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적 증거 없는 뇌물죄·정경유착 올가미 씌우기…형사재판 기본 어긋
[미디어펜=문상진 기자]"한국의 기업인들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사람이며 작은 바람만 불어도 교도소 담장 안으로 떨어진다."

한국의 반기업정서와 재벌들에 대한 차가운 시선, 온갖 규제와 과잉처벌을 빗댄 말이다. 역시나다. 지난 25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에게 1심 재판부가 징역 5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세기의 재판'은 결국 법전에도 없는 반기업정서에 편승한 국민정서법이라는 '떼법' 판결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 간판 기업 삼성은 충격에 빠졌고 외신들도 일제히 속보로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과 선고 결과를 타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온라인판 톱으로 "삼성의 불확실성 기간이 늘어났다"고 전했고 파이낸셜타임스는 "이 부회장 대한 유죄 선고는 삼성의 명성과 장기전략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다"고 보도했다. 삼성 뿐 아니라 코리안 디스카운트 우려가 현실화됐다.

이 부회장 1심 선고에 앞둔 지난 23일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저는 삼성 이재용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뇌물을 주었다는 이 재판 자체가 '인민재판' 성격이 강하다고 본다"며 "촛불대중의 분노가 박근혜와 이재용을 무리하게 엮어 '인민재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심경을 밝혔다.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재판은 법원이 아닌 광장에서부터 시작됐다. 지난 2월 광화문 촛불시위에 이 부회장 등 재계총수들이 죄수복을 입고 포승줄에 묶인 대형 조형물이 등장했다. 촛불시위 때마다 어김없이 '이재용 구속', '재벌해체' 의 구호는 일상이 되었다.

   
▲ 지난 25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에게 1심 재판부가 징역 5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세기의 재판'은 결국 법전에도 없는 반기업정서에 편승한 국민정서법이라는 '떼법' 판결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과 함께 '이재용 희생양 만들기'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근거 없는 인민재판과 마녀사냥이 이어졌고 급기야는 국민정서법이 법치를 흔든다는 걱정의 목소리도 나왔다. 일각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이 '법'에 따르면 무죄, '국민정서법'에 따르면 유죄일 수밖에 없다는 여론재판을 경계하는 얘기도 나왔다.

이재용 부회장의 중형선고는 가뜩이나 힘든 나라경제에 악재다. 삼성은 글로벌경쟁의 대한민국 간판선수이며 이부회장은 걸어 다니는 한국경제다. 이 부회장의 공백이 장기화되면서 삼성그룹에 미칠 파장이 적지 않다. 오너리스크는 물로 해외에서 삼성의 이미지는 물론 국격에도 금이 간다.

삼성은 총수의 결단이 필요한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 결정은 물론 장기적인 성장동력 마련에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삼성그룹이 국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한 만큼 삼성의 혼돈은 한국경제 혼돈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고질적 병폐인 법치를 흔드는 '떼법'으로 치러야 하는 대가치고는 너무나 혹독하다. 걸핏하면 거리의 정치를 벌이는 정치인이나 국가공권력을 우습게 여기는 집회와 시위는 일상화 되고 있다. 집단의 힘을 이용한 떼쓰기나 국민의 정서에 호소하여 힘과 감정을 동원하여 자신들만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냉소적인 고질병이 '유전유죄'의 중병으로 도졌다. 자본주의의 나라에서 자본을 죄악시 한다. 가장 좋은 표적이자 먹잇감은 기업인이자 재벌 총수다. 수갑을 차지 않은 기업인이나 교도소를 가지 않은 재벌총수가 이상할 정도인 나라다. 이런 빗나간 정서는 결국 국익을 훼손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는다.

1심 재판부의 선고 결과를 보면 더욱 그렇다. 영 개운치 못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개별 현안에 대한 부정한 청탁을 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면서도 "포괄적 현안에 대한 묵시적 청탁은 있었다"고 했다. 한편으론 "이 사건의 본질은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유착"이라고 지적했다.

'묵시적 청탁'은 결정적 증거가 없다는 반증으로 읽힐 수 있다. '정경유착'은 세기의 재판이 현실은 외면한 채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재판부 스스로가 결정적 물증이 없음을, 그리고 여론을 의식한 것임을 인정한 셈이다. 형사재판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다.

형사재판에서 유죄로 판단하려면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이 뒷받침돼야 한다. '합리적인 의심을 넘는 정도'로 피고인의 유죄가 입증되지 못할 때엔 무죄추정의 원칙이 우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부가 정황증거에 무게를 둔 '묵시적 청탁', 전가의 보도인 '정경유착'을 내세웠다.

여기에 자유로울 정권이나 기업은 없다. '묵시적 청탁'의 기준은 뭔가? '마음속 청탁'이라면 미르·K스포츠재단에 돈을 낸 모든 기업이 뇌물죄에 해당될 수있다. 이 부회장 입장에서 대통령의 말을 듣지 않으면 보복을 당할 처지고, 들어 주면 뇌물죄로 징역형을 살아야 한다. 법의 잣대는 과연 공평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일각에서 이재용 부회장 희생양이 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최초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의 강요에 의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특검이 맡으면서 '뇌물 사건'으로 바뀌었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들어선 새 정부는 도덕적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재판에서 유죄를 이끌어내야 하는 현실적 절박감이 컸다는 분석이다. 

결과적으로 1심은 새 정부와 특검의 손을 들었다. 2심과 대법원에서는 '마음속 청탁'이 아닌 법리와 증거에 의한 재판이 되길 기대한다.[미디어펜=문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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