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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근 선문대교수 |
정말 어이없는 진도 세월호 침몰사건이 온 나라를 분노와 오열 그리고 참담함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도대체 자칭 21세기 선진국 문턱에 와 있다는 나라에서 있을 법한 일인지 믿어지지가 않는다.
무슨 나룻배도 아니고 대형 페리호가 단번에 뒤집힌다는 것이 말이나 될 법하고, 배가 침몰하고 있는데도 300여명의 학생들이 선실에게 가만히 앉아 익사했다는 것이 도저히 정상적인 나라에서 있을 수 있는 일로 생각되지 않는다. 침몰직전 찍어서 보냈다는 구명조끼 입고 선실에 앉아 있는 학생들의 사진은 볼 때마다 울컥울컥 하게 만든다.
이렇게 세월호 참극에 온 나라가 허둥대면서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부조리들이 한꺼번에 드러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무엇보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수도 없이 반복되었던 대형 참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허술한 우리 사회의 안전시스템이다. 이번에도 대형 참사의 직접 원인은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의 말도 안 되는 위기대응조치라고 할 수 있지만, 그 바탕에는 선박회사의 안전 불감증과 정부의 부실한 관리시스템이 깔려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이번 참사를 통해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병폐들이 노정되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상황에 대처하는 정부의 대응시스템이 정말 삼류 수준을 넘어 전무하다는 것이다. 사상자는 물론이고 승선인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것을 보면서 대부분의 국민들은 우리 정부가 위기관리시스템을 가지고 있기나 한 것인지 의구심이 가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 세계 최강 인터넷 네트워크와 극성수준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사이버 강대국의 우울한 면모 역시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휴대폰 메시지와 SNS을 통해 말도 안되는 허위사실들과 유언비어들이 무차별 살포되고, 심지어 이를 틈타 스미싱 문자까지 창궐하는 나라가 된 것이다. 또한 무슨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정치적 선동을 노리고 사실을 과장·왜곡하는 내용들로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도대체 200명 넘는 어린 학생들의 생죽음을 놓고도 이런 정쟁을 벌이는 나라가 과연 정상적인 나라인가 싶을 정도다.
그렇지만 이번 침몰사건을 통해 드러난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점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언론이 아닌가 싶다. 이번처럼 엄청난 사회적 엄청난 사건이 발생하면 언론이 앞장서서 보도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특히 우리 방송법에 KBS를 비롯한 공영방송은 재난 발생 시 의무적으로 재난방송을 편성하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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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칭 민간잠수라고 한 홍가혜씨가 MBN에 나와 정부가 민간잠수들의 구조활동을 방해하고 있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물의를 빚고있다. |
그렇지만 지상파방송 3사는 물론이고 종합편성과 보도전문채널들까지 모든 프로그램을 전폐하고 몇 일째 이 사건에만 매달리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는 다시 생각해 볼일이다. 오래전부터 무슨 사건만 터지면 순식간에 몰려들어 법석을 떨고 심지어 사고수습까지 방해했던 이른바 ‘소방차 저널리즘’ 또는 ‘떼거지 저널리즘’은 우리 언론의 병폐로 이미 정평이 나있다. 이번에도 외형적으로는 그런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몰려가서 보도한다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문제는 그렇게 우르르 몰려가도 시청자들에게 보여준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대책본부 발표내용에만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현장에 앉아 카메라 놓고 하나 스튜디오에서 보도하나 별반 차이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지난 5일간 우리 국민들이 TV화면을 통해 본 것은 진도앞바다의 넘실거리는 파도와 구조선들뿐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이런 발표저널리즘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방송사들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좀 더 끌기 위해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기 마련이다. 그런다보니 SNS나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들을 제대로 거르지도 않은 채 내보내기도 하고, 그 결과 ‘홍가혜 인터뷰’라는 기가 막힌 일까지 벌어지게 된 것이다. 이처럼 제대로 된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막가파식 보도경쟁은 결국 ‘황색언론(yellow journalism)’을 조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처럼 이번 참사보다 더 후진적인 방송사들의 재난보도 수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재난처리본부의 체계적이고 믿을 수 있는 언론대응자세가 우선되어야만 한다. 이번처럼 무언가 감추는 듯하고 발표하는 것도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하게 되면 절대로 제대로 된 재난보도가 이루어질 수 없다. 물론 방송사들도 정부가 제공하는 정보에만 의존하지 말고, 시청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심층적인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전문성 제고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황근 선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