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디에 짜증내면 불행 자초,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 곱다"

방민준의 골프탐험(3)-캐디와의 관계가 그날의 골프를 결정한다.

화사한 꽃들이 만발하고 녹음이 짙어지는 골프시즌이 돌아왔다. 겨울동안 '밭'을 열심히 갈아온 주말 골퍼들을 설레게 하는 골프 시즌을 맞아 국내 최고의 골프칼럼니스트인 방민준 전 한국일보 논설실장의 맛깔스럽고 동양적 선(禪)철학이 담긴 칼럼을 독자들에게 배달한다. 칼럼에 개재된  수묵화나 수채화는 필자가 직접 그린 것들이어서 칼럼의 운치를 더해준다. 주1회 선보이는 <방민준의 골프탐험>을 통해 골프의 진수와 골퍼의 바람직한 마음가짐을 가다듬기  바란다. [편집자주]

   
▲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골프는 철저하게 자신과 외로운 싸움을 벌여야 하는 자립독행(自立獨行)의 스포츠다. 3~4명이 한조를 이뤄 플레이하지만 동반자로부터는 어떤 직접적인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의 골프는 결코 혼자서 하는 운동이 아니다. 캐디의 도움을 받아야만 라운드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캐디는 라운드 전체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외국엔 캐디 없이 라운드 할 수 있는 골프장이 많지만 국내 골프장에선 캐디 없이 라운드 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캐디는 불가피한 경기 도우미이자 동반자다.

항상 캐디의 도움을 받으며 라운드를 해야 하는 환경에 익숙하다 보니 우리나라 골퍼들은 자신도 모르게 캐디에게 너무 많은 것을 의존하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 카트에서 내릴 때 손수 몇 개의 클럽을 뽑아 가면 될 것을 볼이 있는 곳까지 가서야 캐디에게 거리를 묻고 클럽을 갖다 달라고 소리친다. 그린에 올라와서도 서둘러 마크할 생각은 않고 캐디가 마크하고 볼을 닦아 라인을 맞춰 놓을 때까지 꼼짝하지 않는 골퍼들도 심심찮게 보게 된다.
 

특히 미스 샷이 발생했거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 빠졌을 때 그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캐디에게 돌리는 나쁜 습관을 가진 골퍼도 적지 않다. 그린에서 퍼팅하는 것 빼고는 거의 모든 짐은 캐디가 짊어져야 한다. 볼 닦는 일은 수건을 갖고 있는 캐디에게 맡긴다 해도 볼 마크를 하는 일, 그린 보수하는 일까지 캐디 몫으로 돌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공세. 좌우 어디가 높으냐, 내리막이냐 오르막이냐, 어디를 보고 쳐야 하느냐, 라인은 잘 맞춰 볼을 놓았느냐는 등 질문을 퍼붓고는 정작 스트로크를 할 때는 캐디가 일러준 대로 하지 못한다. 그러고도 볼이 홀을 벗어나면 캐디 탓으로 돌린다.

실제로 최근 수도권의 한 골프장에선 거리를 잘못 알려줬다며 캐디를 폭행한 골퍼가 경찰에 불구속 입건된 적이 있었다. 경기도의 모 골프장에서 일어난 일인데, 문제의 골퍼는 어프로치 거리를 50m로 생각하는데 캐디가 90m라고 알려주는 바람에 온 그린에 실패했다며 캐디에게 3주의 상해를 입혔다고 한다.
너무 캐디에게 의존하는 바람에 문제가 생기지만, 반대로 캐디의 직분을 다하지 않아 불미스런 일이 생기는 사례도 적지 않다. 심지어 골퍼들이 참다 참다 못해 라운드 도중에 캐디를 교체하거나 캐디가 골퍼들의 지나친 요구와 농담, 책임 전가를 견디지 못해 캐디를 못하겠다고 호소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이 모든 것이 캐디의 본질을 오해한 데서 비롯된 해프닝들이다. 캐디(caddie)라는 어원은 프랑스 귀족의 젊은 자제를 뜻하는 카데(cadet)에서 비롯됐다. 기록에 나타난 최초의 여성 골퍼인 스코틀랜드의 메어리 여왕이 1562년 여름 두 번째로 세인트 앤드루스를 방문해 골프에 열중하는데 이때 프랑스에서 데려온 카데들을 대동하면서 경기보조자로서의 캐디가 처음 탄생했다. 캐디는 그 어원에서 짐작할 수 있듯 어디까지나 경기 보조자다. 캐디가 유능한가 아닌가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지만 플레이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라운드를 하는 골퍼이고 모든 판단과 결정, 그에 따른 결과는 골퍼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캐디의 역할이나 몫은 절대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저기 특정 골프장을 간헐적으로 찾는 골퍼와 몇 년씩 근무하는 캐디와는 정보력에서 엄청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초보캐디가 아닌 이상 캐디의 말은 절대적인 정보이자 지상명령이나 다름없다. 캐디로부터 얼마나 유익한 정보를 얻어낼 수 있느냐 여부에 따라 라운드의 성공 여부가 판가름 날 수밖에 없다.

캐디를 단순히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는 관계로 생각하면 정말 큰 오산이다. 물론 캐디피를 받으니 당연히 그런 의무가 있지만 4명을 상대해야 하는 캐디가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도움을 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캐디와 어떤 관계를 설정하느냐에 따라 캐디로부터 귀중한 도움을 얻는가 하면 적대관계로 변해 라운드 전체를 망치는 불행을 자초할 수 있다. 30여년에 달하는 구력을 더듬어보면 골프장에 도착해 첫 홀 티잉 그라운드에서 캐디와 대면하는 순간 그날 라운드의 성패는 결정 난다고 확신한다.

골퍼와 캐디와의 관계에는 철저한 '기브 앤 테이크(giva & take)' 원칙이 적용된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속담처럼 주는 만큼 받는다고 보면 틀림없다. 첫 홀 티잉 그라운드에서 “○○○씨, 앞에 보이는 벙커까지는 얼마나 되지요?”하는 묻는 골퍼와 “왼쪽이 안전하다고 했으니 그쪽으로 쳤는데 OB 나면 언니가 책임져!”라고 말하는 골퍼 중에 누가 캐디의 호감을 사겠는가.

“어프로치는 주로 뭘 사용하세요?”하고 묻는 캐디의 질문에 “주로 피칭웨지(P S)를 쓰지만 그때그때 다를 수도 있어. 현장에서 말해줄 게.”하는 골퍼와 “주로 어프로치웨지(A P)를 쓰지만 내가 직접 뽑아갈 테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하고 말한 골퍼 중에 누가 캐디를 편하게 해주겠는가. 한수 더 높은 고수 골퍼는 받기는 조금 받고 엄청 준다. 처음부터 “○○○씨, 클럽은 내가 직접 챙길 테니 다른 분들한테 신경 쓰세요.”라고 말해 캐디의 긴장을 풀어주고 실제로 샷을 하는데 필요한 클럽을 직접 여러 개 뽑아들고 카트에서 내리고 샷을 하고 나서도 스스로 골프백에 집어넣는다. 

   
▲캐디와의 관계가 그날의 골프를 결정한다. 카드 내릴 때 직접 클럽 몇개는 챙기고, 그린에선 볼마크도 직접 하는 등의 신사적 매너를 유지하면 캐디로부터 '보상'을 받는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 캐디와 '기브 앤 테이크' 한다는 자세를 갖도록 하자. /방민준 삽화

한 수 더 높은 골퍼는 자기 할 일을 자기가 함은 물론 캐디가 할 일까지 대신해준다. 클럽을 대신 갖다 주는가 하면 동반자의 볼이 러프로 날아가면 캐디가 신경 쓰기 전에 달려가 볼을 찾아준다. 그린에서도 동반자의 볼 마크를 대신 해주고 벙커를 정리해주는가 하면 남이 손상시킨 그린도 손수 보수한다. 볼도 캐디가 닦아주기 전에 손으로 쓱쓱 문지르곤 라인을 맞춰 놓는다. 어찌 캐디가 고마워하지 않겠는가. 여기에 품위 있는 말투에 신사적인 매너까지 갖췄다면 캐디에겐 최고의 고객이다.

캐디의 짐을 덜어주고 편하게 해주니 캐디가 가만히 있겠는가. 모든 것을 캐디에게 의존하는 골퍼라면 좀 짜증스럽고 불편하고 게으름도 피우고 싶겠지만 제 몫의 캐디피 내고 캐디를 이렇게 편하게 해주는 손님에게 모른 척 할 수 없다. 캐디의 보상은 결정적일 때 주어지기 마련이다. 라이를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그린 위에서나 착각하기 쉽거나 위험이 숨어있는 코스에서 캐디는 결정적 도움을 준다. 이런 식으로 캐디와 궁합이 맞으면 그날의 라운드 결과는 물으나 마나다.

반대로 티잉 그라운드에서 주머니에 티가 없어 캐디에게 티를 달라고 하고, 카트에서 내릴 때 빈손으로 내리고, 현장에 가서 거리를 물어본 뒤 클럽을 갖다 달라고 소리치고, OB를 내거나 해저드에 볼을 빠뜨린 뒤 여분의 볼도 없어 캐디에게 볼을 가져오라고 고함치고, 볼 마크도 안가지고 다녀 캐디가 마크 할 때까지 기다리고, 그린 위에서 물은 것 또 묻고, 설명을 다 듣고도 엉뚱한 스트로크를 해버린 뒤 그 탓을 캐디에게 돌리는 골퍼의 라운드 결과도 물으나 마나다.

물론 유능한 캐디도 적지 않다. 단순히 거리만 일러주는 게 아니라 볼이 어디로 가면 위험하다든가, 어느 지점이 두 번째 샷을 날리는데 유리하다든가 간파하기 힘든 정보를 일러주고, 바람의 세기나 경사에 따라 클럽을 어느 정도 길게 혹은 짧게 잡아야 하는지 힌트를 주는 것은 물론이고 플레이어의 스윙과 스탠스을 보고 구질을 재빨리 파악, 좋은 스코어를 낼 수 있도록 적극적인 조언을 해주는 캐디도 있다. 좀더 유능한 캐디라면 플레이어가 나쁜 스코어 때문에 기분이 상해 있을 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는 말을 해주고, 흥분해서 경기를 망칠 위험이 있을 때 침착하게 임할 수 있도록 슬쩍 경계의 한 마디를 던질 수 있을 것이다.

흔치는 않지만, 한두 홀을 지나자마자 골퍼들의 클럽별 비거리를 금방 파악해 클럽을 챙겨주고 스윙의 버릇을 간파해 스탠스 방향을 조정해주는 유능한 캐디를 만날 수도 있다. 캐디 역할을 제대로 해내면서 행동이 조신하고 말투가 상냥하며 손님들의 짓궂은 농담도 지혜롭게 받아넘겨 상황을 정리해주는 캐디는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유능한 캐디를 만날 확률이 낮다면 캐디의 유익한 정보를 내 것으로 만들어 성공적인 라운드를 할 수 있는 비법을 터득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 비법이 바로 캐디의 짐을 덜어주고 캐디의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길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이 비법은 또한 자립독행하는 골프의 기본에 충실하면서 골프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방민준 골프 칼럼니스트