 고리를 그게 그렇게 차고 다니는 고린 줄 알고 그 고리를 줄래줄래 꾀어 달고 다니고 있었다. 그게 뽑히는 날에는 떼죽음이 벌어질 판이었다. 그리고 총파지법을 모르기 때문에 대작대기 들 듯 들고 휘젓고 다니는데 식은땀이 날 지경이었다. 조선대 뒷산으로 후퇴하는 공수부대와 학생 ‧ 시민군이 교전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총소리가 콩 볶듯 했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광주시내 지원동으로 들어서니 열서너 살밖에 안 된 어린애들이 카빈총을 들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자동차는 숲속에 감춰져 있었고 가끔 애들이 장난으로 총을 쏴대는 광경이 목격되기도 했다."(송기숙, 5‧18연구소)

영화가 역사교과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최근 대한민국에서 비정상이 정상이 되는 희한한 경우를 연일 목격하게 된다. 원칙과 상식이 무시당하고, 합리적 이성과 논리적 판단은 파괴되고, 추상적인 감성이 지배하는 세상. 예술의 가치와 기능은 사라지고, 그저 돈만 벌면 장땡인 역사팔이 영화들이 판을 치는 세상. 이런 현실을 지켜봐야 하는 것이 슬프고 안타깝다.

제발 영화로 역사 공부하는 자발적 홍위병은 되지 말자. 이러한 관람태도는 역사의식 부재와 무지의 속살만 드러내는 것이다. 영화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영화는 허구다. 가상의 기록이 역사의 진실이 되어서는 안 되며, 역사교과서가 되어서도 안 된다. 더더욱 영화가 한국판 문화대혁명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택시는 사고가 나기 마련이다. 이런 위험천만한 택시는 타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올바른 시선의 대한민국 근현대사 책을 읽어 보기를 권한다. 영화는 아는 만큼만 보이고, 보인 만큼만 이해하고, 이해한 만큼만 소통할 수 있다.

아직 5‧18의 논란은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다. 역사는 그냥 보기(Seeing)가 아니라 바라보기(Looking)가 더욱 중요하다. 그래야 숨어있는 역사의 다양한 의미를 재해석 할 수 있다. 도대체 언제쯤이면 정치적 신화로 바뀐 특판 상품이 아닌 객관적 성찰로 바라보기 하는 5‧18 영화를 만날 수 있을까. 긴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다시 기대해본다. /이용남 영화평론가·청주대 영화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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