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해정 기자]최해범 자유한국당 혁신위원회 위원은 건국절에 대해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은 우파의 사관도 좌파의 사관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최 위원은 지난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시한 글을 통해 "그것은 그저 산을 산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자명한 사실을 확인하는 것 뿐"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최 위원은 "헌법 전문에 적힌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이 수립되었다는 표현은 말 그대로 선언적 규정일 뿐"이라며 "상해임시정부는 대한민국의 씨앗입니다. 아이가 잉태된 날을 생일로 기념하는 사람이 있습니까"라고 반문했다.

그는 "김대중 정부도 1998년 건국 50주년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제2의 건국'을 모토로 했었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최해범 자유한국당 혁신위원회 위원 페이스북 글 전문이다.

최재성 위원장님께 답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자유한국당 혁신위원 최해범입니다. 어제 최재성 더불어민주당 정당발전위원장께서 쓰신 자유한국당 혁신위원회 혁신선언문의 공개검증을 촉구하는 글을 읽었습니다.

자유한국당의 공식 답변을 요구하였지만, 과연 공당이 답변할 가치가 있는 질문인지는 의문입니다. 다만, 제 사견을 전제로 최재성 위원장의 문제제기에 대해 몇 가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은 우파의 사관도 좌파의 사관도 아닙니다. 그것은 그저 산을 산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자명한 사실을 확인하는 것 뿐입니다.

헌법 전문에 적힌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이 수립되었다는 표현은 말 그대로 선언적 규정일 뿐입니다. 상해임시정부는 대한민국의 씨앗입니다. 아이가 잉태된 날을 생일로 기념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통상 사회과 교과서는 주권, 영토, 국민을 국가의 3대 요소로 설명합니다. 1948년 건국을 부정하려면 우선 교과서에 나오는 국가라는 개념부터 고치고서 얘기하셔야 됩니다. 1919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는 것을 선언적 규정이 아니라, 실체적 규정으로 인식한다면 정말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그 당시 한반도는 주권을 빼앗긴 식민지였는데, 국가는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

임시정부의 수반이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절차가 있던 것도 아니라서 대표성을 갖지도 못했습니다. 상해임시정부가 아니라 일본총독부의 통치를 받고 있던 국민은 반역도당입니까? 당시 임시정부와 노선을 달리하던 수많은 독립운동 조직들은 반국가단체입니까? 해방직후 여운형 선생과 안재홍 선생이 주도하여 만든 국내 최대 조직이었던 ‘건국준비위원회’는 도대체 뭐란 말입니까?

잘 알다시피 백범 김구 선생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대해 부정적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의 임시정부의 법통성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1919년 건국론의 근거가 되는 제헌헌법의 전문의 구절(“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은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고집으로 삽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바로 백범 김구 선생이 부인한 임정 법통론에 쐐기를 박기 위한 맥락에서 나온 것입니다.

민주당 지도부들 대부분은 존경하는 인물로 백범 김구 선생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임정법통론을 정면 부정한 인물이 바로 백범 김구 선생이고, 반대로 민주당 사람들이 혐오하는 이승만 대통령이 임정 법통론의 주창자였다는 이 아이러니는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3년간 미군정을 끝낸 후 드디어 건립된 대한민국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최재성 위원장의 말씀처럼 “분단으로 어쩔 수 없이 남한에서만 이뤄진 정부수립”으로 폄하될 일이 아닙니다.

개국 이래 처음으로 전국민이 투표하여 세운 정부에서 비로소 주권이 명실상부하게 회복되었고, 국민의 자유권 보장과 3권 분립의 민주헌정체제는 오늘날 대한민국 민주주주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더욱이 정부수립 직후 착수한 토지개혁으로 전농민이 골고루 토지를 분배받아 평등한 선상에서 출발한 나라였기에 공산화를 막았고, 그것은 이후 급속한 산업화를 이루게 된 사회경제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남베트남이 토지를 지주에게 되돌려줘 민심을 잃고 북베트남에게 공산화되었던 사실과 극명히 대조되는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자유, 민주주의와 더불어 평등이라는 가치도 당당히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이라고 좌파 입장에서 저는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말씀을 들려드리겠습니다. 

"대한민국 건국은 공산주의자들의 극단적인 반대 속에 이루어졌습니다. 그 당시 우리 국민은 상상 이상으로 침착하게 대응해서 압도적인 투표율로 대한민국의 제헌 국회의원을 선출시켰습니다. 그때 UN에서는 한국의 선거를 시찰하러 왔습니다. 시찰단은 전국을 돌아본 결과 국민의 압도적인 참여와 질서정연한 선거를 보고 어떠한 문제도 제기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남한만 선거하는 데 대해 별로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던 사람들도 국민의 의사가 우선 가능한 지역에서 정부수립을 하겠다는 데에 일치했습니다. UN은 대한민국 수립의 과정이 모두 합법이고 국민의 의사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보고함으로써 우리는 UN의 승인을 받고, 공산권을 빼놓고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던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출발부터 이렇게 가혹한 도전에 성공적으로 응전해서 세워진 것입니다."

1998년 대한민국 건국 50주년을 기념해서 행한 연설 내용 중의 일부입니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1998년 건국 50주년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제2의 건국을 모토로 했었지요.

최재성 위원장에게 묻겠습니다. 그 당시 민주당은 건국 50주년을 기념한 정부에게 ‘임정의 법통성’을 부정했다며 김대중 대통령에게 왜 항의하지 않았습니까? 그로부터 10년 후 이명박 정부에서 건국 60주년을 기념할 때는 왜 느닷없이 임정 법통론을 들고 나와 친일의 혐의를 씌우셨나요? 대답하셔야 합니다.

민주당의 자가당착은 여기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자유한국당의 뿌리가 친일이라는 딱지붙이기도 그렇습니다. 민주당은 작년 더불어민주당 60년사의 책을 펴냈습니다. 민주당 60년사의 출발은 55년 민주당으로 잡고 있지만 그 민주당의 핵심 세력 중에는 해방 후 결성된 한민당도 포함됩니다. 한민당이 친일지주를 바탕으로 한 정당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물론 민주당에는 훌륭한 분들도 많이 계셨지만 전시체제였던 일제 말기 국내에 있던 분들 중 친일 혐의에서 자유로울 사람이 얼마나 되었을까요?

민주당은 환골탈태해야 합니다.

해방된 지 70년이 지나고, 민주화 30년이 지났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친일, 독재 타령을 하며 자신들조차 떳떳하지 못한 도덕적 명분 쌓기에만 몰두하시렵니까?

5대, 6대 대선에서 박정희와 맞붙은 민주당 윤보선 후보는 선거유세에서 오로지 “박정희는 빨갱이다!”라는 매카시적 공격 외에는 별다른 선거 전략도 공약마저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산업화에 대한 분명한 비전을 제시했던 박정희를 넘어설 수 있었겠습니까? “저놈은 빨갱이!”라는 딱지붙이기가 이제는 “저놈은 친일파!”라는 전통으로 계승하는 듯해 안타깝습니다.

데이비드 이스턴이 말했던가요? “정치란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다.” 또다른 정치학자 라즈웰은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얻을 것인가”를 다루는 과정이 정치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정치의 본질은 결국 사회적 자원을 어떻게 배분하냐의 문제로 귀착됩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바로 이 분배의 극심한 불균형으로부터 사회적 갈등과 국민적 고통이 날로 심해지고 있습니다. IMF 외환위기 직후 김대중 정부에서부터 본격화된 양극화는 민주당 정부 10년, 자유한국당 정부 10년을 경과하며 이제는 OECD 최고 수준의 불평등 국가가 되고 말았습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두터운 중산층을 자랑했던 대한민국이 불과 20년만에 이렇게 되었습니다.

양극화 문제의 핵심은 1차 분배에서 임금격차, 2차 분배에서 연금격차입니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누구는 1억을 받고 누구는 2천만원을 받는 현실이 문제입니다. 교사, 공무원 등의 은퇴자들은 연금 300만원을 받는데 누구는 기초연금 20만원을 받는 현실이 문제입니다. 연공서열임금체계를 두고서 어떻게 청년 일자리가 늘어나겠으며, 미조직된 하도급 노동자들이 즐비한 현실에서 어떻게 임금격차가 줄어들겠습니까. 더욱이 저소득 노동자들의 일자리마저 외국인들에게 잠식된지 오래되었습니다. 결국 상위 10%의 소득이 전체 48.5%를 차지하는 이 끔찍한 불평등한 현실의 책임이 과연 한줌 재벌에게만 있겠습니까?

저 상위 10%에 속하는 대기업 귀족노조, 공무원노조, 전교조 등의 기득권과 굳건한 동맹을 맺은 민주당이 과연 이 현실을 정면으로 맞닥뜨릴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친일청산’, ‘적폐청산’의 구호를 민주노총과 민주당이 사이좋게 합창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그것은 차라리 자신들의 기득권 현실을 은폐하려는 모종의 전략의 일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자유한국당은 입이 열 개라도 할말이 없어야 합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보여준 그들의 도덕적 타락, 정치적 무능은 국민으로부터 준엄한 심판을 받을 만 했으며 또 그래야 마땅했습니다. 인적 청산과 더불어 재창당 수준의 혁신이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혁신의 방향은 바로 정치의 본질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저는 그 해법을 찾기 위해 혁신위원회에 들어왔습니다.

최재성 위원장에게 당부 드립니다.

정치는 상대적입니다. 상대가 저열하면 같이 저열해지고, 품격이 높으면 같은 수준에서 대응하게 됩니다. 자유한국당이 제대로 혁신할 수 있도록 격려와 질책을 진지하게 해주십시오.

정치는 스포츠와 같은 제로섬 게임처럼 해서는 안됩니다. 국민의 삶이 걸려있는 문제입니다. 국리민복이라는 큰 틀에서 경쟁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제발 소모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명분놀이를 멈추어주시기 바랍니다.

작금의 현실은 엄중합니다. 밖으로는 북 미사일 문제로 일촉즉발의 안보 위기에 휩싸여 있고, 안으로는 계층 갈등의 골이 여전히 깊습니다. 오늘 같은 광복절에 집권당다운 면모를 보이며 국민통합의 길을 제시하지는 못할망정 때아닌 ‘친일파’ 논쟁을 유발하여 진영간 감정의 골만 깊어지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협치가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기입니다. 자중자애 하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민주당 정당발전위원회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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