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홍샛별 기자]‘갑(甲)’의 사전적 정의는 ‘차례나 등급을 매길 때 첫 째를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에서는 ‘갑’이 단순히 순위를 뜻하는 단어가 아닌 게 됐다. 첫째라는 순서에 어느 순간 권력이 따라붙었다. 이후 ‘갑’은 다음 순위인 ‘을’에게 부당 행위를 일삼았다. 이른바 ‘갑질’이라는 용어도 여기서 비롯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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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달 27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바른정당 가맹점 갑질 근절 특별위원회가 주최한 정책간담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는 ‘갑질’ 이슈가 끊이지 않고 일고 있다.
최근에는 박찬주 전 육군 제2작전사령관 부부의 ‘갑질 및 가혹행위’가 밝혀지며 전 국민의 분노를 샀고,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 모든 부처의 갑질 문화를 조사해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라고 주문했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 또한 ‘을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며 10일부터 본사와 대리점 간 거래가 있는 전체 산업을 대상으로 ‘갑질’ 실태조사에 나섰다. 앞서 지난달에는 외식업 가맹분야 불공정 관행 근절 대책을 발표하고 단속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사회 깊숙히 침투한 ‘갑질’ 문화를 뿌리뽑겠다는 정부가 뒤로는 권력에 기대어 또 다른 ‘갑질’을 하고 있다.
가계 통신비 인하 정책을 놓고 정부 부처가 합심해 이동통신 3사에 전방위적 압박을 가하는 게 대표적이다.
갑질 철폐의 선봉장에 선 공정위는 지난 9일부터 이동통신 3사의 요금제 담합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고, 방통송신위원회(이하 방통위)도 같은 날 이통 3사가 약정할인 기간이 만료되는 가입자에게 요금 할인을 제대로 고지하는지 실태 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언뜻 보면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한다’고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공정위와 방통위가 이 같은 방침을 밝힌 시점은 공교롭게도 이통 3사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에 선택약정할인율 상향정책에 반대 의견서를 제출한 때와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통신비 인하를 관철하기 위해 공정위와 방통위가 과기정통부 지원 사격에 나선 게 아니냐는 의혹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정책에 행정 소송까지 거론하며 강력 반발하는 이통사를 길들이기 위한 강경책이라는 이야기까지 나돌고 있다.
예상치 못한 정부의 초강수에 이통사들은 ‘사면초가’에 처했다. 정부의 선택약정 할인율 상향 정책에 행정 소송을 불사하겠다고 수차례 밝혔지만 이 또한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정권 초기 정부와 강대강으로 맞부딛치는 상황이 부담스러운 게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른다. 이통사 입장에서는 향후 5G 주파수 할당 등 이슈가 산재한 만큼 정부의 눈밖에나서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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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업부 홍샛별 기자 |
정부에게 묻고 싶다. 막대한 손해가 예상되는 요금 인하를 이통사에 강요하는 상황에서, 막강한 행정력을 동원해 이중 삼중으로 압박하는 게 또 하나의 ‘갑질’은 아닌지 말이다.
한쪽으로는 갑질 철폐를 외치고 한쪽으로는 갑질을 행하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는 향후 정부에 대한 국민 신뢰도에도 악영향을 끼칠 게 분명하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에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쓰여 있다.
현재 정부가 일방적으로 강행하는 통신비 인하 정책이 국민이 이양한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업도 국가의 한 구성원이며 기업을 이끄는 이들 또한 대한민국의 소중한 국민이라는 점이다.
[미디어펜=홍샛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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